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 ‘이노코 토시유키’의 디지털 이데아가 구축되는 터전 ‘팀랩(teamLab)’

2001년 엔지니어 출신의 이노코 토시유키(Inoko Toshiyuki)는 뜻이 맞는 4명의 친구들과 ‘팀랩(teamLab)’을 창업했다. 도쿄대학에서 수학공학과 정보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엔지니어 등을 중심으로 팀랩의 핵심 축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초기 팀랩은 ‘예술집단’의 성격보다 디지털 친화적인 전문가들이 모인 학제적인 집단 성격을 띠면서도, 클라이언트가 의뢰한 제작물을 만드는 소규모 회사였다.
이노코 토시유키 ©Photo: Anna Koustas / Image courtesy of Tatler Hong Kong
이노코 토시유키 ©Photo: Anna Koustas / Image courtesy of Tatler Hong Kong
일본의 프린터 회사 엡손(EPSON)이 이들과 손을 잡으면서 팀랩은 세상에 존재하던 빛과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잉크 카트리지 안에 있던 C-Y-M-K 안료가 헤드와 노즐을 통해 종이 위에 글자로 탄생하는 순간을, 팀랩과 엡손은 오랜 연구 끝에 새로운 발광 소재의 개발과 프로젝션 맵핑 기술 등으로 전환시켰다. 그 기술과 창작물은 현재 우리 눈에 펼쳐진 것처럼 독보적이면서 독창적이었다.

2024년 현재 팀랩은 전 세계에 약 400명이 넘는 창작자들과 연대해, 창의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대규모 예술집단이자, 세계적인 디지털 아트그룹으로 성장했다. (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울트라 테크놀로지스트 ULTRA TECHNOLOGIST’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창작자들은 예술가, 조명디자이너, 건축가, 프로그래머, 수학자, 엔지니어, 영화감독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로 포진되어 있다.

창작자들은 토시유키가 다져놓은 터전 위에 빛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경계 없는(Borderless)’ 다양한 결과물을 실험하고, 창조한다. 이들은 자유자재로 해체와 결합을 반복하며, 유기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팀랩은 특정한 주인공이나 메인 창작자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는다. 이는 창업자 이노코 토시유키가 상상했던 디지털 이데아와도 맥을 같이한다.

아자부다이힐스로 터전을 옮겨 업그레이드한 [teamLab Borderless]

팀랩은 자신들의 ‘콘셉트’와 ‘장소’를 연결시켜 각 지역마다 다른 테마의 전시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팀랩 보더리스 : 모리 빌딩 디지털 아트 뮤지엄 도쿄 (teamLab Borderless : MORI Building DIGITAL ART MUSEUM, Tokyo, 이하 팀랩 보더리스)', ‘팀랩 플래닛 도쿄 (teamLab Planets Tokyo)’, ‘팀랩 슈퍼네이처 마카오(teamLab SuperNature Macao)', ‘팀랩 보태니컬 가든 오사카 (teamLab Botanical Garden Osaka)' 등과 같은 식이다.
<팀랩 보더리스: 모리 빌딩 디지털 아트 뮤지엄 도쿄> 입구 / 사진.©이진섭
<팀랩 보더리스: 모리 빌딩 디지털 아트 뮤지엄 도쿄> 입구 / 사진.©이진섭
이 중 팀랩 보더리스는 2018년 오다이바 팔레트타운에 위치한 ‘모리 빌딩 디지털 아트 뮤지엄’에서 시작된 시리즈다. 단일 전시로는 370만명이라는 최다 관객 방문 기록을 세우며, 기네스북에 등재된, 영화로 치면 블록버스터급 전시기도 하다. 2022년 8월 오다이바 팔레트타운의 재개발 소식과 함께, 이 시리즈도 잠시 쉬어감을 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쿄의 스카이라인을 바꾼 기업 ‘모리 트러스트 리츠(MORI TRUST REIT)’는 '아자부다이힐스’의 개장에 발맞추어 팀랩 보더리스 상설 전시 소식을 알렸고, 2024년 2월 업그레이드 버전의 팀랩 보더리스가 다시 관람객들을 맞기 시작했다.

