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펜 "러 도발, 내 책임 아냐" 거리두기
佛 정보당국 "러·극우 결탁하면 동맹국서 정보 교환 배제될 수도"
러, 르펜 공개 지지…佛 '정치 개입' 우려 확산
프랑스 극우 국민연합(RN)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지지 표명'이 총선 2차 투표를 앞둔 프랑스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지난 3일(현지시간) 러시아 외무부는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지난달 30일 총선 1차 투표에서 승리한 후 기뻐하는 마린 르펜 RN 의원의 사진을 게시했다.

이와 함께 "프랑스 국민은 자국의 이익을 위한 자주적 외교 정책을 원하며 워싱턴과 브뤼셀(EU)의 지시로부터 결별을 원한다.

프랑스 당국은 대다수 시민의 이런 태도 변화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적었다.

러시아가 2차 투표를 앞두고 사실상 RN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것으로, 러시아와 RN의 유착 의혹에 무게를 더한 셈이다.

프랑스 정치권에서는 RN과 러시아가 특수 관계라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RN의 전신인 국민전선(FN)이 2014년 자금난을 겪을 때 러시아-체코 합작 은행에서 960만 유로(당시 약 125억원)를 빌렸고 이 일을 계기로 RN이 러시아에 우호적으로 됐다는 것이다.

실제 마린 르펜 의원은 유럽 내에서 대표적인 친(親) 푸틴 인사로 분류된다.

르펜 의원은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해 서방 대다수 국가가 이를 비난했을 때 "크림반도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일부였다"며 러시아를 두둔했다.

또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가 비생산적이고 유럽 경제에 해롭다며 제재보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는 1차 투표를 한 달 앞두고 러시아 모스크바를 찾아 크렘린궁에서 푸틴 대통령과 면담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푸틴 대통령에게 "프랑스와 유럽에 중요한 인물"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르펜 의원의 이런 친러시아 성향은 선거철마다 단골 논쟁거리였다.

이 때문에 러시아가 자신에게 우호적이고 EU의 축소를 주장하는 극우 세력의 당선을 위해 선거에 개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늘 뒤따랐다.

러, 르펜 공개 지지…佛 '정치 개입' 우려 확산
르펜 의원은 그러나 지난해 5월 외국 세력의 정치 개입 의혹을 조사한 하원 위원회에 출석해 "대출 승인이 우리 입장이나 의견에 영향을 미친 게 없다"며 유착 의혹을 부인했다.

올해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는 더 적극적으로 러시아와 거리두기에 나섰다.

르펜 의원은 올해 3월 의회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유럽 문턱에서 전쟁을 일으켜 근 20년 이래 가장 극적인 지정학적 위기를 촉발했다"며 러시아를 비판했다.

이번 총선 과정에서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는 TV 토론에서 "러시아 제국주의가 우크라이나 같은 동맹국을 흡수하는 걸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를 운영할 경우) 러시아의 간섭 시도를 극도로 경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공개 지지에 RN은 곤혹스러워졌다.

르펜 의원은 3일 방송 인터뷰에서 "프랑스와 마크롱에 대한 러시아의 도발에 전혀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러시아가) 이렇게 드러내고 도발적인 트윗을 올리면 일종의 간섭으로 간주할 수 있다"며 진화에 나섰다.

EU와 프랑스의 국방·정보 관계자들은 러시아의 RN 지지 표명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RN이 이번 총선을 통해 프랑스의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EU 국방소위원회 위원장 나탈리 루아조 유럽의회 의원은 "르펜은 푸틴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계속 주장할 수 있지만 푸틴은 RN 지지를 숨기지 않는다"며 "프랑스가 더 이상 (우크라이나 지원에) 참여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걱정했다.

정보 당국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한 당국 관계자는 "우리 모두 RN 정부와 러시아 간 결탁 위험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외국의 개입이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으나 RN 후보들을 지지하는 선전이 지속됐다고 언급했다.

정보기관인 해외안보국(DGSE) 내에서는 RN이 집권하면 프랑스가 대러시아 관련 동맹국 간 정보 교환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RN이 관련 정보를 러시아에 흘릴 수 있다는 불신 탓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