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 떼창한 콜드플레이·22년만에 온 에이브릴 라빈…글래스턴베리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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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락페, 글래스턴베리를 가다 (3)
드넓은 들판에 모인 10만 명의 관중, 비닐봉지가 펄럭일 만큼 쿵쾅거리는 소리를 뿜는 스피커, 그 스피커 소리조차 묻힐 정도로 거대한 관객들의 함성과 ‘떼창’….
여름에 열리는 ‘록 페스티벌’ 하면 모두가 떠올릴 이미지다. 그 이미지를 만든 원조격 페스티벌을 꼽으라면 전 세계인들이 가장 먼저 영국의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글래스턴베리)’을 꼽는다. 세계 최대 규모 음악 축제 글래스턴베리가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4박5일의 대장정을 마쳤다. 21만 명의 관중이 만든 광란의 축제장에 한 명의 관객으로 참여했다. 4박 5일간 잠들지 않는 100개의 무대
영국 남서부 서머싯주 필턴에서 열린 글래스턴베리는 음악 팬이라면 누구나 인생의 버킷리스트로 꼽는 페스티벌이다. 전설의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 사망 다음 날인 1970년 9월 19일에 처음 개최돼 올해로 54주년을 맞았다. 낙농업자인 마이클 이비스가 자신의 농장에 좋아하는 아티스트 10명을 섭외하고 관중 1,500명을 동원한 게 시작이다. 그 작은 아이디어는 매년 4박 5일간 3,000여 팀이 공연하고 21만 명이 참가하는 글로벌 메가 이벤트로 발전했다.
텐트촌을 포함한 행사장은 여의도 면적(2.9㎢)의 2배(6㎢)다. 이 부지에 메인격 무대만 5개, 이를 포함한 공식 무대는 총 85개다. 예고 없이 지어지는 작은 무대까지 합하면 총 100개 남짓 무대가 설치된다. 4박 5일 간 아침 10시 무렵부터 새벽 5시까지 3,500여개의 공연과 부대행사가 열린다. 어차피 다 돌아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매일 아침 9시 반부터 텐트에서 출발해 새벽 2시까지 사력을 다해 공연을 봤음에도 고작 20여 팀 봤을 뿐이었다. 마지막까지 구경도 못해 본 무대도 많다. 수많은 무대 중 단연 압권은 메인 무대인 피라미드 스테이지다. 10만여 명 수용이 가능한 부지에 성인 남성 키의 5배쯤 되는 대형 스피커만 15개 설치된다. 그 위용은 무대를 서는 아티스트조차 압도시킨다. 금요일 이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두아 리파는 “이 스테이지에 서길 열망했고 언젠가 그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며 “여기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하며 북받치는 감정에 말을 더 잇지 못하기도 했다. 글래스턴베리의 왕좌 차지한 콜드플레이
올해 피라미드 스테이지의 진정한 왕은 콜드플레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콜드플레이는 올해로 글래스턴베리 역사상 헤드라이너 무대를 5번 선 유일한 아티스트가 됐다. 현장 관객들은 신선함이 떨어진다고 불평하면서도 전체 관객의 절반인 10만여 명이 콜드플레이 공연에 몰려들어 다른 스테이지로 가는 골목까지 인파로 가득 찼다. ‘Yellow’가 연주되자 관객들이 차고 있던 발광팔찌가 노랗게 변해 현장이 노란 바다로 물들었고, ‘Viva la Vida’가 나올 땐 떼창 소리가 온몸의 감각이 깨어났다. 콜드플레이는 BTS와의 협업곡 ‘My Universe’의 한국어 가사를 직접 부르거나 관객에게 “감사합니다”라며 한국말로 인사해 한국인 관객들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콜드플레이가 한국어를 연발한 건 글래스턴베리의 변화와도 연관이 있다. 최근 몇 년 간 글래스턴베리는 지나치게 백인 남성 아티스트 위주로 라인업을 짠다는 비판에 시달려왔다. 이를 의식한 듯 올해는 헤드라이너 셋 중 둘을 여성 아티스트로, 그리고 그 중 한 명을 흑인 아티스트로 배치했다. 장르도 다양해졌다. 2008년 힙합 가수 제이지를 헤드라이너로 세웠다가 ‘록페스티벌에 웬 힙합이냐’라는 반발에 부딪혔던 글래스턴베리지만, 이제는 헤드라이너 셋 중 한 명만이 록스타다. “22년 걸렸다” 에이브릴 라빈에서 신디 로퍼까지
