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그늘 학습, 함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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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원시]
그늘 학습
함민복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옆산에서 꾀꼬리가 운다
새소리 서로 부딪히지 않는데
마음은 내 마음끼리도 이리 부딪히니
나무 그늘에 좀더 앉아 있어야겠다
[태헌의 한역]
樹蔭學習(수음학습)
後山布穀鳴(후산포곡명)
傍山黃鸝嚶(방산황리앵)
鳥聲相不激(조성상불격)
心與心何衝(심여심하충)
嗚呼余至此(오호여지차)
還坐樹蔭濃(환좌수음농)
[주석]
樹蔭(수음) : 나무 그늘. 원시 제목의 그늘이 나무 그늘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나무’에 해당하는 한자 ‘樹’를 보충한 것이다. / 學習(학습) : 학습.
後山(후산) : 뒷산. / 布穀(포곡) : 뻐꾸기. / 鳴(명) : 울다.
傍山(방산) : ‘옆산’의 의미로 역자가 골라본 말이다. / 黃鸝(황리) : 꾀꼬리. / 嚶(앵) : 새가 지저귀다, 새가 울다.
鳥聲(조성) : 새소리. / 相(상) : 서로. / 不激(불격) : 부딪히지 않다.
心(심) : 마음. / 與心(여심) : 마음과, 마음과 더불어. 원시의 “마음끼리”를 역자가 한역한 표현이다. 다만 “내 마음끼리”의 ‘내’는 글자가 넘쳐 한역을 하지 못하였다. / 何衝(하충) : 어찌나 부딪히나? 얼마나 부딪히나? 원시의 “이리 부딪히니”를 역자가 임의로 한역한 표현이다.
嗚呼(오호) : 아아! / 余(여) : 나. / 至此(지차) : 여기에 이르다, 여기에 오다. ※ 이 구절은 역자가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임의로 삽입한 것이다.
還(환) : 다시, 더. / 坐樹蔭濃(좌수음농) : 나무 그늘 짙은 곳에 앉다. ‘濃’은 역자가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임의로 보탠 글자이다.
[한역의 직역]
나무 그늘에서의 학습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옆산에서 꾀꼬리가 운다
새소리는 서로 부딪히지 않는데
마음은 마음과 얼마나 부딪히나?
아아, 내 여기에 왔으니
짙은 나무 그늘에 더 앉아야겠다
[한역노트]
역자는 이 시를 처음으로 접했을 때 뒷산에 대한 ‘대(對)’로 왜 옆산을 언급했을까고 좀은 의아해 하였다. ‘뒷산’하면 으레 ‘앞산’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이미 습관이 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의아해 하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더니 시인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을 듯도 하였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어떤 장소의 앞과 뒤에서 마주하여 소리를 낸다면 이른바 공명(共鳴) 현상이라는 소리의 간섭이 생길 수밖에 없다. 소리의 간섭은 곧 소리의 부딪힘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앞산과 뒷산으로 대를 만들지 않고 앞산과 옆산으로 대를 만든 것이 아닐까고 여겨본 것이 그날 역자의 생각이었다.
그날 역자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이 시는, 시인이 마음자리가 다소 어지러운 날에 나무 그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새소리들’을 듣고 시상(詩想)을 일으켜 지었을 것으로 보인다. 시인이 이 시에 등장시킨 뻐꾸기와 꾀꼬리는 무엇보다 울음소리가 아름다운 새들이다. 뻐꾸기는 뻐꾸기대로, 또 꾀꼬리는 꾀꼬리대로 자기 소리를 내도 그 소리가 부딪히지 않는다고 했으니, 시인에게는 새소리가 더없이 아름답게 들렸을 것이다. 가청지역(可聽地域) 안에서 들리는 ‘소리들’이 부딪혀 깨어지지 않고 서로가 아름다움이 될 수 있는 세상, 역자는 그것이 바로 ‘자연(自然)’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이란 이처럼 인위(人爲)도 없고 가식(假飾)도 없이 그저 자연스러운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시인은 ‘내 마음끼리’도 부딪힌다고 하였다. 내 마음끼리도 그러할진대,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내 마음과 내 마음이 부딪히는 이유에 대해 시인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부딪히지 않는다고 한 뻐꾸기와 꾀꼬리 소리를 앞세운 것을 근거로 조심스럽게 추정해 보자면, ‘자연스럽지 못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위와 가식이 많거나 사사로움이 개입되는 만큼 마음은 ‘자연’과 멀어지기 마련이다. 거기에 욕심까지 개입된다면 그 멀어지는 정도는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자연은 또 순리(順理)이기도 하다. 새가 모종의 의사를 표시하고자 울 듯이, 사람이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 것도 순리이다. 우리에게 꼭 지켜야 할 어떤 원칙(原則)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따르는 것 또한 순리일 것이다. 그러므로 ‘무원칙’ 역시 내 마음과 내 마음의 부딪힘을 유도하는 하나의 ‘부자연’이 되기에 충분할 듯하다.
