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는 왜 두 개일까…다섯 가지 숨은 이유[고두현의 문화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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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쪽 귀를 크게 열라"
방향감각 키우는 쌍청각 작용
양쪽 정보 합산하는 가산효과
회전·기울기 조절하는 평형감각
남의 말을 깊이 듣는 경청효과
쓴소리까지 들을 줄 아는 '耳順'
시간·정성 들인 만큼 성찰효과도
고두현 시인
방향감각 키우는 쌍청각 작용
양쪽 정보 합산하는 가산효과
회전·기울기 조절하는 평형감각
남의 말을 깊이 듣는 경청효과
쓴소리까지 들을 줄 아는 '耳順'
시간·정성 들인 만큼 성찰효과도
고두현 시인

음원 위치 찾는 '양이(兩耳)효과'
청각은 오감 중에서 가장 민감한 감각이다. 시각보다 빠르고 섬세하다. 우리 뇌는 시각 정보 변화를 초당 15~25회 정도 인지하지만, 청각 정보 변화는 초당 200회 이상 감지할 수 있다. 청각은 잠자는 중에 깨어 있고, 죽을 때도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다. 외부 음파를 모으는 귓바퀴는 포유동물에게만 있다. 귓바퀴 모양은 사람마다 달라서 ‘제2의 지문’ ‘이문(耳紋)’이라고 부른다. 여권 사진 찍을 때 귀를 드러내도록 하는 게 이런 연유다. 그런데 귀는 왜 두 개일까. 좌우 양 끝에 떨어져 있는 이유는 뭘까. 생물학적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다음은 경제성이다. 같은 소리라도 두 귀로 들으면 작은 소리까지 더 잘 들을 수 있다. 양쪽 귀로 들어온 소리 정보를 뇌에서 합친 덕분에 훨씬 많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이를 ‘가산(加算)효과’라고 한다. 마틴 스티븐스의 <감각의 세계>에 따르면 꿀벌부채명나방은 가청 능력이 뛰어나 아주 높은 초음파까지 들을 수 있다. 가면올빼미는 암흑 속에서도 소리만으로 사냥감을 완벽하게 찾아낸다. 사막여우의 유난히 큰 귀는 체온 조절뿐 아니라 먼 곳의 소리를 듣는 데 유리하다.

귓속에도 뼈가 있다. 생김새에 따라 망치뼈, 모루뼈, 등자뼈로 불린다. 이 세 개의 귓속뼈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소리를 증폭해 준다. 아주 큰 소리가 갑자기 전달될 때는 망치뼈와 등자뼈에 붙은 작은 근육들이 수축하며 두 뼈가 과도하게 진동하는 것을 막아 청력 손상을 예방하는 역할까지 한다.
이렇게 신비로운 기능을 가진 귀는 인문학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함의를 지니고 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때 우리는 손바닥을 오므려 귀에 댄다. 귓바퀴가 클수록 소리가 잘 들리기 때문이다. 귀가 크다는 것은 작은 소리까지 잘 듣는다는 뜻이다. 귀를 기울여 남의 말을 듣는 경청(傾聽)의 힘이 여기에서 나온다. 경청은 단순히 말을 듣는 것을 넘어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까지 이해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마음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것이 경청이니, “내 귀가 나를 가르쳤다”는 칭기즈칸의 일화도 이에 속한다. 내용은 다르지만 귀 큰 왕에 대한 설화는 동서양에 두루 등장한다. 신라의 ‘나귀만큼 큰 경문왕의 귀’와 페르시아의 ‘귀가 긴 이스칸다르(알렉산드로스 대왕)’, 그리스신화의 ‘미다스의 귀’ 등이 엇비슷하다.
귀가 안 좋으면 목소리 높아져
남의 말을 귀담아듣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얼마나 어려우면 선인들도 60세가 돼서야 비로소 “귀가 순해진다”고 했을까. 공자가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했다”고 표현한 ‘이순(耳順)’은 귀가 순해져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나이를 가리킨다. 육체의 청각 기능이 줄어들수록 마음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귀를 기울이는(傾) 정도를 넘어 공경하는(敬) 마음으로 새겨듣는 ‘경청(敬聽)’의 경지에 오르면 그동안 들리지 않던 것들도 들을 수 있다.이 같은 경청효과는 자신을 이롭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미하엘 엔데의 소설 주인공 모모처럼 온 마음으로 귀 기울여 들어주는 재능은 우리 모두에게 내재해 있다. 오죽하면 마을 사람들이 무슨 일만 생기면 “아무튼 모모에게 가 보게!”라고 권했을까. 모모만큼 진정으로 귀담아듣는 일에는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든다. 자기 말만 쏟아내는 사람 앞에서도 시간을 갖고 천천히 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이 말하는 중에 스스로 해법을 찾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여기서 한 가지 퀴즈. 청력이 약해질수록 커지는 것은 무엇일까. 귀가 안 좋아서 잘 듣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커진다. 노인들이 대화 중 목청을 높이는 이면에는 이렇게 슬픈 이유가 숨어 있다. 귀는 입이나 눈과 달리 스스로 닫을 수 없다. 말하기 싫으면 입 다물고, 보기 싫으면 눈감지만, 아무리 듣기 싫어도 귀를 닫을 수는 없다. 양쪽 귀가 늘 열려 있는 것은 달콤한 말만 듣지 말고 쓴소리도 들으면서 균형감각을 가지라는 달팽이관의 또 다른 일깨움이 아닐까 싶다. 무심코 고개를 들고 보니, 거울 속에서 두 귀가 바퀴를 오므리며 쫑긋하고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