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세계에 온 걸 환영한다", 세련되고 매혹적…왜 박찬욱인가에 '동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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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아웃 오브 넷플릭스
HBO 화제의 드라마 '동조자'
세상의 전쟁은 두 번 벌어진다.
한번은 전장에서, 그리고 또 한번은 기억 속에서…
비엣 타인 응우옌 소설 원작
정체성 잃어가는 첩자 스토리
군더더기 없이 영리하게 풀어
로다주·샌드라 오 '호화 캐스팅'
머리에서 꼬리로 다시 머리로
복합적인 시나리오 구성에 '띵'
회차 거듭할수록 "아~" 공감
HBO 화제의 드라마 '동조자'
세상의 전쟁은 두 번 벌어진다.
한번은 전장에서, 그리고 또 한번은 기억 속에서…
비엣 타인 응우옌 소설 원작
정체성 잃어가는 첩자 스토리
군더더기 없이 영리하게 풀어
로다주·샌드라 오 '호화 캐스팅'
머리에서 꼬리로 다시 머리로
복합적인 시나리오 구성에 '띵'
회차 거듭할수록 "아~" 공감
영화감독 박찬욱은 이념과 국가에 대해 워낙 냉소적이며 인간의 본성에도 그다지 믿음이 없다. 니체식 허무주의 또는 역사에 대한 거대한 상실감을 지닌 인물이다. 그런 박찬욱이 자신의 사상과 예술혼, 그 총합을 쏟아부은 드라마가 있다. 쿠팡플레이에서 공개된 7부작 드라마 ‘동조자’다. HBO를 통해 해외에서 화제가 된 데 비해 국내에선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두 개의 세계를 떠도는 귀신 같은 존재’에 대한 고급 담론의 드라마가 다소 어렵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동조자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한 첩자의 이야기이자 ‘조국의 독립과 자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말에 철학적 질문을 하는 작품이다. 앞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국도 아니오, 독립도 아니오, 또한 자유도 아닌, ‘없다’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식의 선문답을 던진다. 이런 드라마는 본래 당장 인기를 끄는 종류가 아니다. 앞으로 30년이나 50년, 아니면 100년 후에도 언급될 지적인 예술품이다. 비엣 타인 응우옌의 원작 소설 <동조자>를 드라마로 만든 이 작품은 주인공인 대위(호아 수안데)의 진술서를 토대로 한다. 공산화된 베트남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1년간 독방에 갇힌 채 자신의 지난 행적을 끊임없이 쓰고, 또 쓰고, 또다시 고쳐 쓰는 과정을 통해 사상 검증을 받는다. 박찬욱의 연출은 이를 해체하고 이어 붙이되 종종 주인공의 기억을 플래시백으로 되돌려 재생한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3부까지가 박찬욱 연출이고 4부는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5부에서 마지막 7부까지는 마크 먼든이 연출했다. 박찬욱은 전체 시나리오를 썼고 총연출의 역할을 맡았다. 이를 쇼 러너 감독이라고 부른다.)
이런 식의 복합적인 시나리오 구성과 작성은 소설 원작을 쓰는 것보다 더 힘든, 고난도의 것이다. 어쩌면 차라리 소설을 쓰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예컨대 원작 소설 <동조자>의 66쪽에서 90쪽에 이르는 제3장은 대위 일행, 그리고 장군(토안 레)의 가족과 비밀경찰들이 사이공 함락 이후 베트남을 탈출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들은 미군이 제공한 수송기 C-180을 타고 떠나야 하는데 이때 북베트남 정규군의 폭격이 빗발친다. 소설을 읽고 있으면 머릿속에 이미지들이 잔뜩 떠올랐다가 사라지는데, 이를 몇 개의 시퀀스와 신으로 이어 나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공정이다. 에피소드1에 나오는 사이공 탈출 장면은 이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압권이다. 박찬욱의 영화 디자인 능력과 IQ가 최고조로 발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부에서 3부까지가 뛰어난 작가의 역량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었다면 영화 팬 입장에서는 4부가 가장 흥미로울 수도 있다. 주인공 대위는 별난 성격의, 아니 미친 성격의 영화감독 니코스 다미아노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만드는 베트남전 영화의 자문을 맡아 영화 현장에 참여하는 일을 한다. 4부는 주인공 대위의 어린 시절, 엄마와의 기억과 트라우마, 그의 삼총사 격의 의형제 같은 친구들의 엇갈린 관계를 설명하기 때문에 필수적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베트남전 영화나 드라마들이 얼마나 심각한 정신병적 상태를 겪으며 가까스로 완성된 것인가를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어서 흥미롭다.
