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올리버(윤은오 분·왼쪽)와 클레어(박진주 분).  /CJENM 제공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올리버(윤은오 분·왼쪽)와 클레어(박진주 분). /CJENM 제공
모든 사랑의 뒤편에는 불안함이 있다.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랑이 식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영원할 것 같은 사랑조차 죽음 앞에서는 무력하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로봇으로 사랑의 본질을 탐구한다. 주인공은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휴머노이드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 이들은 사랑에 빠지지 않도록 프로그램됐지만 서로를 만나면서 ‘고장’이 난다. 누구도 가르친 적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것.

두 주인공은 성숙하지만 한편으로는 순수하기도 하다. 그들은 수많은 정보와 데이터를 섭렵한 덕분에 이론적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통달했다. 그렇지만 아직 한 번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 없는 어린아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사랑이 더욱 무섭고 어색하지만 둘의 마음은 통제 불능 상황으로 커져 버린다. 올리버와 클레어는 사랑이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어리석은 행위인지 알면서도 마침내 사랑을 꽃피운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풋풋한 첫사랑을 기다리는 건 이별이다. 고물 취급을 받는 두 로봇에게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클레어의 관절이 하나둘씩 삐그덕대고 고장 나면서 두 연인은 이별을 직감한다. 올리버와 클레어 둘 다 자신이 작동할 날이 며칠 남아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둘 중 하나가 작동을 멈춘다면 남은 쪽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지 알고 있다. 이별의 운명이 엄습하자 두 주인공은 이 아픔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한다.

주인공은 로봇이지만 인간들도 피할 수 없는 걱정이다. 죽음이 됐든 이별이 됐든 언젠가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는 사랑.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아프지만 그럼에도 빠질 수밖에 없는 것도 사랑이다.

막을 내리면 입에는 달곰씁쓸한 맛이 맴돈다. 미묘하게 열려 있는 결말이 ‘이 둘의 사랑이 행복한 결말을 맞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둘의 미래가 절망일지 희망일지는 관객의 상상력에 달렸다. ‘어쩌면 해피엔딩’이라는 제목이 아직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호기심을, 공연을 보고 나온 관객에게는 결말을 되새기게 하는 장치가 된다.

섬세하고 서정적인 음악이 애틋함을 더한다. 복잡미묘한 감정을 멜로디에 솔직하고 섬세하게 녹여내는 박천휴·윌 애런슨 음악 듀오의 능력이 돋보인다. 올리버와 클레어가 느끼는 설렘이 멜로디에 담겨 관객의 마음이 간지럽힌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미래와 지지직거리며 레코드 플레이어로 들리는 재즈 음악이 이루는 대비도 흥미롭다.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낡은 바이닐(LP) 음반을 모으는 올리버의 캐릭터도 음악으로써 충분히 표현됐다.

‘창작 뮤지컬의 신화’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은 수작. 창의적 스토리라인으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섬세한 감정 묘사도 우수하다. 극의 막바지에 이르면 코훌쩍이는 소리가 객석 여기저기서 들린다. 공연이 끝난 후 로비에서 엉엉 우는 관객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주인공이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순수하고 아프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브로드웨이 진출을 앞두고 있다. 9월 프리뷰 공연을 거쳐 10월에 1000석 규모 대극장 벨라스코시어터에서 본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2023년 뮤지컬 ‘퍼레이드’로 토니상 최우수 연출상을 받은 마이클 아덴이 연출을 맡는다. 공연은 9월 8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에서 열린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