이제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이 부딪히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일단 마음이 서로 부딪힌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이 맞지 않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항간에 떠도는 우스갯소리 가운데 자기 배우자를 일컬어 “내 인생의 로또”라고 하는 말이 있다. 자신이 현재의 배우자를 만나 인생이 로또처럼 대박이 났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45개의 숫자 가운데 6개를 뽑는 로또 게임에서 단 하나도 맞지 않을 때가 많듯이, 지금의 배우자와는 단 하나도 나와 맞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라고 한다. 맞는 것이 없으니 부딪힐 수밖에 없다. 같이 애를 만들고 같이 사는 부부 사이도 그러할진대 남들과는 또 오죽하겠는가!
이 시의 제목이 “그늘 학습”이니, “나무 그늘에 좀더 앉아 있어야겠다”는 말은 마음 학습, 곧 마음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이 역시 시인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마음 공부”의 본질은 ‘내 마음과 내 마음은 물론,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이 서로 부딪히지 않게 하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대목에서 역자가 알고 있는 시 한 수를 소개하는 것이, 역자가 하고 싶은 말을 장황하게 늘여놓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것으로 여겨진다. 역자가 소개할 시는, 이인좌(李麟佐)의 난 이후에 어사 박문수(朴文秀)로부터 일엽청(一葉靑)이라는 칭호를 얻어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조한유(曺漢儒) 선생의 생부(生父) 조념(曺淰) 선생이 지은 <盟心詩(맹심시)>, 곧 “마음에 맹서하는 시”이다.
天降衷靈是曰心(천강충령시왈심)
存爲君子去爲禽(존위군자거위금)
始知那箇下工處(시지나개하공처)
前聖相傳一字欽(전성상전일자흠)
하늘이 내려준 감추어진 영묘함이 마음이란 건데
잘 보존하면 군자가 되고 버려두면 금수가 되네
어느 것이 공력 기울일 곳인지 비로소 알았나니
전대 성현들이 서로 전해온, ‘공경欽’ 한 글자라네
조념 선생이 얘기한 ‘공력 기울일 곳’은 마음 공부할 내용을 가리키는 말이다. 선생이 마음 공부의 요체로 역설한 “공경[欽]”은 당연히 ‘나’가 아닌 ‘남’에 대한 것이다. 남에 대한 공경이란 바로 ‘존중과 배려’가 아니겠는가! 내 마음속에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충분하다면, 부부끼리는 물론 남들과도 마음으로 부딪힐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말은 쉬워도 지키기 어려운 것이 또 ‘마음’이라는 것이다. 『맹자(孟子)』에서, “잡아두면 남아 있고 버려두면 사라지며,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어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는 것은, 오직 마음을 두고 이르는 것이리.[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라고 한 말이 어찌 공연한 것이겠는가! 마음 지키기를 성(城) 지키듯이 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자는 연(聯) 구분 없이 5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6구의 오언고시로 재구성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시어는 한역을 생략하고, 일부 시어는 원시에 없는 말을 임의로 보태었다. 한역시의 제5구는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역자가 전적으로 보충한 것이므로 이 점, 양해를 부탁드린다. 한역시는 1구와 2구에서는 매구 압운을 하고 그 이하에서는 짝수구에 압운을 하였다. 그러므로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鳴(명)’·‘嚶(앵)’과 ‘衝(충)’·‘濃(농)’이 된다.