메이렐레스 감독은 4부의 에피소드를 프랜시스 F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제작기나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을 연상하게끔 찍었다. 드라마 속 영화의 미친 대위(데이비드 듀코브니)는 ‘지옥의 묵시록’의 대령(말론 브랜도)이나 ‘플래툰’의 중사 반스(톰 베린저)를 합친 캐릭터다.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미군 역(존 조)은 ‘플래툰’의 윌렘 대포를 연상시킨다. 지금까지 제작된 베트남 영화에 대한 메타 비평과 같은 에피소드이자 역설의 오마주를 담고 있는 스토리다. 박찬욱은 드라마 ‘동조자’의 에피소드1을 시작하면서 이런 문구의 내레이션을 집어넣었다. ‘세상의 전쟁은 두 번 벌어진다. 한 번은 전장에서, 그리고 또 한 번은 기억 속에서.’ 드라마의 흐름상으로 보면 그 글귀는 이렇게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한 번은 전장에서, 그리고 또 한 번은 반혁명의 과정에서.’
주인공 대위의 전쟁은 끝나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가 계속된다. 베트남 공산당이 천신만고 끝에 조국을 통일했다손 치더라도 사이공을 탈출한 장군 일파가 미국 전역에서 반베트남 운동을 벌이고 반혁명운동을 펼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베트남 공산당은 장군의 부관으로 심어 놓은 자신들의 유능한 첩자이자 밀정, 열혈 공산주의자인 대위를 전쟁이 끝난 후에도 탈출한 장군 휘하에 바짝 붙도록 한다. 대위의 스파이 임무가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계속된다.
주인공 대위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점점 상실해 간다. 자신이 미국(식 자본주의)을 사랑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대위는 일본계 미국 여자 소피아(샌드라 오)와의 사랑과 질투에 눈이 멀어 살인까지 저지른다. 그 모든 걸 “당을 위해서”라고 자위하거나, 아니면 “장군의 계획을 무산시켜 무모한 군사작전에 동원될 친구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포장할 뿐이다. 대위는 자신이 어느 편인지를 분간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대위가 이렇게 된 데는 명백히 반혁명운동의 분위기를 염려했던 당의 노선 때문이다. 이런 얘기는 5~7부에서 펼쳐지는데 드라마 속 장군과 베트남 난민들은 실제로 사이공 침공 계획을 세우고 군사 훈련까지 한다.
