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금리 인하 요구와 중앙은행의 독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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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 에둘러 금리 관련 주장
자영업자 등 민생 악화 때문
다만 금리 인하가 만능은 아냐
잘못 손 대면 원·달러 환율 상승
돈 필요한 곳에 신용공급이 우선
한국은행 대출 제도 손볼 때
강태수 KAIST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前 한국은행 부총재보
자영업자 등 민생 악화 때문
다만 금리 인하가 만능은 아냐
잘못 손 대면 원·달러 환율 상승
돈 필요한 곳에 신용공급이 우선
한국은행 대출 제도 손볼 때
강태수 KAIST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前 한국은행 부총재보
“이제 금리는 내려갈 방향밖에 없다.”(한덕수 국무총리) “고금리는 자금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선거철도 아닌데 정부와 여당이 기준금리 인하의 불가피성을 에둘러 주장하고 나섰다.
역풍이 만만치 않다. 한국은행 금리정책의 독립성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정치권력이 통화당국을 존중하는 관행은 우여곡절을 거듭한 역사적 결과물이다. 1992년 미국 대선 기간 중 해프닝 한 토막.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재선을 노리던 때다. 앨런 그린스펀 당시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에게 금리 인하를 재촉했다. 그린스펀은 응하지 않았다. 재선에 실패한 부시는 5년 후 TV에 나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그린스펀을 공개 비난했다. 그린스펀을 Fed 의장에 앉힌 임명권자가 부시다. 배신감에 분이 덜 풀렸던 것이다.
후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새 관행을 세웠다. “그린스펀 의장에게 할 수 있는 명령은 ‘발언대로 나와 서라’는 게 전부다.” 그린스펀 재임명식장에서 한 클린턴의 발언이다. 그린스펀 재임 기간(1987~2006년)은 미국 경제의 대(大) 안정기(great moderation)로 높게 평가된다.
정부·여당도 한은의 독립적 의사결정을 부정할 때 예상되는 반발을 알고 있을 거다. 그럼에도 금리 인하를 기대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나. 전국 외식업체 82만 개 중 18만 개가 망했다. 2024년 3월 말 자영업자 대출 연체액이 11조원이다. 역대 최대다. 올 들어 5월까지 지역신용보증재단이 소상공인 대출을 대신 갚아준 대위변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4% 늘었다. 수많은 가계가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영세 소상공인·자영업자의 피맺힌 몸부림을 보듬고 추스르는 것, 마땅히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정부·여당의 메시지는 민생 실태를 한은에 전달하려는 몸짓 아닐까. 한은을 옭아매는 정치적 압박으로 예단할 건 아니다.
다만 금리 인하가 ‘요술 방망이’는 아니다. 금리에 섣불리 손 대면 낭패하기 쉽다. 서민·소상공인·자영업자의 삶뿐만 아니라 기업투자, 고용, 환율 등 난제가 얽히고설켜 있다. 예컨대 최근 금융시장은 ‘초’ 엔저에 발목 잡혀 있다. 이럴 때 금리 인하 압박은 안 그래도 높은 원·달러 환율을 더 밀어 올리는 압력이 된다.
금리 인하보다 돈이 필요한 곳으로 ‘물줄기’를 유도하는 게 시급하다. 서민·소상공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선별적 신용 공급을 더 늘려야 한다. 주요국 중앙은행도 중소기업을 지원할 땐 ‘신용정책’을 활용한다. 영국 중앙은행의 ‘상업은행 대출에 중앙은행이 뒷돈을 대주는 제도(funding for lending)’가 한 예다. Fed는 코로나19 위기 때 ‘중소기업 급여보호 프로그램(PPP)’을 가동했다. PPP 대출 실행 은행에 3490억달러를 지원했다.
한은도 영세 자영업자와 지방 중소기업에 초점을 둔 ‘금융중개지원대출’ 제도를 운용 중이다. 현재 대출 한도는 30조원이다. 3월 말 자영업자 은행 빚이 1113조원인데 대출 규모가 턱없이 작다. 그나마도 2022년보다 15조원 줄었다. 발바닥이 간지러운데 구두창 긁어주며 생색내는 모양새다. 최근 정부·여당은 80만 명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의 상환 기간을 연장했다. 한은과 정부 간 정책이 따로 노는 듯하다.
중앙은행 대출금 총액 대비 명목 국내총생산(GDP) 비율도 한은은 주요국에 못 미친다. 2023년 말 기준 한은 0.9%, 일본은행 16.8%, 영국 중앙은행 5.8%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신용공급을 더 늘릴 여지가 있어 보인다. 취업자 5명 중 1명이 자영업자다. 주요 7개국(G7)과 비교해도 자영업자 비중이 가장 높다. 한은이 ‘사과값 세계 1위’를 걱정한다면 자영업자 553만 명의 어려움에도 눈을 돌려야 하리라.