빛이 인간에게 선물하는 아름다운 시간
휘황찬란. 전(全)감각적 심상을 자극하는 카타르시스


팀랩 보더리스는 ‘지도 없는 뮤지엄, 경계 없는 예술’을 표방한다. [teamLab Bordeless]라고 입체적으로 쓰여진 입구를 지나가면, 잠시 관람객은 암흑의 방에서 가이드의 안내를 받는다. 문이 열리고, 푸른톤 계단이 우리를 꽃’빛’으로 물든 전시장으로 인도한다.

'화장실', '출구', '조심하세요', '뛰지 마세요' 같은 최소한의 안내를 제외하고, 이 전시를 어느 방향으로 보라는 화살표나 구체적인 설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빛의 정원을 걷다가 우연히 만나는 방들을 하나둘씩 마주하다 보면,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빛의 세계에서 우리는 놀기도 하고, 헤매기도 하고, 숨이 멎을 것 같은 감동 속으로 함몰되기도 한다.

아자부다이힐스 상설 전시장에는 오다이바 시절부터 인기 있었던 3개의 구역 ‘보더리스 월드 (Borderless World)’, ‘퓨처 파크(Future Park)’, ‘엔 티 하우스(En Tea House)’ 등이 리뉴얼되었고, ‘라이트 스컬쳐 (Light Sculpture)’, ’버블 유니버스(Bubble Universe)’, ‘마이크로코스모스(Microcosmoses)’, ‘스케치 팩토리 (Sketch facory)’ 등 새로운 빛의 영역들이 펼쳐져 있다.

[Light sculpture 전시실 (채널. Trouble jeff)]
Microcosmoses 전시실 / 사진. ©이진섭
Microcosmoses 전시실 / 사진. ©이진섭
특히, 수천여개의 스포트라이트가 여러 행렬과 조합을 통해 가시광선의 파도를 보여주는 Light Sculpture, 구형의 발광 소재가 트레일과 실에 매달려 관람객을 우주 행성으로 안내한 듯한 Microcosmoses [관련 영상 보기], 그리고,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웜홀을 통해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하는 The way of the Sea [관련 영상 보기] 등에서 전(全)감각적 심상을 자극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The way of the Sea 전시실 / 사진.©이진섭
The way of the Sea 전시실 / 사진.©이진섭
처음 가는 이들에겐 이 공간이 조금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이 방 저 방을 드나들다 보면, 내가 걸어 온 길이 맞는지, 여기가 어딘지, 시간은 얼마나 지났는지, 혼란에 빠지는 상황이 찾아온다. 이럴 땐, 전시실의 기준이 되는 Borderless World로 몸을 움직여, 잠시 빛의 산림욕을 즐기다 정신을 추스른 후, Borderless World 방 좌우로 난 통로를 방향계 삼아 팀랩 보더리스가 제시하는 빛의 여정을 다시 떠나는 것을 추천한다.
Borderless World 전시실 / 사진.©이진섭
Borderless World 전시실 / 사진.©이진섭
빛의 오케스트라가 투영하는 교향곡은 때로는 아름다운 환희의 기억으로, 때로는 슬픈 상처의 순간으로 다가와 관람객에게 새로운 차원의 이야기로 선물한다. 전시의 어떤 경험은 종교의식 같은 거룩함이 깃들어 있고, 어떤 마주함은 장자(莊子)의 호접춘몽(胡蝶春夢)을 한바탕 치르고 나온 기분도 든다.

다른 것은 몰라도 헤맴과 탐색의 시간 속에서 누구에게도 속박받지 않는 나만의 순간을 누릴 수 있는 빛이 인간에게 선물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시간임은 분명하다. 만약 당신에게 도쿄에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전시의 예약도 함께 챙겨볼 것을 권한다.
Bubble Universe 전시실 / 사진.©이진섭
Bubble Universe 전시실 / 사진.©이진섭
- 장소 : 아자부다이힐스 도쿄 내 모리 빌딩 디지털 아트 뮤지엄
- 홈페이지 : https://www.teamlab.art/e/tokyo/
- 팀랩 보더리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teamlab_borderless/
- 이노코 토시유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inoko.teamlab/

글•사진 | 이진섭

전기차 서비스를 만들고 기획합니다. 네이버캐스트에 [팝의 역사]를 연재했고, 음악 에세이 <살면서 꼭 한번 아이슬란드>를 출판했습니다. 음악, 미술을 테마로 여행하고, 탐미하며, 가치를 발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