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과 대한상공회의소가 9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의에서 연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상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나현승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왼쪽 다섯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백광엽 한경 논설위원, 나 교수,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  최혁 기자
한국경제신문과 대한상공회의소가 9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의에서 연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상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나현승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왼쪽 다섯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백광엽 한경 논설위원, 나 교수,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 최혁 기자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히면 대체 무엇이 달라질까. 상법 제382조의 3에 딱 한 단어를 추가하는 문제를 놓고 세상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찬성 측은 이사가 전체 주주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주장하고, 반대 측은 기업 경영의 생명인 의사 결정에 어려움이 생긴다고 맞서고 있다. 찬반 논란이 워낙 거세다 보니 상법 개정을 밀어붙이던 정부도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언제든 재추진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불씨는 여전하다. 한국경제신문은 대한상공회의소와 함께 상법 개정안 관련 찬반 토론회를 열었다. 찬성 측엔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과 나현승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가, 반대 측엔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와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나섰다. 사회는 백광엽 한경 논설위원과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이 맡았다. 첨예하게 맞붙은 쟁점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1) ‘회사를 위해’ 조항만으로 충분한가

▷천준범 부회장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는 쉬운 개념이다. A사가 B사와 합병하면 이는 회사 간 거래가 아니라 주주 간 거래다. 그런 만큼 이사에게 ‘회사를 위해 합병 조건을 결정하라’고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셈이 된다. 합병으로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보는 건 회사가 아니라 주주다. 상법 개정은 그래서 필요하다. 이사가 전체 주주를 위해 의사결정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조항을 넣어도 배임죄 소송이 늘어나진 않는다. 오해가 많아 공포가 과장됐다.

▷최준선 교수=상법 개정안 찬성론은 한마디로 ‘거대한 착각’이다. ‘이사는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현행 법조문은 회사의 이익과 이사의 이익이 ‘충돌할 때’ 회사를 위해 의사결정을 하라는 의미다. 상법 교과서에 그렇게 나와 있다. 이 전제를 빼고 ‘회사를 위해서’라는 문구를 해석하면 안 된다. 주주의 이익을 지키는 것은 이사의 선관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에 해당하며, 이 또한 조항에 내포돼 있다.

▷나현승 교수=이사회는 주주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하는데, 현재 판례와 조항을 보면 그렇지 않다.

▷권재열 교수=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갈등을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입법화하지 않은 것은 맞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충실의무’를 곡해하거나 달리 규정하면 법체계에 큰 오류가 생긴다. 입법 취지와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생기면 다른 법 조항과 충돌도 발생한다.

▷박일준 부회장=외부 지적으로 다양한 대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경영 현장에선 혼란이 많은 게 사실이다. 배임죄 소송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의사결정 부담이 커질 수 있어서다. 법을 개정하면 이사가 법적 리스크에 노출돼 경영활동에 지장이 생기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상법은 회사법 체계의 근간인 만큼 더 충실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조항을 고쳐야만 해결할 수 있는지도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2) 현행 상법으로 일반주주 보호할 수 있나

▷나 교수=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익 상충은 소유와 지배의 괴리가 커질 때 극대화한다. 국내 기업 총수 일가가 직접 가진 지분율은 평균 3.6%인데, 지배권은 약 61%에 달한다. 물적 분할, 계열사 합병, 자회사 상장 등의 경영상 결정으로 인해 기업 가치가 떨어지고 일반주주가 피해를 볼 수 있다. 일반주주들은 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데, 판례를 보면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삼성이 에버랜드를 분할할 때 전환사채를 저가로 발행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판결문에도 ‘이사는 회사의 이익에만 책임져야 하고, 주주 이익엔 책임이 없다’고 돼 있다.

▷최 교수=삼성에버랜드는 상장되지 않아 피해를 본 일반주주가 없다.

▷나 교수=이런 판례로 인해 일반주주는 다른 사례에도 적용될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일반주주 보호는 자본시장 발전에 직결되는 문제다.

