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세계 최고의 심벌즈가 탄생한 비결
전설적인 재즈 드러머 버디 리치, 비틀스의 링고 스타 등이 고집한 심벌즈가 있다. 질지언(Zildjian)이다. 세계 최정상 브랜드로 평가받는 질지언의 역사는 길다. 1618년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연금술사 아베디드 1세가 구리와 주석을 혼합한 합금에서 독특한 소리가 난다는 걸 발견하면서다. 그는 이때 터득한 독자적인 합금 기술로 심벌즈를 제작했다. 당시 술탄까지 매료시킨 심벌즈는 군악대의 타악기로 쓰인 이후 400년간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연금술사들은 금을 만드는 건 실패했지만, 다양한 실험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생각하지도 못한 성과를 내며 과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화학(chemistry)의 어원도 연금술(alchemy)에서 비롯됐다.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주는 산업사(史)다.

R&D 예산 원상 복구됐지만…

정부가 R&D 예산을 다시 늘리기로 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내년 R&D 예산은 총 24조8000억원으로 올해(21조9000억원)보다 13.2% 증액된다. 2023년과 비슷한 원상복구 수준의 편성이다. 사상 초유의 R&D 예산 삭감 사태를 둘러싼 갈등과 혼란은 이제 해소된 걸까.

학계와 기업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이미 삭감된 기존 사업의 예산은 다시 복원되지 않은 탓이다. 인공지능(AI), 첨단 바이오, 양자 등 첨단기술 분야의 신규 R&D 사업 비중이 늘어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R&D 총액은 다시 늘었지만 포트폴리오가 완전히 달라지면서 예산 증액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이나 연구기관들은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70% 가까이 줄어든 기존 과제의 연구비를 일부라도 충당하려고 신규 R&D 과제를 따내기 위해 때아닌 홍역을 치르고 있다. 평소 2 대 1, 3 대 1 정도였던 신규 정부 용역 과제 경쟁률이 10 대 1까지 치솟은 사례도 등장했다. 글로벌 R&D 예산이 대폭 늘어난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연구 용역비의 일정 부분을 해외 연구기관과 나눠야 하는 데다 우월적 지위에 밀려 연구 성과물인 지식재산권(IP)을 공유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가장 많이 깎인 中企 직격탄

대기업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글로벌 경쟁력이 취약한 중소기업계의 불만은 더하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올해 R&D 예산은 1조4097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2.7%(4150억원)이나 깎였다. 정부 부처 중 R&D 삭감 비율이 가장 높다. 개별 중소기업에 할당되는 R&D 자금이 2억~5억원 선임을 고려하면 적어도 1000여 개 기업에 배정될 수 있는 몫이 사라진 셈이다.

기술 패권 경쟁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상황에서 R&D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중국의 올해 과학기술 예산은 71조원으로 2000년 대비 16배 증가했다.

R&D 자금은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낭비라고 볼 수는 없다. 기존 R&D 과제 예산 삭감에 따른 매몰 비용이 110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오락가락 행정에 불확실성이 커진 이공계 대신 안정적인 의대로 쏠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