주인공 대위와 그의 친구 본(프레드 응우옌 칸)은 인도네시아를 거쳐 사이공에 잠입하는 군사작전에 참여하다가 베트남 공산 정규군에게 체포돼 정치범 수용소에 들어가고 진술서를 쓰는 일이 시작된다. 드라마의 흐름은 머리에서 꼬리로, 꼬리에서 머리로 종횡무진 누비는 구조다. 동조자 안엔 여러 이야기가 중첩된다. 삼단 케이크를 다시 삼단, 또다시 사단으로 쌓아 놓는다. 이념의 정체성을 상실한 한 기구한 스파이의 인생을 그리는 척, 베트남의 역사와 세계 공산화 과정 속 냉전의 역사를 엮어 미국의 시대상을 투영하는 척, 그러면서 영화 만들기의 추잡한 이면과 예술의 이중성에 대한 얘기를 슬쩍 끼워 넣기도 한다. 어쩌면 7부작으로 압축한 거대한 역사서이며 정치 군사학의 교과서인 동시에 영화학의 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삽입되는 음악 선곡과 오리지널 작곡은 이야기를 전환한다. 델 섀넌, 아이슬리 브러더스, 니나 시몬 등 시대 배경에 어울리는, 레트로 감성이 돋보이는 곡들이 수놓아져 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1인 5역을 내세워 마케팅되고 있지만 ‘동조자’는 그 모든 걸 주도해낸, 압도적인 시나리오와 연출 감각이 만들어낸 결과다. 박찬욱 감독이 숙성의 단계를 넘어 마에스트로의 입지에 다다른 지 이미 오래됐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동조자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한 첩자의 이야기이자 ‘조국의 독립과 자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말에 철학적 질문을 하는 작품이다. 앞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국도 아니오, 독립도 아니오, 또한 자유도 아닌, ‘없다’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식의 선문답을 던진다. 이런 드라마는 본래 당장 인기를 끄는 종류가 아니다. 앞으로 30년이나 50년, 아니면 100년 후에도 언급될 지적인 예술품이다. 비엣 타인 응우옌의 원작 소설 <동조자>를 드라마로 만든 이 작품은 주인공인 대위(호아 수안데)의 진술서를 토대로 한다. 공산화된 베트남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1년간 독방에 갇힌 채 자신의 지난 행적을 끊임없이 쓰고, 또 쓰고, 또다시 고쳐 쓰는 과정을 통해 사상 검증을 받는다. 박찬욱의 연출은 이를 해체하고 이어 붙이되 종종 주인공의 기억을 플래시백으로 되돌려 재생한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3부까지가 박찬욱 연출이고 4부는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5부에서 마지막 7부까지는 마크 먼든이 연출했다. 박찬욱은 전체 시나리오를 썼고 총연출의 역할을 맡았다. 이를 쇼 러너 감독이라고 부른다.)
이런 식의 복합적인 시나리오 구성과 작성은 소설 원작을 쓰는 것보다 더 힘든, 고난도의 것이다. 어쩌면 차라리 소설을 쓰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예컨대 원작 소설 <동조자>의 66쪽에서 90쪽에 이르는 제3장은 대위 일행, 그리고 장군(토안 레)의 가족과 비밀경찰들이 사이공 함락 이후 베트남을 탈출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들은 미군이 제공한 수송기 C-180을 타고 떠나야 하는데 이때 북베트남 정규군의 폭격이 빗발친다. 소설을 읽고 있으면 머릿속에 이미지들이 잔뜩 떠올랐다가 사라지는데, 이를 몇 개의 시퀀스와 신으로 이어 나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공정이다. 에피소드1에 나오는 사이공 탈출 장면은 이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압권이다. 박찬욱의 영화 디자인 능력과 IQ가 최고조로 발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부에서 3부까지가 뛰어난 작가의 역량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었다면 영화 팬 입장에서는 4부가 가장 흥미로울 수도 있다. 주인공 대위는 별난 성격의, 아니 미친 성격의 영화감독 니코스 다미아노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만드는 베트남전 영화의 자문을 맡아 영화 현장에 참여하는 일을 한다. 4부는 주인공 대위의 어린 시절, 엄마와의 기억과 트라우마, 그의 삼총사 격의 의형제 같은 친구들의 엇갈린 관계를 설명하기 때문에 필수적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베트남전 영화나 드라마들이 얼마나 심각한 정신병적 상태를 겪으며 가까스로 완성된 것인가를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어서 흥미롭다.
