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 위협에 강등까지…코로나로부터 인류 구한 여성과학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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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출신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커리코의 자서전 '돌파의 시간'
"당장 나가! 여기에서 당신을 반겨줄 사람은 없어!"
1988년 여름, 헝가리 출신의 33세 여성 연구원이 템플대에서 존스홉킨스대로 직장을 옮기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미국 생화학자 로버트 수하돌닉(1925∼2016)은 불같이 화를 냈다.
자신이 책임자인 템플대 연구소에 남지 않으면 그녀가 미국에 더 머물지 못하게 하겠다고 위협했다.
엄포가 아니었다.
수하돌닉은 존스홉킨스대에 연락해 그녀가 이 연구소를 떠나면 불법체류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논문에서 이름을 삭제했다.
국무부는 재류 자격 위반 가능성을 거론하며 그녀에게 지역 사무소로 출석하라고 통보한다.
헝가리 정부의 외화 반출 단속을 피하려 차를 팔아 마련한 900파운드(약 1천200달러)를 딸의 곰 인형 속에 숨겨 3년 전 대서양을 건넌 여성 과학자는 미국에서 추방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녀는 미국 국립군의관 의과대학 병리학과 박사 후 연구원 자리를 얻어 가까스로 위기를 면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앗아간 일상을 되찾게 한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개발의 길을 연 공로로 지난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커털린 커리코(69) 헝가리 세게드대 교수가 미국 생활 초기에 겪은 일이다.
커리코 교수는 최근 번역·출간된 자서전 '돌파의 시간'(까치)에서 가난했던 유년기,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과학자로서 기초를 쌓은 경험, 미국에 건너온 후 소수자로서 겪었던 어려움, 그리고 노벨생리의학상 공동수상의 영예를 안은 의사이자 생물학자인 드루 와이스먼(65)과의 우연한 만남 등을 소개한다.
커리코의 연구는 순조롭지 못했다.
헝가리에서 생물학 연구소 BRC에서 일하던 1978년 비밀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연구자 중 외국 첩보원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감시하고 보고해달라고 요구한다.
비밀경찰은 커리코의 고향에서 아버지를 만났다며 "당신(커리코)을 아주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런데 누가 아버님께 따님의 성공과 미래가 끝장났다고 말씀드린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라"고 압박한다.
커리코는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답하지만, 한 번도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BRC에서 일하는 7년 동안 한 번도 연구원 이상으로 승진하지 못했고 결국에는 연구비 부족을 이유로 해고된다.
펜실베이니아대(유펜)로 옮긴 커리코는 1997년 어느 날 복사기를 먼저 사용하고 있던 한 남성이 좀처럼 자리를 내주지 않자 상대에게 말을 건넨다.
남성은 드루 와이스먼이라고 이름을 밝히고 HIV 백신을 연구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습관처럼 커리코는 mRNA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백신용 mRNA가 필요하세요? 물론 그것도 제가 구해드리겠습니다!"
커리코의 말에 와이스먼의 눈이 커지며 표정이 변하기 시작한다.
와이스먼은 백신을 개발하면서 항원을 세포에 전달할 온갖 방법을 썼으나 mRNA는 시도해보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미래의 노벨 생리의학상 파트너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한 순간이었다.
mRNA는 인기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그녀는 "mRNA에 미친 여자"로 유명해졌지만, 정부 보조금을 받지 못했고 공적 분야에서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강등되기도 했고 상급자는 외부 자금 조달을 최우선으로 생각해달라고 닦달하기까지 한다.
커리코와 와이스먼이 어렵게 쓴 염증성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mRNA에 관한 논문이 2005년 면역학 학술지 '이뮤니티'에 실렸지만, 학계는 무관심했다.
커리코는 결국 2013년 대학을 떠나 독일 생명 기업인 바이온텍으로 이직한다.
두 학자의 노력은 팬데믹이 지구촌을 휩쓴 후에야 진가를 발휘한다.
어려움을 딛고 인류를 구원한 이 여성은 겸손하기만 하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려고 기다리고 있던 커리코와 와이스먼을 향해 동료 중 한명이 "여기 백신 발명자가 있다"고 소리를 치고 환호성이 쏟아지지만, 커리코는 먼저 땀을 흘린 수많은 학자의 공을 잊지 않는다.
"내가 백신 발명자라는 주장은 완전히 옳은 것은 아니다.
(중략) 박수를 받아야 마땅한 사람은 훨씬 많다.
