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신경 쓰지 마라, 나는 잘 있다
내가 근무하는 가나문화재단의 소장품 중에는 보물이 한 점 있다. 바로 ‘청량산 괘불탱’이다. 세로 9.5m, 가로 4.5m나 되는 거대한 크기의 비단에 화려하고 아름답고 위용이 넘치는 석가여래 부처님께서 온화한 표정으로 서 계시는 작품이다. 괘불은 불교에서 특별한 법회나 의식을 할 때 제작해서 걸어두는 대형 불화를 말한다. 괘불탱의 탱(幀)은 그림 족자라는 뜻이다. 대단한 크기 때문에 평상시엔 모든 시설을 잘 갖춘, 안전한 수장고 안 커다란 괘불궤 속에 말려(?) 계신다.

‘청량산 괘불탱’은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됐던 작품이다. 언론에 공개하기 위해 날씨가 청청한 겨울날 잠시 야외에 걸려 있던 순간이 기억난다. 그때는 그냥 감탄만 하고 있었는데 이런 게 인연인지 이제는 그 부처님이 우리 수장고에 계시니 새삼 놀랍다.

내가 이 작품과 관련해 잘못한 적이 있는데 짧게 요약해 보자면 ‘감히 짜증을 낸 죄’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젠 다들 잘 아시겠지만, 보물 국보 같은 국가유산(문화재의 새 이름)도 개인이나 사립 기관이 소유할 수 있다. 국가는 보관 환경이 쾌적한지, 각종 설비는 잘 돼 있는지, 실제 작품이 멀쩡한지, 몰래 다른 곳에 옮기지는 않았는지, 복원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등을 세세하게 살피는데 좀 성가실 때가 많다. 엊그제 한 것 같은데, 지난달에 한 것 같은데, 무슨 조사가 또 나오고, 또 나오고….

겁 없이 짜증부터 낸 이번의 일도, 결국 그런 성가심 때문이었다. 또 무슨 조사를 해야 한다고 공문이 왔기 때문이다. ‘저번에 했는데요?’라고 되물어 봐도 이전과 다른 목적의 것이란다. 국가유산청에서 지원하는 ‘정밀 조사’ 사업이라고 했다. 우리 수장고에 잘 모셔진 거대한 괘불을 어떤 장소로 옮겨 가서 다 펼친 다음 비단과 안료, 보관 상태를 상세히 조사해야 한다는 거다. 결과에 따라 복원이 필요하면 복원사업 예산이 편성될 거고, 보관 환경에 보완이 필요하면 그 예산이 편성될 수도 있다고 했다.

조사하는 건 좋은데, 그 큰 불화를 꺼내고 다시 넣을 일이 너무 고민이었다. 불화를 넣어두는 괘불궤만 해도 가로로 5m나 되니, 이걸 싣고 가려면, 또다시 들여오려면 대체 얼마만 한 차가 와야 하는 것이며, 수장고 코앞에는 큰 차를 댈 수 없으니 차가 들어올 수 있는 도로까지는 사람이 끌고 나와야 하는데, 그럼 몇 명의 인원이 필요한 것인가. 프라이빗 수장고라 외부 인원이 출입할 수 없으니, 일정 지점까지는 우리 직원들이 하고 또 그 지점부터 국가유산청 사업 조사팀이 투입될 수 있는 상황인데 등등의 이유로 짜증이 치밀었다.

결론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길을 막았다고 거친 말로 항의하는 아저씨 몇 명의 고함이 없지는 않았지만 작품은 잘 운반됐고, 잘 돌아왔다. 그날 밤 침대에서 ‘청량산 괘불탱’이 체육관 한가운데 펼쳐져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정밀 조사의 참관인 자격으로 그 모습을 봤다. 부처님은 평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눈물이 날 뻔했다. 병상에 누워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는 기분이랄까, ‘하나도 신경 쓰지 마라, 나는 잘 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은 그 얼굴이 기억났다. 나는, 부처님을 위한답시고 불편한 분위기를 조성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행동을 한 거다.

내일모레는 또 어느 기관에서 국가유산 조사를 하러 나온다. ‘철조석가여래좌상’이 대상이다. 이번에는 곤두서지 않고 미소 띤 얼굴로 사람들을 맞이할 거다. 꽃비로 촉촉해진 중생의 마음은 아직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