올해는 여성 아티스트들의 약진이 특히 돋보였다. 정상급 여성 흑인 힙합가수 리틀심즈, 왁스가 ‘오빠’로 번안한 곡 'She bop'의 원곡자이자 여성인권 운동가로도 유명한 신디 로퍼 등이 피라미드 스테이지에 올랐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여성 아티스트는 서브스테이지인 아더스테이지에 선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에이브릴 라빈이었다. 몰려드는 사람이 너무 많아 우회로를 20분가량 돌아야만 무대에 진입할 수 있었다. 17세에 발매한 팝 펑크곡 ‘Complicated’를 열창하며 “이곳에 오기까지 22년이 걸렸다”고 말한 그녀는, ‘Girlfriend’, ‘What the Hell’ 등 히트곡 메들리를 펼친 뒤 ‘Sk8er Boi’로 종지부를 찍었다. 마치 거대한 야외 노래방이 된 것처럼, 콜드플레이의 아성을 뛰어넘는 수준의 떼창을 불러일으켰다. 배우 안야 테일러조이와 모델 카라 델레바인도 떼창에 힘을 보탰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목마를 타고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을 표했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그녀의 공연에 별 다섯 개를 부여하며 “아더스테이지는 그녀에게 너무 좁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K팝 그룹과 한국 아티스트도 성공적인 무대를 마쳤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글래스턴베리가 케이팝 그룹을 처음으로 피라미드 스테이지에 올렸고, 세븐틴이 그 무대를 차지했다. 얼터너티브 케이팝 그룹 바밍타이거는 히트곡 ‘부리부리’에 맞춰 관객들을 모두 춤추게 만들었고, 이제는 세계적 아티스트가 된 DJ 페기 구는 관객들에게 ‘페기 구우!’라는 외침을 연신 받았다.
글래스턴베리는 내년 행사가 끝나면 내후년엔 쉬어간다. 행사 부지인 농장에서 키우는 소들을 위해 땅을 쉬게 하고자 5년에 한 번 꼴로 휴식기를 가지기 때문이다. 개최자인 마이클 이비스는 “휴식기 직전인 내년 행사는 2년 치를 한 해에 쏟아붓는 것과 다름없다”며 “이미 출연자 교섭 중”이라고 말해 기대감을 높였다. 글래스턴베리(영국)=이슬기 기자
여름에 열리는 ‘록 페스티벌’ 하면 모두가 떠올릴 이미지다. 그 이미지를 만든 원조격 페스티벌을 꼽으라면 전 세계인들이 가장 먼저 영국의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글래스턴베리)’을 꼽는다. 세계 최대 규모 음악 축제 글래스턴베리가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4박5일의 대장정을 마쳤다. 21만 명의 관중이 만든 광란의 축제장에 한 명의 관객으로 참여했다. 4박 5일간 잠들지 않는 100개의 무대
영국 남서부 서머싯주 필턴에서 열린 글래스턴베리는 음악 팬이라면 누구나 인생의 버킷리스트로 꼽는 페스티벌이다. 전설의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 사망 다음 날인 1970년 9월 19일에 처음 개최돼 올해로 54주년을 맞았다. 낙농업자인 마이클 이비스가 자신의 농장에 좋아하는 아티스트 10명을 섭외하고 관중 1,500명을 동원한 게 시작이다. 그 작은 아이디어는 매년 4박 5일간 3,000여 팀이 공연하고 21만 명이 참가하는 글로벌 메가 이벤트로 발전했다.
