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열풍으로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자 글라스 기판(유리 기판)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SKC, 삼성전기, LG이노텍 등 국내 3사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유리 기판은 빠른 속도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에너지 효율성이 뛰어나 ‘꿈의 기판’으로 불린다. 이 시장을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에 따라 반도체업계에서 입지가 갈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유리 기판은 현재의 플라스틱 소재 대신 유리를 사용한 차세대 기판이다. 반도체 회로가 점점 얇고 복잡해지면서 기존 플라스틱 기판에 초미세 회로를 얹기엔 표면이 거칠고 열에 취약해 반도체 성능이 떨어지자 유리가 대안으로 떠오른 것. 유리 기판은 표면이 매끈해 성능을 배가하고, 반도체 칩과 메인 기판을 연결하는 중간기판(인터포저)도 필요 없어 두께를 기존보다 25% 이상 얇게 만들 수 있다. 열에 강해 고온에서도 휨 현상이 없다.

이런 장점 때문에 고성능 컴퓨팅 수요가 커질수록 유리 기판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리 소재 특성상 외부 충격에 쉽게 깨지는 점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시장조사기관 더인사이트파트너스에 따르면 세계 유리 기판 시장 규모는 올해 2300만달러(약 314억원)에서 연평균 약 5.9%씩 증가해 2034년 42억달러(약 5조7350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시장 확대의 포문을 연 곳은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이다. 인텔은 지난해 향후 5~6년 내, 2028년께부터 유리 기판을 적용하겠다고 공식화하며 1조3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유리 기판 도입이 빨라질수록 선제적으로 이 시장에 뛰어든 국내 기업은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플라스틱 기판 시장은 일본의 이비덴, 신코덴키, 대만의 유니마이크론 등이 주도하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은 일찌감치 유리 기판 시장 확대에 대비해왔다.

가장 앞선 기업은 SK 자회사 SKC다. 2022년 미국 조지아주 커빙턴에서 약 3000억원을 투자한 SKC의 계열사 앱솔릭스는 최근 1공장을 완공해 시제품 생산에 나섰다. 삼성전기도 내년 시제품 생산을 마무리하고 2026년부터 양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LG이노텍 역시 올해 관련 사업 조직을 꾸리고 사업을 준비 중이다. 이 밖에 일본과 대만 기업들도 사업화를 검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AI 시대가 고도화되면 유리 기판 상용화도 더 빨라질 것”이라며 “반도체 기판 업계에도 상당한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