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번역기'로 조선소 외국인 근로자 돕는다
HD한국조선해양 계열 3개 조선사 작업 현장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소통’이다. 외국인 근로자가 1만300명(지난달 말 기준)에 달하는 데다 이들의 국적도 중국,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등 10개국으로 천차만별이다. 범용 번역기로는 현장에서 쓰이는 전문 용어를 소화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HD한국조선해양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을 동원했다. 구글 제미나이를 기반으로 번역 서비스 ‘AI 에이전트’ 1단계 개발을 완료했다. 조선 용어 1만3000개와 선박 건조에서 활용되는 4200개의 작업 지시 문장을 수집해 대규모언어모델(LLM)로 학습시켰다. 조선업계 첫 시도다. 9일 HD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전남 영암에 있는 HD현대삼호의 선박 건조 현장에 우선 적용하고, 다른 조선소에도 순차적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1단계 개발을 통해 지원하는 언어는 베트남어, 우즈베크어, 네팔어, 태국어 등 4종이다. 앞으로 추가 개발을 통해 11개 언어로 확대할 예정이다. HD현대삼호는 자체 업무용 채팅앱(팀업)과 연동해 편의성을 높였다. HD한국조선해양은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하고, 외국인 근로자의 음성을 실시간으로 번역하는 서비스를 각각 2, 3단계에 개발할 계획이다.

외국인 근로자와의 소통 문제는 조선소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 제조 현장에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장벽이다. 작업 현장에서만 사용하는 은어나 전문 용어를 일반적인 번역 도구가 해석하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문제였다. 예컨대 블록을 용접할 때 밟고 서는 구조물을 조선소에선 ‘족장’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의 상당수가 협력사에서 오다 보니 그때마다 교육을 다시 하고, 언어 설정을 바꾸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HD현대그룹은 외국인 근로자와의 공존을 위한 해법을 찾는 데 앞장서는 기업으로 평가된다.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지난 3월 울산 HD현대중공업에서 외국인 근로자와 오찬 간담회를 열고, 건의사항을 듣기도 했다. HD현대중공업은 업계 최초로 사내 외국인지원센터를 설치하고 통역 지원인력을 상주시켰다.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맞춤형 식단도 제공하고 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