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에 공사비 급등 후폭풍이 커지면서 건자재의 핵심 원재료인 시멘트 가격 인하를 놓고 건설·레미콘업계와 시멘트업계 간 기 싸움이 팽팽하다. 건설업계는 “최근 1년여 동안 시멘트 주재료인 유연탄 가격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만큼 시멘트 가격을 작년 초 수준으로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시멘트업계는 “건설경기 불황으로 시멘트 출하량 자체가 급감해 가격을 낮출 여력이 없다”고 맞섰다. 정부가 중재에 나설 예정인 협상 결과에 따라 신규 분양시장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원재료 60% 내렸는데 시멘트값 올려”

끝 모르는 공사비 상승…정부도 시멘트값 협의 나선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조만간 ‘건설 자재 수급관리 협의체’에서 공사비 인하 방안을 다룰 예정이다. 협의체는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부처와 건설자재직협의회(건자회), 시멘트협회, 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등이 참여한다. 최근 건자회는 시멘트업계 1위인 쌍용C&E와 한국레미콘공업협회 등에 협상 참여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건자회는 지난 5월 국토부에도 공사비 절감을 위해 시멘트 가격 인하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작년 시멘트 재료인 유연탄 가격 하락에도 시멘트 가격을 대폭 올려 공사비 상승 부담이 너무 크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 건축 때 자재비 중 레미콘 비중(금액 기준)이 60%에 달한다. 레미콘의 주요 재료는 시멘트이고, 시멘트 주요 재료는 유연탄이다. 2020년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연탄 가격이 급등해 시멘트업계는 가격 인상에 나섰다. 2021년 t당 7만8800원에서 작년 11월 11만8400원으로 50% 넘게 올렸다.

시멘트 가격 상승은 레미콘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다. 현대건설은 지난 1분기 레미콘 가격이 ㎥당 9만2000원으로 작년(8만7300원) 대비 3개월 만에 5.3% 올랐다고 공시했다. 작년 한 해에만 2022년 말(8만1250원)보다 21.5% 올랐다. 하지만 유연탄 가격이 2022년 하반기 이후 지난달까지 63% 급락한 만큼 시멘트 가격도 되돌려야 한다는 게 건설업계 논리다. 원재료인 유연탄 가격이 하락하자 한일시멘트는 1777억원(102% 상승)의 순이익을 벌어들이는 등 실적이 대폭 개선됐다.

레미콘운송노조의 집단 파업으로 레미콘 운반비가 오를 예정인 것도 건설업계에 부담이다. 레미콘 운반비는 전국적으로 10% 인상이 유력하다.

○“환경비용 등 여력 없어”

시멘트업계는 건설산업 불황 등으로 가격 조정이 어렵다고 밝혔다. 2분기부터 시멘트 출하량 감소가 현실화하고 있어서다. 시멘트협회는 올해 상반기 수요가 전년 동기 대비 약 15%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1분기 출하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약 13.4% 줄어든 1040만t이었는데 지난달부터 수요가 전년 동기 대비 20%가량 감소하는 등 건설경기 침체 영향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치솟는 전기요금과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시설 투자 등도 시멘트업계에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시멘트업계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12%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약 3조2000억원의 투자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시멘트업계 관계자는 “가중되는 환경 부담은 업계가 자체적으로 감내할 수준을 벗어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시멘트업계에서는 시멘트 가격이 아파트 분양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국내 시멘트 가격은 2014~2020년 공시 기준 7만5000원으로 7년간 동결됐다. 같은 기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발표한 민간아파트 평균 분양가격은 ㎡당 246만4000원에서 361만7000원으로 46.8% 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시멘트 가격을 10% 인상했을 때 건설비용 증가에 미치는 영향은 0.2~0.3% 수준에 그친다”고 했다.

박진우/최형창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