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일상 속 사건 블랙코미디 감각으로 그려…2020 전미도서상 최종후보
스웨덴 대표작가가 그린 보편적 가족의 모습…'아버지의 원칙'
노인이 된 아버지, 아버지가 된 아들, 그리고 어머니가 된 딸이 있다.

아버지는 반년에 한 번씩 병원 치료와 세금 정리 등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스톡홀름에 들러 당연하다는 듯이 장남에게 물려준 사무소에서 숙식한다.

육아휴직 중인 40대 아들은 어린 두 자녀를 온종일 돌보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아버지가 요구하는 행정 처리 등의 일이 큰 부담으로 느껴진다.

변호사로 일하는 딸은 고통스러운 결혼을 끝낸 상황에서 사춘기 아들이 속을 썩이는 와중에 새 애인을 만나 원치 않는 임신을 한다.

소설 '아버지의 원칙'은 아버지, 아들, 딸의 세 인물이 변화를 인정하고 과거를 받아들이면서 서로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열흘간의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동시대 스웨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요나스 하센 케미리(48)가 현대사회의 가족이라면 한 번쯤은 모두 겪었음 직한 일상의 문제들이 블랙 코미디 감각으로 탐구했다.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오직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등으로만 제시되는데, 이런 장치는 독자들이 오로지 인물들의 가족 내 역할에만 집중하도록 이끈다.

세 인물 간의 의사소통은 이미 가족 내에서 오래전 굳어져 버린 관행처럼 작용하며 끊임없이 겉돈다.

서로 대화할 때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고 상대를 좀처럼 이해하려 들지도 않는다.

제목인 '아버지의 원칙'은 가족 내에서 무도가 지키는 암묵적인 규율을 뜻한다.

아버지가 만들고 아들이 지키고 있는 이 조항의 대전제는 장남이 아버지를 돌보고, 존경해야 하며 모든 지시에 군말 없이 따라야 한다는 것.
아들은 아버지가 시키는 각종 잡무를 처리해 주면서도 어릴 적부터 권위를 내세워 자신을 폭력적으로 훈육하고 자신이 성인이 된 뒤에도 계속 무시하는 아버지에게 뿌리 깊은 반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아버지의 원칙'을 가족 내에서 없애 버리겠다고 다짐한다.

작가는 한 가족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을 통해 인물 간 관계와 갈등을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그 중심에는 아들이 성장기에 겪은 아버지의 부재와 공백이 있다.

스웨덴 대표작가가 그린 보편적 가족의 모습…'아버지의 원칙'
서로 다른 입장과 소통의 어려움 속에서도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 갈등을 조금씩 봉합해 나간다.

가족이기에 그렇다.

가족 안에 그 누구도 진짜 어른은 없다.

서로를 서서히 이해해 가면서 모두 조금씩 어른이 되어갈 뿐이다.

"저는 아버지와 좀 다른 관계를 갖기를 원할 뿐이에요.

처음에 저는 아이였고 아버지는 어른이었죠. 그러다가 저는 어른이 되고 아버지는 어른이었죠. 그러다가 저는 어른이 되고 아버지는 아이가 되었어요.

더 늦기 전에 우리 둘 다 어른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213쪽)
'아버지의 원칙'은 2020년 미국 전미도서상(내셔널북어워즈) 번역문학 부문 최종후보에도 올랐다.

스톡홀름대에서 스웨덴의 문호 스트린드베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외대 홍재웅 교수가 우리말로 옮겼다.

같은 역자가 번역한 작가의 전작 '몬테코어'와 '나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거네'도 이번에 장정을 새로 꾸민 개정판이 함께 출간됐다.

민음사. 428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