중앙은행 독립성은 고유 권한이 아니다. 국민이 중앙은행에 실망하면 언제든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주요 중앙은행은 앞다퉈 ‘포용금융’ 역할을 늘리고 있다. 민생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 아니겠나. 한은법 제1조에는 ‘통화신용정책’이 명기돼 있다. 그런데 ‘통화정책’만 눈에 띄고 ‘신용정책’은 뒷전에 처져 있다. 한은 대출 제도를 손볼 때인 거다. 글로벌 트렌드에 맞게.
역풍이 만만치 않다. 한국은행 금리정책의 독립성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정치권력이 통화당국을 존중하는 관행은 우여곡절을 거듭한 역사적 결과물이다. 1992년 미국 대선 기간 중 해프닝 한 토막.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재선을 노리던 때다. 앨런 그린스펀 당시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에게 금리 인하를 재촉했다. 그린스펀은 응하지 않았다. 재선에 실패한 부시는 5년 후 TV에 나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그린스펀을 공개 비난했다. 그린스펀을 Fed 의장에 앉힌 임명권자가 부시다. 배신감에 분이 덜 풀렸던 것이다.
후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새 관행을 세웠다. “그린스펀 의장에게 할 수 있는 명령은 ‘발언대로 나와 서라’는 게 전부다.” 그린스펀 재임명식장에서 한 클린턴의 발언이다. 그린스펀 재임 기간(1987~2006년)은 미국 경제의 대(大) 안정기(great moderation)로 높게 평가된다.
정부·여당도 한은의 독립적 의사결정을 부정할 때 예상되는 반발을 알고 있을 거다. 그럼에도 금리 인하를 기대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나. 전국 외식업체 82만 개 중 18만 개가 망했다. 2024년 3월 말 자영업자 대출 연체액이 11조원이다. 역대 최대다. 올 들어 5월까지 지역신용보증재단이 소상공인 대출을 대신 갚아준 대위변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4% 늘었다. 수많은 가계가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영세 소상공인·자영업자의 피맺힌 몸부림을 보듬고 추스르는 것, 마땅히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정부·여당의 메시지는 민생 실태를 한은에 전달하려는 몸짓 아닐까. 한은을 옭아매는 정치적 압박으로 예단할 건 아니다.
다만 금리 인하가 ‘요술 방망이’는 아니다. 금리에 섣불리 손 대면 낭패하기 쉽다. 서민·소상공인·자영업자의 삶뿐만 아니라 기업투자, 고용, 환율 등 난제가 얽히고설켜 있다. 예컨대 최근 금융시장은 ‘초’ 엔저에 발목 잡혀 있다. 이럴 때 금리 인하 압박은 안 그래도 높은 원·달러 환율을 더 밀어 올리는 압력이 된다.
금리 인하보다 돈이 필요한 곳으로 ‘물줄기’를 유도하는 게 시급하다. 서민·소상공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선별적 신용 공급을 더 늘려야 한다. 주요국 중앙은행도 중소기업을 지원할 땐 ‘신용정책’을 활용한다. 영국 중앙은행의 ‘상업은행 대출에 중앙은행이 뒷돈을 대주는 제도(funding for lending)’가 한 예다. Fed는 코로나19 위기 때 ‘중소기업 급여보호 프로그램(PPP)’을 가동했다. PPP 대출 실행 은행에 3490억달러를 지원했다.
한은도 영세 자영업자와 지방 중소기업에 초점을 둔 ‘금융중개지원대출’ 제도를 운용 중이다. 현재 대출 한도는 30조원이다. 3월 말 자영업자 은행 빚이 1113조원인데 대출 규모가 턱없이 작다. 그나마도 2022년보다 15조원 줄었다. 발바닥이 간지러운데 구두창 긁어주며 생색내는 모양새다. 최근 정부·여당은 80만 명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의 상환 기간을 연장했다. 한은과 정부 간 정책이 따로 노는 듯하다.
중앙은행 대출금 총액 대비 명목 국내총생산(GDP) 비율도 한은은 주요국에 못 미친다. 2023년 말 기준 한은 0.9%, 일본은행 16.8%, 영국 중앙은행 5.8%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신용공급을 더 늘릴 여지가 있어 보인다. 취업자 5명 중 1명이 자영업자다. 주요 7개국(G7)과 비교해도 자영업자 비중이 가장 높다. 한은이 ‘사과값 세계 1위’를 걱정한다면 자영업자 553만 명의 어려움에도 눈을 돌려야 하리라.
중앙은행 독립성은 고유 권한이 아니다. 국민이 중앙은행에 실망하면 언제든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주요 중앙은행은 앞다퉈 ‘포용금융’ 역할을 늘리고 있다. 민생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 아니겠나. 한은법 제1조에는 ‘통화신용정책’이 명기돼 있다. 그런데 ‘통화정책’만 눈에 띄고 ‘신용정책’은 뒷전에 처져 있다. 한은 대출 제도를 손볼 때인 거다. 글로벌 트렌드에 맞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