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때 컨디션 난조로 마지막 곡 빼…앙코르 3곡 부르며 분위기 반전
디바의 품격 보여준 홍혜경…10년만 고국 무대 '보컬 마스터'
세월이 흘러도 디바는 디바였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메트)에서 무려 40년간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를 증명한 품격 넘치는 무대였다.

10년 만에 고국에서 단독 리사이틀을 연 소프라노 홍혜경(65)의 얘기다.

그는 3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보컬 마스터 시리즈'의 첫 주자로 무대에 섰다.

'보컬 마스터 시리즈'는 예술의전당이 세 차례에 걸쳐 세계적인 성악가들의 노래를 선보이는 기획 공연이다.

관객들은 오랜만에 마주할 '프리마돈나'를 설레는 표정으로 기다렸다.

공연 시작 전 장막 뒤에서 홍혜경의 하얀색 드레스 자락이 비칠 때부터 객석이 술렁였다.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한 그가 부른 첫 곡은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중 '정결한 여신이여'. 민족의 적을 연모하게 된 주인공 노르마가 사랑과 동족애 사이에서 갈등하며 여신에게 평화를 간구하는 곡이다.

홍혜경은 이병욱이 지휘하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선율에 맞춰 노래를 시작했다.

풍부한 성량과 윤기가 흐르는 그의 목소리에 관객들은 완전히 매료됐다.

무대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힘찬 박수와 함께 와하고 감탄이 쏟아졌다.

홍혜경은 이어 도니체티의 '안나 볼레나' 중 '울고 있나요?…고향의 성으로 데려다주세요',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중 '고요한 밤은 평온하고'를 불렀다.

디바의 품격 보여준 홍혜경…10년만 고국 무대 '보컬 마스터'
테크닉은 여전했지만, 장시간 비행과 시차 적응에 따른 피로 누적 탓인지 후반부에 목소리가 다소 갈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홍혜경 역시 무대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모양. 그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결국 홍혜경은 1부의 마지막 곡이었던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중 '아! 꿈속에 살고 싶어라'를 부르지 않았다.

이병욱 지휘자가 홍혜경이 컨디션 난조로 마지막 곡을 부르지 못하게 됐다며 객석을 향해 양해를 구했다.

관객들 사이에선 그가 2부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하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2부 무대에 선 홍혜경은 1부의 아쉬움을 한풀이라도 하는 것처럼 압도적인 공연을 연달아 뽐냈다.

그는 들뜬 분위기 속에서 레하르의 '유쾌한 미망인' 중 '빌야의 노래'와 '주디타' 중 '내 입술, 그 입맞춤은 뜨겁고'를 선보였다.

발레리노 이준구와 김영민이 안무가로 나섰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홍혜경의 장기인 푸치니의 오페라였다.

'투란도트' 중 '주인님, 들어주세요!', '토스카' 중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로 예정된 프로그램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특히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는 타국에서 소프라노로 거의 평생을 살면서도 가족을 돌보는데 소홀하지 않았던 홍혜경의 삶을 보여주는 듯한 곡이라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디바의 품격 보여준 홍혜경…10년만 고국 무대 '보컬 마스터'
오페라 아리아로만 7곡을 내리 불렀지만, 환갑을 훌쩍 넘긴 프리마돈나는 여기서 지치지 않고 앙코르곡을 부르기 위해 다시 무대에 섰다.

푸치니의 '라 보엠' 중 '내가 길을 나설 때면'과 '잔니 스키키' 중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그리고 한국 가곡 '그리운 금강산' 등 3곡을 소화하면서도 끝까지 에너지를 잃지 않았다.

관객들은 모두 자리에 일어서 힘찬 박수로 고국에서 최고의 무대를 선사한 홍혜경에게 감사를 전했다.

가장 아름다운 악기는 인간의 목소리라는 말을 새삼 실감하게 한 공연이었다.

'보컬 마스터 시리즈'는 이번 홍혜경의 공연을 시작으로 베이스 연광철,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의 무대를 잇달아 선보인다.

연광철은 오는 26일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사무엘 윤은 11월 16일 슈베르트의 '방랑자' 등에 나오는 곡을 들려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