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사내 저성과자 성과 향상 프로그램(PIP)을 두 차례 수료하고도 업무 성과가 개선되지 않은 간부사원에게 내린 정직 처분은 부당하다는 1심 법원 판단이 나왔다. 하나의 사유로 두 번 이상 징계처분을 내리는 건 ‘이중 징계’에 해당해 법에 어긋난다는 취지다. 최근 대법원이 현대차 PIP의 정당성을 인정한 가운데 하급심에서 이에 반하는 판결이 나와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다.

○“PIP 점수만으로 징계 못 해”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는 현대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정직 구제 재심 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일부 징계 사유는 이중 징계에 해당하고, 나머지 부분만으로 정직이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현대차는 2009년부터 간부사원을 대상으로 직전 3개 연도 누적 인사평가 결과가 하위 1~2% 미만이면 PIP 대상자로 선정하고 있다. 대상자는 교육을 수료하고 업무에 복귀한 뒤 1차 평가에서 개선이 없으면 2차 교육과 평가를 받는다. 여기서도 미달하면 면담을 거쳐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다.

현대차는 노조 간부였던 A씨를 2019년 PIP 대상자로 선정하고, 이듬해 3월 ‘근무태도 및 근무성적 불량, 상사 업무지시 불이행’을 사유로 정직 2개월 처분을 내렸다. 이어 2020년 또다시 A씨를 PIP 대상자로 정하고 다음 해 5월 ‘근무태도 및 근무성적 불량’을 사유로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을 했다.

이에 A씨는 2차 징계에 대해 중노위에 구제신청을 했고, 중노위는 “1·2차 징계 사유가 중첩돼 ‘이중 징계’가 인정된다”며 청구를 받아들였다. 대법원 판례는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해 이중 징계한 경우 일사부재리 원칙이나 이중처벌 금지 원칙에 위배돼 그 징계 처분이 무효라고 본다.

법원 판단도 같았다. 재판부는 “징계위에 부의된 징계 사유에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A씨 인사평가 결과가 저조했다거나, A씨가 장기간 근무 성적이 불량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씨의 방어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도 징계 사유는 부의 내용의 기재대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현대차는 “2차 징계는 두 번째 PIP 평가 결과에 따라 이뤄졌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PIP의 구체적 평가 항목이 근무 태도나 근무 성적에 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PIP 점수가 저조하다는 것만으로 A씨를 ‘근무 태도나 근무 성적이 불량하고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는 자’로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제도 설계 신중해야”

최근 법원에서는 PIP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이어져왔다. 대법원은 올해 1월 현대차가 중노위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 재심 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원심은 “현대차가 고용 유지 및 해고 회피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으나, 대법원은 “사회 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에 해당한다”며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성과를 이유로 한 해고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요건으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 △상당 기간 최소한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과 △낮은 개선 가능성 등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A씨에게 내린 1차 징계의 정당성을 따지는 소송 1심에서 작년 12월 승소했다. 하지만 2차 징계를 둘러싼 이번 소송에서는 ‘이중 징계’를 이유로 상반된 판단이 나온 것이다. 한 노동전문 변호사는 “최근 법원은 PIP를 통한 저성과자 관리를 인정하는 추세”라면서도 “섣부른 PIP 설계는 근로자의 손해배상 소송, 당국 시정명령 등 역효과를 낼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경진/곽용희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