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꼴의 평평한 공명상자 위 금속 줄이 얹어진 양금이란 악기는 현악기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나무를 깎아 만든 가는 채로 줄을 쳐서 연주한다. 한국전통음악 가운데 유일한 타현(打絃)악기다. 유럽의 덜시머(Dulcimer)가 18세기 중국을 거쳐 조선 영조시대에 들어와 정착된 악기인데, 일부 궁중음악에 쓰였다.

중국 연변에서 나고 자라 북한 양금을 4살 때부터 쳐 온 연주자 윤은화(41)는 불모지인 한국에 와서 인생을 걸고 양금의 길을 개척했다. 중국에 양금 제조 공장을 뚫고, 국내 대학에 양금 전공 과정을 개설하면서 그야말로 하나의 밀알이 됐다. 최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여우락 페스티벌의 특별 무대를 준비 중인 그를 9일 서울 역촌동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양금 가르치는 대학이 하나도 없어서 참을 수가 없었죠"
"양금은 현악기와 타악기, 두 얼굴을 가졌어요. 한국 현악기는 실을 사용하지만 양금은 철을 사용해서 소리가 매우 독특합니다. 화려한 기교도 가능하고 강하게 내리쳐도 끄떡없어요. 연주자가 자유자재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악기입니다." 윤씨는 양금이라는 악기가 유달리 한국에서 인기가 없었다고 했다.

국악계에 ‘산조’라는 장르가 유행하면서 독주가 가능한 거문고나 가야금 같은 현악기는 일찍이 주목을 받았다고 했다. 명주실이 아닌 철을 사용하는 현악기인 양금은 상대적으로 주목받기 어려웠다. 농현(줄떨림)이 잘 안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전통 음악에서도, 양금 연주자는 느릿한 동작으로 채를 들어 이따금 철로 된 현을 두드리는 구성이 많다. 그래서 선율을 가진 악기라는 사실조차 아는 이가 드물었다.

타악기를 공부하는 쪽에서도 양금의 입지는 좁기는 마찬가지였다. “양금을 전공하는 대학이 어쩜 이렇게 하나도 없었을까요. 세계적으로 뿌리가 깊고 저변도 넓은 양금이 한국에서 저평가된 걸 보고 참을 수 없었어요. 악기부터 일단 알리자고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그는 양금을 누구나 쉽게 접하고 이질감 없이 개량돼야 한다는 생각에 20대 초반부터 양금의 현대적 개량에 쭉 매달려왔다.
"양금 가르치는 대학이 하나도 없어서 참을 수가 없었죠"
서울 역촌동 그의 작업실에는 각기 다른 모습의 양금 대여섯대가 놓여있었다.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한국식 전통 양금, 그가 개량해낸 4옥타브 반(56음)의 음계가 빠짐없이 들어차 있는 양금, 그리고 전자 장치를 단 양금까지. 독주 악기로서 양금의 인지도와 위상을 끌어올리기 위해 구슬땀을 흘린 결과다. 2012년에는 56음계 양금으로 특허도 출원했다.

"한국에서 만들 여건이 충분하지 않아, 중국 당산 소재 공장을 무작정 찾아가 제가 개량한 방식으로 양금을 제작해 달라고 했죠.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지만 기적적으로 양금을 연주하는 공장장이 계셨고, 중국에서 악기를 가져와 서울에서 연주하고 분해해서 또 개량 주문을 넣었어요. 그렇게 거의 20년이 흘러갔어요"

개량 양금으로 윤은화는 국악계의 이름난 연주가가 됐고 양금 전공을 만들어낸 선생님이 됐다. 그에게 양금을 배우겠다는 어린 학생들도 늘었다. 중국과 베트남 등지에서도 유학생이 온다고 했다.
"양금 가르치는 대학이 하나도 없어서 참을 수가 없었죠"
윤씨는 오는 17일 서울 국립극장의 여우락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공연한다. 제목은 길을 닦는다는 의미의 '페이브(Pave)'다. 지금까지 그가 개척해온 양금의 길을 관객에게 알려주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다양한 국악기, 그리고 서양 악기와 협연을 하지만 주인공은 양금이다. 그리고 그가 걸어온 길을 어느 소리꾼이 말맛을 살려 무대 위에서 전달하기로 했다.

"많은 뮤지션들이 양금이 가진 매력을 보여주는 자리에 함께 해주셨어요. 이번 공연에서 저는 작업실에 있는 전통 양금과 전자 양금까지 모두 활용할 거에요." 이번 공연에서는 양금의 현악적인 특성 보다는 타악기로서의 면모를 많이 보여준다는 전략을 세웠다. 사물놀이의 장단에 어울리는 빠른 속도를 기반해 채에 머리가 두개가 달린 '더블 스틱'을 사용해 화음을 넣어 현란한 무대를 꾸미겠다는 것.
"양금 가르치는 대학이 하나도 없어서 참을 수가 없었죠"
윤씨는 공연에 어울릴만한 조명 등 무대 연출에까지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며 국립극장과 소통하고 있다. 인터뷰 전날에는 연주자의 의상까지 제작하기 위해 동대문 시장에서 천까지 떼왔다고 했다. "양금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는 계속 떠오를 거에요. 수정을 거듭하고 있고, 음악도 편곡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작곡해 발매한 앨범에 수록된 곡들인데 라이브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이 대부분 처음이라 설렙니다." 공연은 오는 17일 오후 7시 30분 서울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린다.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