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알못’들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클래식 중에 좋아하거나 아시는 노래 있나요?” 여성들은 대개 이런 반응이다. “밤의 여왕이던가? ‘마적’에서 아주 높이 올라가는 노래요.” 아저씨들은 “귀신 소리 같은 거요. 미친 여자 비명 지르는 거 있잖아요.”라며 실없이 웃는다. 모차르트 최후의 오페라 <마술피리> 중 ‘지옥의 복수심이 끓어오른다(Der Hölle Rache kocht in meinem Herzen)’, 일명 ‘밤의 여왕의 아리아’다(‘마적’은 구식에다 일본적이라 요즘은 쓰지 않는다. ‘요술피리’는 너무 가벼워 보여 역시 안 쓴다).

1791년 9월, 모차르트가 35세로 죽기 두 달여 전 완성한 독일어 오페라. 수많은 영화와 광고 음악으로 쓰여 친숙하다. 2옥타브에서 4옥타브를 넘나드는 극고음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들이 도전적으로 부르는 대표적인 노래가 바로 '밤의 여왕의 아리아(Rachearie, 복수의 아리아)'다.
<마술피리> 초연 극장 포스터 (1791년 9월30일) / 출처. 독일 위키피디아
<마술피리> 초연 극장 포스터 (1791년 9월30일) / 출처. 독일 위키피디아
파미나(Pamina)는 어머니(밤의 여왕)의 명령으로 아버지의 원수 자라스트로(Sarastro)를 죽이러 갔다가 잡힌다. 순진한 왕자 타미노(Tamino)는 밤의 여왕을 숲에서 만나 마술피리를 얻고 시종 파파게노(Papageno)와 함께 파미나를 구하러 간다. 그러나 사실은 밤⸱야만⸱거짓⸱악(惡)의 세계가 밤의 여왕의 것이고, 낮⸱이성⸱지혜⸱선(善)의 화신이 자라스트로였음을 깨닫는다. 악은 처벌받고 모두는 평화를 찾는다.
타미노와 파미나를 그린 페인팅 (막스 슬레포크트, 1920년) / 출처. 독일 위키피디아
타미노와 파미나를 그린 페인팅 (막스 슬레포크트, 1920년) / 출처. 독일 위키피디아
겉보기에 권선징악의 전형 같은 모습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범상치 않은 비의(秘義)가 숨어있다.

모차르트는 열렬한 프리메이슨(英. Freemason/獨. Freimaurer)의 일원이었다. 프리메이슨은 1600년경 영국에서 시작된 석공 노동자들의 비밀결사체. 시민 권리와 노동 윤리를 비롯한 진보적 이념이 그 뿌리다. 1717년 런던 모처에 본부를 두면서 지식인⸱학자⸱예술가들이 합류한다. 기독교와 왕정에 비판적이었고, 이상사회를 위해서는 사회전복도 가능하다는 급진적 면모를 띠기도 했다.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에 매료되었다. 성실한 기독교인으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주님 말씀에 공감했으나, 왕과 귀족에 의해 삶이 좌우되는 현실이 못 견디게 싫었던 자유정신의 총아, 모차르트로서는 당연한 귀결이었을 터. 프랑스 혁명 기간(1789~1794)이 공교롭게 모차르트 만년과 겹치는 걸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때 프리메이슨은 철학적⸱사색적이던 온건성에서 벗어나 정치적⸱현실참여적으로 급진성을 띠는데 <마술피리>는 이같은 배경에서 나온 작품인 셈.
프리메이슨 문양. 위 컴퍼스와 아래 직각자는 각각 남자와 여자, 하늘과 땅, 정신과 물질, 빛과 어둠의 융화를 뜻한다. 중앙의 ‘G’는 신(God)과 기하학(Geometry)의 상징. 또한 컴퍼스는 진리, 직각자는 도덕, 흙손은 결속⸱우애, 몽둥이는 지식⸱지혜를 의미한다.
프리메이슨 문양. 위 컴퍼스와 아래 직각자는 각각 남자와 여자, 하늘과 땅, 정신과 물질, 빛과 어둠의 융화를 뜻한다. 중앙의 ‘G’는 신(God)과 기하학(Geometry)의 상징. 또한 컴퍼스는 진리, 직각자는 도덕, 흙손은 결속⸱우애, 몽둥이는 지식⸱지혜를 의미한다.
오페라 곳곳에 비밀 코드를 깔아놓았다. 처음엔 악인처럼 보이는 자라스트로(Sarastro)는 페르시아의 예언자 차라투스트라(Zarathustra)의 변형이다. 영어로는 조로아스터(Zoroaster). 여기서는 그러나, 고대 이집트의 죽음과 부활을 관장하는 부부 신(神) 이시스(Isis)와 오시리스(Osiris)를 숭상하는 이집트의 고승(高僧)으로 나온다. 곧 이게 프리메이슨을 뜻한다. 밤의 여왕을 차마 서양⸱기독교⸱왕⸱귀족으로 유비(類比)하진 않았으나 미루어 짐작 가능한 일이다. 그녀는 심지어 이름도 없다. 왜? 서양어 이름을 붙이면 모차르트 속마음을 들키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에 끓어오른다/죽음과 절망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른다/너는 자라스트로에게 죽음의 고통을 느끼게 하라/만약 그럴 수 없다면 더는 내 딸이 아니다./영원히 쫓아낼 것이다. 가차 없이 버릴 것이다/대자연 모든 것들을 영원히 파괴할 것이다/네 손에 의해 자라스트로가 죽지 않는다면 말이다/복수의 신들이여, 잘 들어라, 나의 굳은 맹세를!”
밤의 여왕이 다스리는 세계를 그린 페인팅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 1815년, 무대 연출을 위한 디자인) / 출처. 독일 위키피디아
밤의 여왕이 다스리는 세계를 그린 페인팅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 1815년, 무대 연출을 위한 디자인) / 출처. 독일 위키피디아
에다 모저(Edda Moser, 1938~, 獨)의 전성기 때 녹음이 빼어나다. 4옥타브 끝에서 흔들림이 없다. 극고음 앞에서 주춤한다든가, 아니면 고음에서 템포를 빠르게 해 비브라토(떨림음)를 어물쩍 넘어간다든가 하지 않는다. 당당 떳떳한 밤의 여왕이다. 사빈 드비에일(Sabine Devieilhe, 1985~, 佛)은 요즘 각광받는 날씬하고 아름다운 소프라노다. 전형적인 기교파 음색을 지녔으면서도 우아하고 유려하게 난곡(難曲)들을 소화해내는 실력파. 개성 넘치는 밤의 여왕을 시전한다. 프랑스는 나탈리 드세이(Natalie Dessay, 1965~) 이후 실로 오랜만에 진주를 건졌다.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 아나운서

[에다 모저 - 밤의 여왕의 아리아]


[사빈 드비에일 - 밤의 여왕의 아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