메이렐레스 감독은 4부의 에피소드를 프랜시스 F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제작기나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을 연상하게끔 찍었다. 드라마 속 영화의 미친 대위(데이비드 듀코브니)는 ‘지옥의 묵시록’의 대령(말론 브랜도)이나 ‘플래툰’의 중사 반스(톰 베린저)를 합친 캐릭터다.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미군 역(존 조)은 ‘플래툰’의 윌렘 대포를 연상시킨다. 지금까지 제작된 베트남 영화에 대한 메타 비평과 같은 에피소드이자 역설의 오마주를 담고 있는 스토리다. 박찬욱은 드라마 ‘동조자’의 에피소드1을 시작하면서 이런 문구의 내레이션을 집어넣었다. ‘세상의 전쟁은 두 번 벌어진다. 한 번은 전장에서, 그리고 또 한 번은 기억 속에서.’ 드라마의 흐름상으로 보면 그 글귀는 이렇게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한 번은 전장에서, 그리고 또 한 번은 반혁명의 과정에서.’
주인공 대위의 전쟁은 끝나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가 계속된다. 베트남 공산당이 천신만고 끝에 조국을 통일했다손 치더라도 사이공을 탈출한 장군 일파가 미국 전역에서 반베트남 운동을 벌이고 반혁명운동을 펼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베트남 공산당은 장군의 부관으로 심어 놓은 자신들의 유능한 첩자이자 밀정, 열혈 공산주의자인 대위를 전쟁이 끝난 후에도 탈출한 장군 휘하에 바짝 붙도록 한다. 대위의 스파이 임무가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계속된다.
주인공 대위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점점 상실해 간다. 자신이 미국(식 자본주의)을 사랑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대위는 일본계 미국 여자 소피아(샌드라 오)와의 사랑과 질투에 눈이 멀어 살인까지 저지른다. 그 모든 걸 “당을 위해서”라고 자위하거나, 아니면 “장군의 계획을 무산시켜 무모한 군사작전에 동원될 친구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포장할 뿐이다. 대위는 자신이 어느 편인지를 분간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대위가 이렇게 된 데는 명백히 반혁명운동의 분위기를 염려했던 당의 노선 때문이다. 이런 얘기는 5~7부에서 펼쳐지는데 드라마 속 장군과 베트남 난민들은 실제로 사이공 침공 계획을 세우고 군사 훈련까지 한다.
주인공 대위와 그의 친구 본(프레드 응우옌 칸)은 인도네시아를 거쳐 사이공에 잠입하는 군사작전에 참여하다가 베트남 공산 정규군에게 체포돼 정치범 수용소에 들어가고 진술서를 쓰는 일이 시작된다. 드라마의 흐름은 머리에서 꼬리로, 꼬리에서 머리로 종횡무진 누비는 구조다. 동조자 안엔 여러 이야기가 중첩된다. 삼단 케이크를 다시 삼단, 또다시 사단으로 쌓아 놓는다. 이념의 정체성을 상실한 한 기구한 스파이의 인생을 그리는 척, 베트남의 역사와 세계 공산화 과정 속 냉전의 역사를 엮어 미국의 시대상을 투영하는 척, 그러면서 영화 만들기의 추잡한 이면과 예술의 이중성에 대한 얘기를 슬쩍 끼워 넣기도 한다. 어쩌면 7부작으로 압축한 거대한 역사서이며 정치 군사학의 교과서인 동시에 영화학의 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삽입되는 음악 선곡과 오리지널 작곡은 이야기를 전환한다. 델 섀넌, 아이슬리 브러더스, 니나 시몬 등 시대 배경에 어울리는, 레트로 감성이 돋보이는 곡들이 수놓아져 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1인 5역을 내세워 마케팅되고 있지만 ‘동조자’는 그 모든 걸 주도해낸, 압도적인 시나리오와 연출 감각이 만들어낸 결과다. 박찬욱 감독이 숙성의 단계를 넘어 마에스트로의 입지에 다다른 지 이미 오래됐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