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누아르의 산실’로 불리는 영화 제작사 사나이픽처스의 한재덕 대표.  박충열 제공
‘한국 누아르의 산실’로 불리는 영화 제작사 사나이픽처스의 한재덕 대표. 박충열 제공
영화계에는 하나의 장르에 집중하는 제작사들이 있다. 저예산 웰메이드 호러를 세상에 내놓은 미국의 블룸하우스가 대표적이다. 한국에도 있다. 사나이픽처스다. 올해 창립 12주년을 맞은 사나이픽처스는 첫 작품인 ‘신세계’를 필두로 ‘무뢰한’ ‘아수라’ 등을 잇따라 내놨다. 서울 장충동 사나이픽처스 건물의 루프톱에서 한재덕 대표를 만나 누아르 예찬을 들었다. 신작 ‘리볼버’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때였다.

▷‘한국 누아르 영화의 산실’이라는 타이틀이 마음에 드나.

“완전히 잘못된 수식어다(웃음). 과한 표현이고, 한국 장르 영화의 부티크 정도가 좋겠다. 나는 작은 가게를 가진 영세업자일 뿐이다. 산실이라고 하면 50편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은가.”

▷사나이픽처스 정체성에 대표의 영화 취향이 많이 반영되는 것 같다.

“반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식(主食)’으로 먹는 것 같은 영화는 누아르가 맞지만 ‘보안관’ 같은 코미디를 제작할 때도 있다.”

▷사나이픽처스만큼 분명한 정체성을 지닌 제작사도 없다.

“(장르 영화) 제작자로서 역작을 만들어내고 임기를 다하면 좋겠다. 이제까지 해왔던 ‘화란’ ‘아수라’ 같은 작품을 모두 좋아하지만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한재덕 대표는 정말 지독하고 대단한 영화광이다.

“그래도 영화 하는 사람인데 그냥 기억하고 있는 영화로만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닌 것 같아 한 3년 전부터 집중적으로 옛날 누아르를 보기 시작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연출 전공으로 지원했다가 낙방했다는데.

“그렇다. 원래는 글을 쓰고 연출하는 것이 꿈이었다. 군에서 제대하고 나오니 한예종 1기를 모집하고 있었는데 그때 지원했다. 떨어지고 나서는 작가교육원에서 글을 썼는데 그곳 친구들과의 인연으로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제작부장으로 일하게 됐고 ‘올드보이’ 프로듀서로 이어졌다.”

▷‘아수라’는 사나이픽처스 작품 중 가장 저평가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가 담긴 영화인가.

“사나이픽처스와 정체성 면에서 가장 닮은 작품이다. 처음에는 형사가 두 사람인 것으로 기획했었다. 지금 기억나는 건 시나리오의 한 장면에서 동료 형사가 죽고 ‘장례 버스에 앉아 있는 형사들의 어깨가 흔들흔들’이라고 쓰여 있는 지문이 참 좋았다. 남겨진 형사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버스 안을 상상하니까 굉장히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는 삭제됐지만 그런 무드가 ‘아수라’의 전반에 있었으면 했다.”

▷사나이픽처스의 또 다른 누아르 영화 ‘리볼버’는 어느 단계인가.

“최종 편집이 끝났다. 아마 올해 개봉하지 않을까 싶다.”

▷여태까지 사나이픽처스가 시도하지 않은 것이 있는가.

“누아르 영화를 더 잘 만들고 싶다. 1940~1950년대의 누아르 영화는 다시 봐도 늘 새로운 감흥과 정서를 주듯이 내가 그런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면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한재덕을 어떤 영화인으로 기억하기를 바라는가.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사람으로든, 작품으로든 ‘후지다’라는 말만 듣지 않으면 된다. 후지다는 말을 듣는 것만큼 후진 일이 없다(웃음). 인생은 ‘애썼다’ 정도만 들어도 나쁘지 않지만 작품은 ‘애썼다’ 정도로는 안 된다. 영화 만들면서 애쓰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김효정 객원기자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에 대한 보다 상세한 기사는 7월 1일 발간된 ‘아르떼’ 매거진 2호(7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