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만나도 우리 잘 몰랐다는 생각이 들어요.
- 그림을 보는 건 내 마음을 보는 거네요!
- 그림으로 서로를 듣는 것, 너무 좋아요!


지난 늦봄 한 백화점의 고객 상담부 직원들과 한 달 동안 예술 수업을 했다. 그림으로 마음을 표현할 줄 알게 된 그녀들의 신난 호응이 쏟아졌다. 이 과정이 만들어지기까지 모두 한마음으로 애썼다. 직원들에게 직무 교육 외 복지 차원의 예술 교육을 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보고 체계가 많다 보니 눈 밝은 한명이 기안해도 위에서 수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므로, 실무자들이 정성껏 마음을 모았을 것이다. 첫 미팅 때도 수고스럽지만 본사 콜센터를 보셨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직접 봤었다. 칸칸이 나눠진 부스에서 하루종일 감정 노동하는 그녀들.
백화점 콜센터 직원들과 한 달간 그림 공부를 해보았다
그런 그녀들에게 그림은 알 수 없는 세계였을 것이다. 예술은 저 너머의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경청과 공감력은 역대급으로 좋았다. 직업적으로 훈련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타인을 듣고 공감하는 일은 인간에 대한 애정과 긍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낯설었던 예술의 장벽을 허물자 그림 한 점으로 쓰고 말하고 뭉클하고, 서로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매시간 울컥울컥 쏟아졌다.

예술이 그들만의 리그라는 건 오해다. 향유란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라 여기는 것 또한 편견이다. 근사한 갤러리에서 성장을 한 남녀가 샴페인 챙챙 부딪히며 우아하게 그림 앞에 서 있는 장면을 티브이에서 많이 봤을 것이다. 물론 전시 오프닝에서 그 비슷한 광경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실상 리셉션은 노동과 희망을 버무려 차려지고, 실제 사람들은 그림을 깊이 들여다보며 향유하지 않으며, 작가는 그림 속 이야기가 잘 전해질까 노심초사하고, 우리는 여전히 애매한 채 그림 잘 몰라요! 를 부르짖고 있다.
백화점 콜센터 직원들과 한 달간 그림 공부를 해보았다
다행인 것은 편견의 벽은 모래로 되어있어서 시점을 바꿈과 동시에 부드럽게 흘러내린다는 것. 그리고 관점을 바꾸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보이는 너머를 꿈꾸기도 하며,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진실을 체득하게 된다. 이처럼 예술은 교육이 갖고 있는 미덕, 사람을 성장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선지 교육계에서 퍽 많은 과정이 열리고 있다. 학부모 연수, 교직원 연수, 교육청 연수 등 감사하게도 현직 선생님들의 큰 호응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예술은 단순한 미감을 넘어 탁월한 효용성을 지닌다. 세상 무용한 줄 알았던 예술이 각박한 현대의 삶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매개가 되었다. 이제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우리들의 광장이 된 것이다. 얼마 전 덴마크에 교육 연수를 다녀온 교장 선생님 한 분이 말해주셨다. 행복 교육을 하는 덴마크에 가서 인공지능(AI) 시대를 대비하여 어떤 교육을 준비하고 있는가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AI 활용법이 아니라 자존감 교육과 관계 교육에 더욱 중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가슴이 찡했다. 고도의 문명사회에서 결국 우리는 더 인간다워지는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나로 중심을 잡는 법, 타인에게 다정해지는 법, 우리가 어울려 노는 법 등 가장 원초적인 본질을 배워야 하는 것. 그리하여 어떤 미래가 와도 사람은 함께 웃고 울고 사랑하고 뜨겁게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깨닫는 것이다.
백화점 콜센터 직원들과 한 달간 그림 공부를 해보았다
예술로 다양한 융합 기획을 실행하고 있다. 예술 자체로도 의미 있지만 다른 영역과 합쳐졌을 때 그 효과가 특별하다. 특히 성 인지 감수성, 폭력 예방, 환경, 고립 은둔 등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아우르기에 예술은 정말 좋은 콘텐츠고 몹시 유용하다. 예술가들은 가장 빠르고 섬세하게 세상의 변화를 감지한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구현해낸다. 우리가 동시대 작품을 많이 봐야 하는 이유다.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스스로 답도 찾게 하므로. 단편의 감각을 입체적 사유로 확장하게 하므로.

내 아이를 다 아는 것 같지만 잘 모를 수 있다. 옆자리 동료를 잘 아는 것 같지만 영 모를 수 있고. 그때 필요한 것이 예술이다. 그림을 본 마음이 어떤지, 혹은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서로의 취향을 물어봐 주고 들어주는 것이다. 장욱진의 '길 위의 자화상'을 보며 아버지 생각에 눈물을 왈칵 쏟아내던 분,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 사람 때문에 힘들었지만 다시 사람들 곁으로 가고 싶다는 분 등, 그림으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됐다. 그림을 읽고 마음을 쓸 때, 우리는 그것을 문학이라 부른다. 삶으로 쓴 인생 문학. 그림 한 점 깊고 뜨겁게 응시한다면 누구나 쓸 수 있다.

임지영 예술 칼럼니스트•(주)즐거운예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