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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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부가 2029년까지 5세대이동통신(5G) 네트워크에서 중국 기업 부품을 모두 제거하기로 했다. 미국이 "중국산 부품이 들어간 통신망은 국가 안보에 핵심 취약점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이후 6년 만에 내린 결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현지시간) "독일 연방 정부와의 합의 초안에 따라 도이체텔레콤·보다폰 등 독일의 주요 이동통신사업자들은 2026년 말까지 데이터가 집중되는 핵심 5G 네트워크에서 중국 제조업체 화웨이와 ZTE(중싱통신)가 만든 부품을 제거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나머지 접속·전송 네트워크에 대해서는 2029년으로 제거 시한을 정했다.

양측은 조만간 서면으로 합의를 마무리할 예정이며 어길 경우 이동통신사업자에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독일 5G 네트워크의 중국산 부품 비율은 약 60%에 달한다. 독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은 뒤 국가 기반시설의 특정 국가 의존도를 경계해왔다. 또한 미국으로부터 '공급망 탈(脫)중국'에 동참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이에 독일은 지난해 7월 디커플링(공급망 탈동조화)이 아닌 디리스킹(공급망 위험 경감)을 기반으로 중국 등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내용의 대중국 전략을 수립했다. 다만 이날 알려진 계획은 2026년까지 모든 5G망에서 중국산 부품을 빼겠다는 당초 방침에서 후퇴한 것이다.

이는 독일의 3당 연립정부 내에서 대중국 전략을 둘러싼 잡음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연정 내 일각에서는 중국의 안보 위협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올라프 숄츠 총리실은 중국 투자를 장려하고 양국 간 교역 단절을 막기 위해 여전히 열심"이라고 전했다.

독일에선 이 같은 마찰로 인해 작년 발표된 대중국 전략 가운데 외국인직접투자 심사 제도를 완화하도록 수정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최근 유럽연합(EU)이 추진 중인 중국산 저가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움직임에도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화웨이 등이 5G 기기에 네트워크 침투를 위한 '백도어'를 심어두고 정부 지령에 따라 데이터를 빼간다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이에 미국을 시작으로 영국, 스웨덴, 발트해 연안 국가, 뉴질랜드, 호주 등이 화웨이와 ZTE를 5G 사업에서 배제했다. 독일 정부의 이번 대응으로 비로소 서방 동맹국 간 보조를 맞추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리서치 회사 로디움의 노아 바킨 중국 담당 수석 고문은 "독일은 영국이 취한 조치를 4년이나 늦게 하는 것"이라며 "안 하는 것보다는 늦은 편이 낫지만 매우 늦긴 늦었다"고 말했다. 독립 통신 연구 그룹인 스트란트 컨설트에 따르면 2022년 독일 5G 무선 액세스 네트워크의 59%를 중국 부품이 차지한 반면, 영국은 41%, 프랑스는 17%,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은 0%였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