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살인 누명 벗었으나, 강제추행치상 '조작' 사건으로 징역형 선고받아
재심 법원 "당시 수사관들의 가혹행위로 허위 진술…재심 사유 있어"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몰렸던 故윤동일씨 33년만 재심
경기도 화성 일대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중 9차 사건 용의자로 몰렸다가 또 다른 성범죄 사건에 연루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고(故) 윤동일 씨에 대한 재심 결정이 최근 법원으로부터 나왔다.

10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수원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차진석)는 지난 1일 윤동일 씨 친형인 윤동기 씨가 청구한 윤씨의 강제추행치상 사건에 대한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이 결정은 최근 확정됐다.

이에 따라 윤씨의 강제추행치상 재심 재판이 조만간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윤씨가 1991년 1심 판결을 받은 지 33년 만이다.

윤동일 씨는 1991년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기소돼 그해 4월 23일 수원지법으로부터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윤씨는 판결에 불복해 상소했으나 모두 기각돼 1992년 1심 판결이 확정됐다.

윤씨가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입건된 당시, 그는 이춘재 살인사건 9차 사건의 용의자로 몰렸었다.

다행히 9차 사건 피해자 교복에서 채취된 정액과 윤씨의 혈액 감정 결과 불일치하는 것으로 나오면서 살인 혐의를 벗었으나, 당시 수사기관이 조작된 별도 사건인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윤씨를 기소했다는 게 윤씨 측의 입장이다.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몰렸던 故윤동일씨 33년만 재심
윤씨는 이 사건으로 수개월간 옥살이를 해야 했으며, 집행유예 선고로 출소한 이후 암 판정을 받았다.

투병 생활하던 그는 결국 1997년 사망했다.

윤씨 측은 강제추행치상 재심을 청구하며 "재심 대상 판결의 피해자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원회) 면담 조사에서 '당시 경찰에게 어두워서 (범인) 얼굴을 보지 못했다.

(범인은) 피고인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며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피해자 진술조서 내지 법정 진술은 왜곡됐거나 위증에 해당해 재심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수원지법은 "과거사위원회 조사 결과를 포함한 이 사건 기록에 의하면 당시 수사관들은 피고인을 불법 구금한 것으로 보이며, 경찰서 인근 여인숙 등으로 데리고 다니거나 잠을 재우지 않은 강압적 상태에서 조사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피고인은 수사관들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하며 허위로 진술서 내지 자술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수사관들의 범죄 행위) 공소시효가 경과해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나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 등에 의해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저질렀음이 증명된 경우에 해당하므로 재심사유가 있다"고 재심 결정 이유를 밝혔다.

윤동기 씨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경찰이 동생을 강제추행 사건으로 엮고 (이춘재) 살인 사건으로도 엮었다.

며칠간 잠도 안 재우고 진술서도 20여차례 쓰게 했다"며 "고등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동생이 지금 살아있었더라면 잘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증거가 다 조작됐기 때문에 당연히 재심 될 거라고 확신했다.

동생의 억울함이 다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는 재심 재판을 거쳐 32년 만인 지난 2020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몰렸던 故윤동일씨 33년만 재심
이를 계기로 윤성여 씨와 윤동일 씨 등 이춘재 사건 과정에서 억울하게 용의자로 몰려 피해를 본 당사자와 유가족들이 과거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요청했다.

과거사위원회는 2022년 12월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불법체포·가혹행위·자백 강요·증거 조작 및 은폐 등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조사 결과를 밝힌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