(중략) 연구에 동원된 모든 기술이 누군가에 의해서 발견되고 발명된 것이다.
"
388쪽. 조은영 옮김. /연합뉴스
1988년 여름, 헝가리 출신의 33세 여성 연구원이 템플대에서 존스홉킨스대로 직장을 옮기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미국 생화학자 로버트 수하돌닉(1925∼2016)은 불같이 화를 냈다.
자신이 책임자인 템플대 연구소에 남지 않으면 그녀가 미국에 더 머물지 못하게 하겠다고 위협했다.
엄포가 아니었다.
수하돌닉은 존스홉킨스대에 연락해 그녀가 이 연구소를 떠나면 불법체류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논문에서 이름을 삭제했다.
국무부는 재류 자격 위반 가능성을 거론하며 그녀에게 지역 사무소로 출석하라고 통보한다.
헝가리 정부의 외화 반출 단속을 피하려 차를 팔아 마련한 900파운드(약 1천200달러)를 딸의 곰 인형 속에 숨겨 3년 전 대서양을 건넌 여성 과학자는 미국에서 추방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녀는 미국 국립군의관 의과대학 병리학과 박사 후 연구원 자리를 얻어 가까스로 위기를 면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앗아간 일상을 되찾게 한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개발의 길을 연 공로로 지난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커털린 커리코(69) 헝가리 세게드대 교수가 미국 생활 초기에 겪은 일이다.
커리코 교수는 최근 번역·출간된 자서전 '돌파의 시간'(까치)에서 가난했던 유년기,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과학자로서 기초를 쌓은 경험, 미국에 건너온 후 소수자로서 겪었던 어려움, 그리고 노벨생리의학상 공동수상의 영예를 안은 의사이자 생물학자인 드루 와이스먼(65)과의 우연한 만남 등을 소개한다.
커리코의 연구는 순조롭지 못했다.
헝가리에서 생물학 연구소 BRC에서 일하던 1978년 비밀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연구자 중 외국 첩보원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감시하고 보고해달라고 요구한다.
비밀경찰은 커리코의 고향에서 아버지를 만났다며 "당신(커리코)을 아주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런데 누가 아버님께 따님의 성공과 미래가 끝장났다고 말씀드린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라"고 압박한다.
커리코는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답하지만, 한 번도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BRC에서 일하는 7년 동안 한 번도 연구원 이상으로 승진하지 못했고 결국에는 연구비 부족을 이유로 해고된다.
펜실베이니아대(유펜)로 옮긴 커리코는 1997년 어느 날 복사기를 먼저 사용하고 있던 한 남성이 좀처럼 자리를 내주지 않자 상대에게 말을 건넨다.
남성은 드루 와이스먼이라고 이름을 밝히고 HIV 백신을 연구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습관처럼 커리코는 mRNA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백신용 mRNA가 필요하세요? 물론 그것도 제가 구해드리겠습니다!"
커리코의 말에 와이스먼의 눈이 커지며 표정이 변하기 시작한다.
와이스먼은 백신을 개발하면서 항원을 세포에 전달할 온갖 방법을 썼으나 mRNA는 시도해보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미래의 노벨 생리의학상 파트너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한 순간이었다.
mRNA는 인기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그녀는 "mRNA에 미친 여자"로 유명해졌지만, 정부 보조금을 받지 못했고 공적 분야에서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강등되기도 했고 상급자는 외부 자금 조달을 최우선으로 생각해달라고 닦달하기까지 한다.
커리코와 와이스먼이 어렵게 쓴 염증성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mRNA에 관한 논문이 2005년 면역학 학술지 '이뮤니티'에 실렸지만, 학계는 무관심했다.
커리코는 결국 2013년 대학을 떠나 독일 생명 기업인 바이온텍으로 이직한다.
두 학자의 노력은 팬데믹이 지구촌을 휩쓴 후에야 진가를 발휘한다.
어려움을 딛고 인류를 구원한 이 여성은 겸손하기만 하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려고 기다리고 있던 커리코와 와이스먼을 향해 동료 중 한명이 "여기 백신 발명자가 있다"고 소리를 치고 환호성이 쏟아지지만, 커리코는 먼저 땀을 흘린 수많은 학자의 공을 잊지 않는다.
"내가 백신 발명자라는 주장은 완전히 옳은 것은 아니다.
(중략) 박수를 받아야 마땅한 사람은 훨씬 많다.
(중략) 연구에 동원된 모든 기술이 누군가에 의해서 발견되고 발명된 것이다.
"
388쪽. 조은영 옮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