2024. 7. 9.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그늘 학습
함민복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옆산에서 꾀꼬리가 운다
새소리 서로 부딪히지 않는데
마음은 내 마음끼리도 이리 부딪히니
나무 그늘에 좀더 앉아 있어야겠다
[태헌의 한역]
樹蔭學習(수음학습)
後山布穀鳴(후산포곡명)
傍山黃鸝嚶(방산황리앵)
鳥聲相不激(조성상불격)
心與心何衝(심여심하충)
嗚呼余至此(오호여지차)
還坐樹蔭濃(환좌수음농)
[주석]
樹蔭(수음) : 나무 그늘. 원시 제목의 그늘이 나무 그늘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나무’에 해당하는 한자 ‘樹’를 보충한 것이다. / 學習(학습) : 학습.
後山(후산) : 뒷산. / 布穀(포곡) : 뻐꾸기. / 鳴(명) : 울다.
傍山(방산) : ‘옆산’의 의미로 역자가 골라본 말이다. / 黃鸝(황리) : 꾀꼬리. / 嚶(앵) : 새가 지저귀다, 새가 울다.
鳥聲(조성) : 새소리. / 相(상) : 서로. / 不激(불격) : 부딪히지 않다.
心(심) : 마음. / 與心(여심) : 마음과, 마음과 더불어. 원시의 “마음끼리”를 역자가 한역한 표현이다. 다만 “내 마음끼리”의 ‘내’는 글자가 넘쳐 한역을 하지 못하였다. / 何衝(하충) : 어찌나 부딪히나? 얼마나 부딪히나? 원시의 “이리 부딪히니”를 역자가 임의로 한역한 표현이다.
嗚呼(오호) : 아아! / 余(여) : 나. / 至此(지차) : 여기에 이르다, 여기에 오다. ※ 이 구절은 역자가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임의로 삽입한 것이다.
還(환) : 다시, 더. / 坐樹蔭濃(좌수음농) : 나무 그늘 짙은 곳에 앉다. ‘濃’은 역자가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임의로 보탠 글자이다.
[한역의 직역]
나무 그늘에서의 학습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옆산에서 꾀꼬리가 운다
새소리는 서로 부딪히지 않는데
마음은 마음과 얼마나 부딪히나?
아아, 내 여기에 왔으니
짙은 나무 그늘에 더 앉아야겠다
[한역노트]
역자는 이 시를 처음으로 접했을 때 뒷산에 대한 ‘대(對)’로 왜 옆산을 언급했을까고 좀은 의아해 하였다. ‘뒷산’하면 으레 ‘앞산’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이미 습관이 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의아해 하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더니 시인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을 듯도 하였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어떤 장소의 앞과 뒤에서 마주하여 소리를 낸다면 이른바 공명(共鳴) 현상이라는 소리의 간섭이 생길 수밖에 없다. 소리의 간섭은 곧 소리의 부딪힘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앞산과 뒷산으로 대를 만들지 않고 앞산과 옆산으로 대를 만든 것이 아닐까고 여겨본 것이 그날 역자의 생각이었다.
그날 역자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이 시는, 시인이 마음자리가 다소 어지러운 날에 나무 그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새소리들’을 듣고 시상(詩想)을 일으켜 지었을 것으로 보인다. 시인이 이 시에 등장시킨 뻐꾸기와 꾀꼬리는 무엇보다 울음소리가 아름다운 새들이다. 뻐꾸기는 뻐꾸기대로, 또 꾀꼬리는 꾀꼬리대로 자기 소리를 내도 그 소리가 부딪히지 않는다고 했으니, 시인에게는 새소리가 더없이 아름답게 들렸을 것이다. 가청지역(可聽地域) 안에서 들리는 ‘소리들’이 부딪혀 깨어지지 않고 서로가 아름다움이 될 수 있는 세상, 역자는 그것이 바로 ‘자연(自然)’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이란 이처럼 인위(人爲)도 없고 가식(假飾)도 없이 그저 자연스러운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시인은 ‘내 마음끼리’도 부딪힌다고 하였다. 내 마음끼리도 그러할진대,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내 마음과 내 마음이 부딪히는 이유에 대해 시인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부딪히지 않는다고 한 뻐꾸기와 꾀꼬리 소리를 앞세운 것을 근거로 조심스럽게 추정해 보자면, ‘자연스럽지 못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위와 가식이 많거나 사사로움이 개입되는 만큼 마음은 ‘자연’과 멀어지기 마련이다. 거기에 욕심까지 개입된다면 그 멀어지는 정도는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자연은 또 순리(順理)이기도 하다. 새가 모종의 의사를 표시하고자 울 듯이, 사람이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 것도 순리이다. 우리에게 꼭 지켜야 할 어떤 원칙(原則)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따르는 것 또한 순리일 것이다. 그러므로 ‘무원칙’ 역시 내 마음과 내 마음의 부딪힘을 유도하는 하나의 ‘부자연’이 되기에 충분할 듯하다.
