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프 공공부채 수십 년 만에 최대…미국 차기 대통령 과제는 더 심각
긴축 재정 필요한 여건서 대규모 지출 공약 지킬 수 있을까
막대한 나라 빚 어쩌나…'독배' 받아든 유럽의 새 지도자들
영국과 프랑스의 새 지도자들이 승리의 기쁨은 잠시이고, 막대한 나라 빚을 물려받아 골머리를 앓을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7일(현지시간) 유럽 선거의 승리자들이 변화를 약속해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았지만, 실제 이를 실행할 수단은 제한적이라고 보도했다.

영국과 프랑스 모두 공공부채가 수십 년 만에 최대 규모에 달하기 때문에 정부는 손발이 묶인 셈이다.

이들 국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지출과 재정적자 비율이 코로나19 이전 수준보다 훨씬 높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영국의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2007년 43%→2019년 86%→올해 104%로 상승했다.

프랑스에선 같은 기간 65%→97%→112%를 기록했다.

반면 경기는 여전히 침체해 있어서 세입 증대를 기대하기 어렵다.

차입비용은 크게 상승한 가운데 국방비·노령 연금 등 지출 요구는 많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두고 긴축 재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말한다고 WSJ은 전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선거 중 오히려 과감한 신규 지출이 필요한 공약을 내놨다.

프랑스에서 1당에 오른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은 공공요금 동결과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같은 야심에 찬 의제를 제시했다.

이번 선거에서 국내총생산(GDP)의 5.5%에 달하는 재정적자 문제를 꺼낸 정당은 없었다.

유럽연합(EU)은 지난달 프랑스 등이 재정 준칙을 위반하고 재정적자가 EU 한도(3%)를 넘었다고 지적하고 조치를 예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약을 지키려면 나라 빚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최근 프랑스 국채 금리가 최근 급등했는데 이는 차입 확대에 관한 우려 때문이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5월 프랑스 국채 등급을 AA-로 낮췄다.

영국에선 노동당이 14년 보수당 정권을 끝내고 집권하며 국민보건서비스(NHS) 등 공공 서비스에 지출을 늘리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재정연구소(IFS)는 이번 선거에서 주요 정당들은 다들 재정 적자와 관련한 어려운 문제는 피해 갔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노동당이 돈을 더 빌리지 않고 세금을 크게 올리지 않고도 경기가 침체한 상황에서 공공 서비스 개선을 할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노동당이 운이 좋을 수도 있고, 정치가 안정되며 성장세가 되살아날 수도 있다"며 "그렇지 않다면 영국에서 중도주의의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막대한 나라 빚 어쩌나…'독배' 받아든 유럽의 새 지도자들
이는 영국과 프랑스만의 사정이 아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에서 재정적자는 코로나19 전에 비해 3%포인트 높다.

독일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사회민주당(SPD)과 녹색당·자유민주당(FDP)이 몇 달간 힘든 협상 끝에 마침내 내년도 예산안 초안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경기를 살리고 국방비 지출을 늘리는 내용이 담겼는데, 기본법(헌법)에 따라 엄격한 차입 원칙을 지키느라 국방예산 증액 규모가 당초 국방부 요구보다 크게 줄었다.

미국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WSJ이 진단했다.

IMF에 따르면 미국의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이 2019년 108%에서 123%로 상승했다.

하지만 양당의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부채 감축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다.

또 그렇게 하라는 정치적 압력도 거의 없다.

WSJ은 과거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이 이렇게 높았던 때는 2차 대전 이후였는데, 당시엔 경제 성장과 군사비 삭감으로 부채를 낮출 수 있었지만 이번엔 어느 부분에서 지출을 줄일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2차 대전 이후 국가 역할에 대한 눈높이는 높아졌고 경제 성장세는 둔화했기 때문이다.

WSJ은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국채 투자를 꺼리며 금리가 뛸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22년 영국 리즈 트러스 전 총리가 재정 전망 없이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했다가 채권 금리가 폭등한 사례 등을 들었다.

이탈리아의 포퓰리즘 정당 소속인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EU의 재정적자 과다 지적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서 투자자들의 반발을 피했지만, 다른 포퓰리스트의 경우엔 달리 대응할 수 있다고 WSJ이 말했다.

WSJ은 지난해 독일 싱크탱크인 킬 세계경제연구소가 1900년에서 2020년 사이에 포퓰리스트 대통령과 총리 51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경제적으로 성과가 좋지 않은 경향이 있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