텐트촌을 포함한 행사장은 여의도 면적(2.9㎢)의 2배(6㎢)다. 이 부지에 메인격 무대만 5개, 이를 포함한 공식 무대는 총 85개다. 예고 없이 지어지는 작은 무대까지 합하면 총 100개 남짓 무대가 설치된다. 4박 5일 간 아침 10시 무렵부터 새벽 5시까지 3,500여개의 공연과 부대행사가 열린다. 어차피 다 돌아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매일 아침 9시 반부터 텐트에서 출발해 새벽 2시까지 사력을 다해 공연을 봤음에도 고작 20여 팀 봤을 뿐이었다. 마지막까지 구경도 못해 본 무대도 많다. 수많은 무대 중 단연 압권은 메인 무대인 피라미드 스테이지다. 10만여 명 수용이 가능한 부지에 성인 남성 키의 5배쯤 되는 대형 스피커만 15개 설치된다. 그 위용은 무대를 서는 아티스트조차 압도시킨다. 금요일 이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두아 리파는 “이 스테이지에 서길 열망했고 언젠가 그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며 “여기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하며 북받치는 감정에 말을 더 잇지 못하기도 했다. 글래스턴베리의 왕좌 차지한 콜드플레이
올해 피라미드 스테이지의 진정한 왕은 콜드플레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콜드플레이는 올해로 글래스턴베리 역사상 헤드라이너 무대를 5번 선 유일한 아티스트가 됐다. 현장 관객들은 신선함이 떨어진다고 불평하면서도 전체 관객의 절반인 10만여 명이 콜드플레이 공연에 몰려들어 다른 스테이지로 가는 골목까지 인파로 가득 찼다. ‘Yellow’가 연주되자 관객들이 차고 있던 발광팔찌가 노랗게 변해 현장이 노란 바다로 물들었고, ‘Viva la Vida’가 나올 땐 떼창 소리가 온몸의 감각이 깨어났다. 콜드플레이는 BTS와의 협업곡 ‘My Universe’의 한국어 가사를 직접 부르거나 관객에게 “감사합니다”라며 한국말로 인사해 한국인 관객들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콜드플레이가 한국어를 연발한 건 글래스턴베리의 변화와도 연관이 있다. 최근 몇 년 간 글래스턴베리는 지나치게 백인 남성 아티스트 위주로 라인업을 짠다는 비판에 시달려왔다. 이를 의식한 듯 올해는 헤드라이너 셋 중 둘을 여성 아티스트로, 그리고 그 중 한 명을 흑인 아티스트로 배치했다. 장르도 다양해졌다. 2008년 힙합 가수 제이지를 헤드라이너로 세웠다가 ‘록페스티벌에 웬 힙합이냐’라는 반발에 부딪혔던 글래스턴베리지만, 이제는 헤드라이너 셋 중 한 명만이 록스타다. “22년 걸렸다” 에이브릴 라빈에서 신디 로퍼까지
올해는 여성 아티스트들의 약진이 특히 돋보였다. 정상급 여성 흑인 힙합가수 리틀심즈, 왁스가 ‘오빠’로 번안한 곡 'She bop'의 원곡자이자 여성인권 운동가로도 유명한 신디 로퍼 등이 피라미드 스테이지에 올랐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여성 아티스트는 서브스테이지인 아더스테이지에 선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에이브릴 라빈이었다. 몰려드는 사람이 너무 많아 우회로를 20분가량 돌아야만 무대에 진입할 수 있었다. 17세에 발매한 팝 펑크곡 ‘Complicated’를 열창하며 “이곳에 오기까지 22년이 걸렸다”고 말한 그녀는, ‘Girlfriend’, ‘What the Hell’ 등 히트곡 메들리를 펼친 뒤 ‘Sk8er Boi’로 종지부를 찍었다. 마치 거대한 야외 노래방이 된 것처럼, 콜드플레이의 아성을 뛰어넘는 수준의 떼창을 불러일으켰다. 배우 안야 테일러조이와 모델 카라 델레바인도 떼창에 힘을 보탰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목마를 타고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을 표했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그녀의 공연에 별 다섯 개를 부여하며 “아더스테이지는 그녀에게 너무 좁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K팝 그룹과 한국 아티스트도 성공적인 무대를 마쳤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글래스턴베리가 케이팝 그룹을 처음으로 피라미드 스테이지에 올렸고, 세븐틴이 그 무대를 차지했다. 얼터너티브 케이팝 그룹 바밍타이거는 히트곡 ‘부리부리’에 맞춰 관객들을 모두 춤추게 만들었고, 이제는 세계적 아티스트가 된 DJ 페기 구는 관객들에게 ‘페기 구우!’라는 외침을 연신 받았다.
글래스턴베리는 내년 행사가 끝나면 내후년엔 쉬어간다. 행사 부지인 농장에서 키우는 소들을 위해 땅을 쉬게 하고자 5년에 한 번 꼴로 휴식기를 가지기 때문이다. 개최자인 마이클 이비스는 “휴식기 직전인 내년 행사는 2년 치를 한 해에 쏟아붓는 것과 다름없다”며 “이미 출연자 교섭 중”이라고 말해 기대감을 높였다. 글래스턴베리(영국)=이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