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파라다이스 주가가 7% 가까이 급락했다. 올해 들어 최대 낙폭이다. 새 호텔 설립 계획을 밝힌 게 발단이었다. 주가가 급락하기 전날 최종환 파라다이스 대표는 “5000억~5500억원을 들여 서울 장충동에 국내 최고 수준의 럭셔리 호텔을 짓겠다”고 말했다. 당초 시장에서 예상한 공사비(약 4000억원)를 크게 넘어선 것이다. 과도한 투자비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일부 기관투자가가 파라다이스 보유 주식을 내던졌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올 하반기 설계안이 확정되면 공사비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파라다이스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둬 사업을 할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치솟는 공사비, 감당 안되네…첫 삽도 못 뜨는 럭셔리 호텔
국내 주요 호텔, 리조트의 신규 사업이 공사비 상승 여파로 줄줄이 연기되고 있다. 8일 호텔업계에 따르면 호텔신라는 장충동 신라호텔 부지 내 한옥호텔(조감도) 사업을 잠정 중단했다. 공사비가 당초 잡아놓은 3000억원의 두 배인 6000억원가량으로 껑충 뛰어서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주력인 면세점 사업이 급격히 위축된 상황에서 급등한 공사비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3000억원에 육박하던 호텔신라 영업이익은 지난해 약 91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매출의 82%를 차지하는 면세점 부문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영향이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도 강원도 설악산 인근 리조트 설악쏘라노에 럭셔리 리조트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잠정 연기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설계 변경을 계속하고 있는데 아직 확정 짓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 리조트 착공은 5월로 잡혀 있었다. 업계에선 수차례 설계안이 바뀌며 럭셔리 리조트 공사비가 당초 약 4600억원에서 크게 뛰었고, 이 때문에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설악쏘라노 인근 사업장도 사정이 비슷하다. 마스턴투자운용이 추진 중인 강원도 양양 카펠라 리조트 개발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8500억원에 달하는 사업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주된 이유다.

공사비 상승 여파로 신규 사업이 지연·중단되고 있지만 호텔·리조트업계는 코로나19 이후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다.

롯데호텔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매출 1조2917억원, 영업이익 712억원을 거뒀다. 올 들어서도 1분기 27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해 작년 1분기 매출(2642억원)을 넘어섰다. 호텔신라 또한 면세점 부문에선 고전하고 있으나 호텔 사업에서 지난해 690억원 흑자를 냈다. 면세점 영업이익(약 220억원)의 세 배에 이르렀다. 올해도 호텔에서만 600억원대 이익을 낼 것으로 증권업계는 예상한다.

호텔·리조트업계는 공사비 급등 탓에 직접 부지를 매입해 신규 시설을 건설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위탁 운영 호텔을 늘리는 방식으로 수요에 대응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롯데호텔은 올해 경영 목표를 ‘애셋 라이트’로 잡았다. 부동산을 직접 개발하지 않고 위탁 운영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부산 해운대에 문을 연 부티크 호텔 L7에도 애셋 라이트 방식이 적용됐다. 이스턴투자개발이 부동산 개발을 맡고 롯데호텔은 운영만 한다. 신라호텔도 비슷한 전략을 구사한다. 서울과 제주의 5성급 호텔을 제외하고 부동산 직접 개발은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다. 임차, 위탁 형태인 신라스테이 확장에 주력하는 배경이다. 5월엔 제주 이호테우 해변 인근에 15번째 신라스테이를 열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