▷권 교수=사전 규제가 어느 정도 필요하더라도 이를 과하게 적용하면 들어오는 물을 완전히 막아버리게 된다. 오염된 물을 골라내는 필터링 방식이 좋다. 가령 물적 분할 방식에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니 기업들이 부담을 느껴 인적 분할을 주로 한다. 그러다 보니 인적 분할에 대해서도 자사주에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시행령이 나왔다. 상법에 ‘주주 이익’이 추가되면 더 많은 후속 규제가 나올 게 뻔하다.

▷최 교수=주주 간 이해충돌 문제는 개별 판례를 통해서 해결하면 된다. 모든 것을 법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3) 주주의 ‘비례적 이익’은 지킬 수 있나

▷천 부회장=상법 조항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보유 주식 수에 비례해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뜻)는 문구를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서도 반대론자들은 오해한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는 주주 한 명, 한 명이 아니라 전체 이익을 공평하게 보호하라는 의미다. 즉 주주까지 의무 대상에 넣더라도 모든 주주의 의견을 경영 판단에 반영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법 조항을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보호해야 한다’라고 하면 된다.

▷권 교수=비례적이라는 개념은 일종의 마법처럼 읽히는데, 매우 모호하다. 10주를 가진 주주는 5주를 보유한 주주보다 두 배 더 보호해야 하는가. ‘비례적’에 몰입하다 보면 다수결 원칙을 버려야 한다. 가령 상법에 비례적 이익이라는 문구를 넣는다고 치자. 이 법은 지분만큼 의결권을 행사하는 자본다수결 원칙에 우선하는 신(新)법이 된다. 두 법률이 충돌하는 사안이 발생하면 자본다수결보다 비례적 이익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 셈이 된다.

▷최 교수=비례적 이익이라는 것은 세계 어느 법에도 없는 문구다. 아무도 모르는 개념이다. ‘총주주의 이익’도 하나 마나 한 소리다. 상법은 기본법이라 외국인도 큰 관심을 두는 법률이다. 그런데 주주의 비례적 이익 문구가 들어가면 아무도 이해 못한다. 비례적 이익을 포함해 주주까지 충실의무 대상으로 넣으면 정상적인 경영 판단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합병, 분할, 구조조정 등 의사결정을 할 때 의식하게 된다. 이사들은 ‘일반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이렇게 판단했다’고 설명해야 하는데 보통 일이 아니다. 소송이 벌어지면 판사들이 당시 경영 상황을 들여다보고 맞는 판단이었는지 따져야 한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4) 해외에선 주주 보호를 어떻게 하나

▷천 부회장=미국에선 회사의 결정으로 인해 주주 간 이해충돌이 발생했을 때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반영한다. 일본 상법에는 ‘회사를 위해’라고 적혀 있지만, 법원은 전체 주주의 이익에 영향을 주는 행위에 대해서도 이 문구 적용을 인정하고 있다. 독일은 1988년 판례를 통해 지배주주가 일반주주를 보호해야 한다는 식으로 법리를 발전시켜 왔다.

▷나 교수=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는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적용하고 있다. 이 문구가 없는 법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법을 통해 엄격하게 투자자를 보호할수록 자본시장 규모가 커진다는 연구 사례도 많이 있다.

▷최 교수=미국은 주주자본주의 국가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게 주주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따라서 군더더기처럼 ‘주주를 위해서’라는 말을 넣을 필요가 없다. 델라웨어주 회사법에 ‘회사와 주주’라고 적은 건 그래서 큰 의미가 없다. 미국에서는 주주 간 충돌을 이사회의 책임이 아니라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충돌로 본다. 우리처럼 일반 조항으로 입법하면 일반주주와 지배주주 간 분란만 일으키게 된다. 영국 법에는 ‘사원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독일과 캐나다 법엔 ‘회사를 위한 책임이 있다’고 쓰여 있다.

정리=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