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경색으로 쓰러진 게 행운이었다는 작가
“저는 운 좋게도 뇌경색에 걸렸습니다. 죽을 고비를 맞고 나서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쓸데없다는 것을 알게 됐죠.”

오카자키 겐지로
오카자키 겐지로
노년의 작가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관객들 앞에 섰다. 지팡이를 쥔 채였다. 그는 오카자키 겐지로. 뇌경색을 ‘행운’이라고 칭한 사람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조형미술가로 고헤이 나와 등 유명 예술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로 꼽는 인물 중 하나다.

오카자키가 한국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의 ‘폼 앳 나우 앤드 레이터’ 전시회다.

그는 1980년대부터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며 작품 활동을 펼쳤다. 회화, 조각 등 순수미술의 틀을 깨고 파격적인 시도를 계속했다. 건축과 조경, 퍼포먼스부터 로봇 공학까지, 여러 학문과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했다.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치던 오카자키에게 2년 전 뇌경색이 찾아왔다. 절망 속에 누워 있던 그는 문득 ‘뇌도 내가 의지로 조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가’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의 예술 인생은 그날을 기점으로 완벽하게 달라졌다. 회복과 재활에 전념하며 빨리 완성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 작품을 가지고 고민하고 고뇌하며 오랜 시간을 보낸 과거와 달리 작업 속도는 15배나 빨라졌다. 비로소 ‘쉽게 작품 활동을 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이번 전시에도 그가 얻은 깨달음을 풀어낸 작품들이 나왔다. 신작 페인팅과 점토 조각들을 선보인다. 전시의 주제도 철학적이다. <논어>에서 ‘지금 앞으로’라는 주제를 따 왔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내려놓으면 새로운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그의 회화는 캔버스가 조각조각 쪼개져 있다. 어떤 작품은 6등분으로 잘려 있다. 각각의 조각이 그에게는 하나의 작품이다. 쪼개진 캔버스를 마음대로 조합하며 새로운 작품을 제작한다. 오카자키는 “서양의 벽화도 하나하나 다른 스토리가 있듯, 내 작품도 그렇다”며 “나는 그렇게 멀리 떨어진 시간을 붙이면서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점토 조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병을 얻은 이후다. 움직이지 않는 몸을 움직이게 하는 회복의 과정처럼, 생명력이 없는 점토에 힘을 가해 새 생명을 더하는 게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전시는 8월 17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