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오른쪽)이 지난 6월25일 경기도 고양시 향동에 있는 에너지엑스DY빌딩을 방문해 홍두화 에너지엑스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에너지엑스DY빌딩은 국내 상업용 빌딩으로는 처음으로 제로에너지빌딩 1등급을 취득했다. 한국에너지공단 제공
이상훈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오른쪽)이 지난 6월25일 경기도 고양시 향동에 있는 에너지엑스DY빌딩을 방문해 홍두화 에너지엑스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에너지엑스DY빌딩은 국내 상업용 빌딩으로는 처음으로 제로에너지빌딩 1등급을 취득했다. 한국에너지공단 제공
경기도 고양시 향동에 있는 7층 규모 오피스 빌딩인 에너지엑스DY빌딩(이하 DY빌딩)은 한국 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건물로 평가 받는다. 지난해 8월 준공된 이 건물의 에너지 자립률은 121.7%에 달한다. 사용 전력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스스로 만드는 ‘작은 발전소’로, 정부의 친환경건축 인증인 제로에너지빌딩(ZEB) 최고등급(1등급)을 받은 국내 최초의 상업용 빌딩이다.

에너지자립의 비결은 치밀한 설계에 있다. 태양광 발전 효율이 높은 건물의 남·서향을 중심으로 옥상을 포함한 모든 건물 외벽에 태양광 패널이 배치됐다. 건물 서측으론 전략적으로 각 층이 하나로 연결되는 조경 공간을 만들어 공기가 흘러가며 열을 빠져나가게 하는 ‘윈드터널’을 배치했다. 건물의 설계·시공을 맡은 홍두화 에너지엑스 대표는 “모든 설계를 에너지 자립에 맞추면서도 효율적으로 공간을 창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제로에너지건축으로 소나무 389만그루 심은 효과

DY빌딩과 같은 제로에너지빌딩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등을 활용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 친환경 건축물을 의미한다. 정부는 건축 분야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2017년 ZEB 인증제를 도입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에너지공단이 운영하는 ZEB 인증은 에너지 자립률에 따라 최고 1등급(100% 이상)에서 5등급(20∼40%)까지 구분된다.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단계적으로 ZEB 인증을 의무화하고 있다. 2020년부터 연면적 1000㎡ 이상인 공공건축물은 최소 ZEB 5등급을 따야 한다. 2023년부턴 적용 대상이 500㎡ 이상 공공건축물 및 30세대 이상 공동주택(공공)으로 확대됐다. 내년부터 민간 건축물도 연면적 1000㎡ 이상이거나 30세대 이상 공동주택도 ZEB 5등급 성능수준으로 의무화가 적용될 예정이다.
경기도 고양시 향동동에 있는 에너지엑스DY빌딩의 모습. 한국에너지공단 제공
경기도 고양시 향동동에 있는 에너지엑스DY빌딩의 모습. 한국에너지공단 제공
2017년부터 올해 5월까지 총 5711개의 공공·민간 건물이 ZEB 인증을 받았다. 작년 말까지 ZEB 인증 취득 건축물이 감축한 탄소배출량은 55만6558t에 달한다. 소나무 389만 그루를 심어야 가능한 양이다.

제로에너지건축은 공사비가 일반 건물 대비 10~30% 가량 높지만 태양광 패널 등 필수 자재 가격이 낮아지면서 경제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1000㎡ 기준 업무시설이 ZEB 5등급을 달성하기 위한 공사비는 약 9000만원 수준이지만 4년 정도면 아낀 에너지 비용으로 회수가 가능하다. ZEB 인증을 받은 건축물에 주어지는 용적률 완화(최대 15%), 취득세 감면(최대 20%)등 정부 차원의 ‘인센티브’까지 더해지면 그 효과는 배가 될 수 있다.

한국에너지공단은 희망 건축주를 대상으로 해당건물에 대한 에너지 최적화 컨설팅을 제공하고, 에너지 효율을 측정·분석하는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 구축 비용도 지원하고 있다.

이상훈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은 “전체 건축물 가운데 97%가 민간 건축물이지만 공사비 상승 부담 등으로 인해 제로에너지건축물 보급이 저조한 상황”이라며 “다양한 지원책과 인센티브 확대 등 제도 개선을 통해 민간 시장의 수용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국민연금·블랙락 투자 받으려면 친환경인증 ‘필수’

이미 제로에너지건축은 전 세계적 트렌드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건축물은 전 세계 에너지 소비의 37%, 탄소배출의 52%를 차지한다. 건축물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지 않고선 탄소중립이 요원한 것이다.



국민연금 같은 연기금을 물론 블랙스톤, 블랙락 등 초대형 자산운용사들까지 글로벌 ‘큰 손’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미국의 친환경건축 인증제도인 LEED 인증을 받은 건물에만 투자하고 있다. 이제 투자업계의 대세가 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투자의 일환이다. 오피스빌딩 뿐 아니라 물류센터, 데이터센터까지도 투자를 받으려면 친환경성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관련 시장의 잠재성은 상상 이상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전 세계 제로에너지건축 시장 규모는 2020년 6000억달러에서 2035년 1조4000억달러(1960조원)으로 2배 이상 확대될 전망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50년 국내 시장 규모만 180조원에 이른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