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 근로자'만 태아 산재 대상…시민단체 "법 개정해야"
아빠 유해물질 노출과 자녀 질병 '인과성' 인정…산재는 불승인
아버지가 작업 중 유해물질에 노출된 후 태어난 자녀의 선천적 질환은 아버지 업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다만 '임신 중 근로자'가 아닌 남성 근로자 자녀 질병에 대한 산재 승인 근거는 없어 산재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5일 근로복지공단과 시민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에 따르면 공단 천안지사는 2004∼2011년 삼성전자 LCD사업부(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근무한 A씨에 대해 산재 불승인 판정을 최근 통보했다.

유지·보수 엔지니어로 근무한 A씨는 2008년 출생한 자녀가 2011년 선천성 희귀질환인 '차지증후군' 진단을 받자 자신의 업무에 따른 것이라며 산재 신청을 했다.

이에 대해 서울남부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자녀의 차지증후군이 유전자 이상에 따른 것으로, 부계 쪽 문제일 가능성이 높으며 A씨가 근무 과정에서 화학물질 등에 노출됐을 가능성도 높다고 판단했다.

또 차지증후군 세부질환인 선천성 심장질환이 남성 반도체 근로자 자녀에게서 발생 위험이 높은 점, 전자산업 종사 남성 2세에서 선천성 기형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자녀의 질병은 근로자 업무와의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것이 위원들 다수 의견"이라고 위원회는 전했다.

이는 남성 근로자 자녀 질병의 업무 관련성과 관련한 공단의 첫 판단이라고 반올림은 설명했다.

다만 A씨는 산재 승인이나 요양급여를 받지는 못했다.

지난해부터 태아산재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시행되며 임신 중인 근로자가 유해환경에 노출돼 발생하는 태아의 장애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지만, 남성인 A씨의 경우 '임신 중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아 법 적용을 못 받는 것이다.

반올림은 "노동자 본인의 산재, 어머니 태아 산재, 아버지 태아 산재는 모두 업무로 인해 건강을 잃었다는 본질에서는 다른 점이 없는데도 산재보험법은 아버지 태아 산재만 배제하고 차별하고 있다"며 22대 국회에 법 개정을 촉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