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영화감독 데이브 클락. /BIFAN
미국의 영화감독 데이브 클락. /BIFAN
”1년 전 할리우드에선 생성형 AI를 사용해 영화를 제작하는 행위 자체를 터부(taboo·금기)로 여겼어요. 그런데 지금은 많은 영화인이 AI 기술을 수용해 영화적 실험을 하고 있죠.”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영화를 제작하는 데이브 클락(40) 감독은 “앞으로 1년 안에 생성형 AI 기술만으로 완성한 영화가 개봉할 것이라 본다”며 이렇게 말했다. 4일 개막한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지난 3일 경기 부천 웹툰융합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AI가 영화시장을 뒤흔들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그는 “AI로 만든 영화가 지금은 서브 장르지만, 곧 ‘영화 그 자체’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했다.

클락 감독은 미국 할리우드에서도 주목하기 시작한 AI 영화 제작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영화인 중 하나다. 생성형 AI 영상 제작 프로그램을 두루 활용해 만든 AI 이미지와 실사 촬영을 합친 하이브리드 영화를 선보여 왔다. 미국의 AI 영화·영상 제작자들의 커뮤니티 ‘큐리어스 레퓨지’의 대표 감독이기도 한 그는 AI를 화두로 내세운 올해 BIFAN의 대표 프로그램인 ‘AI 필름 메이킹 워크숍’에서 국내 젊은 영화인들의 멘토로 참여했다.
지난 3일 경기 부천 웹툰융합센터에서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AI 필름 메이킹 워크숍'에서 데이브 클락 감독이 참가자들의 멘토링을 하는 모습. /BIFAN
지난 3일 경기 부천 웹툰융합센터에서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AI 필름 메이킹 워크숍'에서 데이브 클락 감독이 참가자들의 멘토링을 하는 모습. /BIFAN
클락 감독은 AI기술이 영화산업의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주나 심해, 화산 등 사실상 촬영이 불가능한 장소를 생성 AI 이미지로 보완하는 등 막대한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AI도구를 사용해 마블 스튜디오의 ‘어벤져스’ 같은 영화를 기존 예산의 반값에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자본이 없지만 훌륭한 스토리와 아이디어를 가진 신인 감독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며 “다음 시대의 리들리 스콧, 크리스토퍼 놀란, 스티븐 스필버그를 AI 영화가 발견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할리우드에선 AI와 실사를 섞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영화 ‘미나리’로 유명한 할리우드 스튜디오 A24가 제작해 최근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시빌 워’가 AI로 생성한 이미지를 영화 홍보 포스터로 쓴 게 대표적. 클락 감독은 “영화 ‘포레스트 검프’, ‘백 투 더 퓨처’를 연출한 거장 로버트 저메키스가 신작에서 AI를 사용해 주연인 톰 행크스를 젊어 보이게 만들었다”면서 “논쟁적인 AI를 장편영화 제작에 사용한 첫 사례로, 앞으로 영화산업에 큰 파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추세대로라면 AI 기술은 실사와 구분이 어려운 ‘포토 리얼리티’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인 클락 감독은 이날 한국 영화인들과 한국적 장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이날 경북 봉화군 광산 사고로 지하에 갇힌 광부들이 9일 만에 생환한 사건에서 영감받아 AI로 제작한 영상 ‘봉화 아래에서’를 일부 선보인 그는 “한국 장르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라며 “‘올드보이’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중기 등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했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