이제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이 부딪히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일단 마음이 서로 부딪힌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이 맞지 않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항간에 떠도는 우스갯소리 가운데 자기 배우자를 일컬어 “내 인생의 로또”라고 하는 말이 있다. 자신이 현재의 배우자를 만나 인생이 로또처럼 대박이 났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45개의 숫자 가운데 6개를 뽑는 로또 게임에서 단 하나도 맞지 않을 때가 많듯이, 지금의 배우자와는 단 하나도 나와 맞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라고 한다. 맞는 것이 없으니 부딪힐 수밖에 없다. 같이 애를 만들고 같이 사는 부부 사이도 그러할진대 남들과는 또 오죽하겠는가!
이 시의 제목이 “그늘 학습”이니, “나무 그늘에 좀더 앉아 있어야겠다”는 말은 마음 학습, 곧 마음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이 역시 시인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마음 공부”의 본질은 ‘내 마음과 내 마음은 물론,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이 서로 부딪히지 않게 하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대목에서 역자가 알고 있는 시 한 수를 소개하는 것이, 역자가 하고 싶은 말을 장황하게 늘여놓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것으로 여겨진다. 역자가 소개할 시는, 이인좌(李麟佐)의 난 이후에 어사 박문수(朴文秀)로부터 일엽청(一葉靑)이라는 칭호를 얻어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조한유(曺漢儒) 선생의 생부(生父) 조념(曺淰) 선생이 지은 <盟心詩(맹심시)>, 곧 “마음에 맹서하는 시”이다.
天降衷靈是曰心(천강충령시왈심)
存爲君子去爲禽(존위군자거위금)
始知那箇下工處(시지나개하공처)
前聖相傳一字欽(전성상전일자흠)
하늘이 내려준 감추어진 영묘함이 마음이란 건데
잘 보존하면 군자가 되고 버려두면 금수가 되네
어느 것이 공력 기울일 곳인지 비로소 알았나니
전대 성현들이 서로 전해온, ‘공경欽’ 한 글자라네
조념 선생이 얘기한 ‘공력 기울일 곳’은 마음 공부할 내용을 가리키는 말이다. 선생이 마음 공부의 요체로 역설한 “공경[欽]”은 당연히 ‘나’가 아닌 ‘남’에 대한 것이다. 남에 대한 공경이란 바로 ‘존중과 배려’가 아니겠는가! 내 마음속에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충분하다면, 부부끼리는 물론 남들과도 마음으로 부딪힐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말은 쉬워도 지키기 어려운 것이 또 ‘마음’이라는 것이다. 『맹자(孟子)』에서, “잡아두면 남아 있고 버려두면 사라지며,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어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는 것은, 오직 마음을 두고 이르는 것이리.[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라고 한 말이 어찌 공연한 것이겠는가! 마음 지키기를 성(城) 지키듯이 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자는 연(聯) 구분 없이 5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6구의 오언고시로 재구성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시어는 한역을 생략하고, 일부 시어는 원시에 없는 말을 임의로 보태었다. 한역시의 제5구는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역자가 전적으로 보충한 것이므로 이 점, 양해를 부탁드린다. 한역시는 1구와 2구에서는 매구 압운을 하고 그 이하에서는 짝수구에 압운을 하였다. 그러므로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鳴(명)’·‘嚶(앵)’과 ‘衝(충)’·‘濃(농)’이 된다.
2024. 7. 9.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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