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제 시 읽는 이들은 주저앉지 말길…볕들 날 온다는 희망 전하고 싶어요"
‘현대 시는 공감하기 어려운 데다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서하(32·사진)의 시를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여성과 난민, 동성애자 등 소수자 문제를 긴 호흡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불편한데 매력적이다’는 반응이 절반, ‘해설 없이 읽기 벅차다’는 평이 나머지였다.

시인으로서 한층 원숙해진 걸까. 2016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어려운 시’를 고수해 온 이 시인이 쉬운 언어로 돌아왔다. 전작 <진짜 같은 마음>(2020), <조금 진전 있음>(2023)에선 볼 수 없던 일이다. 최근 3집 <마음 연장>을 출간한 시인은 “무언가에 쫓기듯이 썼던 1·2집과 달리 어떤 구애도 받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풀어냈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은 ‘기만하는 습관’을 반성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동안 시인은 문학의 언어로 소수자 문제를 지적해왔지만, 정작 난민의 삶이나 동성애자의 정체성을 직접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자기 모습이 위선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경각심이 생긴 이유다.

[책마을] "제 시 읽는 이들은 주저앉지 말길…볕들 날 온다는 희망 전하고 싶어요"
이런 심경 변화는 시집에 수록된 에세이 ‘기만한 습관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나는 스스로를 기만적으로 여기게 되었다. 예상을 빗나가는 시를 쓰길 바라면서 정작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은 그래, 좀 모순적이지.”

시인이 그동안 골몰해온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식은 건 아니다. ‘모두가 덜 춥고 불행했으면 좋겠는데’(‘알음알음’)란 바람은 여전히 유효하다. 강경애 작가의 <인간문제>에서 영감을 받아 쓴 ‘뒤로 더 뒤로’는 상류층에 의해 유린당한 하층 계급의 여성 이야기다.

시집 제목의 ‘마음 연장’은 수록작 ‘집 연장하기’에서 따왔다. 2018년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에서 영감을 얻었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삶을 ‘연장’하는 존재는 난민뿐만이 아니다. 피터 팬 같은 동심을 안고 살아가지만, 이를 애써 무시하며 살아가야 하는 ‘난민화된 어른들’의 표상이다.

“저의 시를 읽는 사람들이 주저앉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삶은 연장되고 있으니까요. 계속 버티다 보면 언젠간 볕들 날이 오지 않을까요. 적어도 소극적인 희망을 전하고 싶습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