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등 5개국, '크리스마스트리' 구상나무와 근연종 유전체 분석
"기온과 지형 변화에 따라 과거 분화된 종들 다시 만나 '잡종화'"
"한반도 비롯 동북아 식물 다양한 이유는 '복잡한 지형' 영향"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에 식물의 종류가 다양한 이유는 복잡한 지형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한국 등 5개국 공동 분석이 나왔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은 한국·일본·중국·러시아·미국 등 5개국 10개 기관이 참여한 '구상나무와 그 근연종(분비나무·사할린전나무·베이치전나무) 유전체 변이 분석' 연구 결과를 11일 공개했다.

근연종은 유전·계통적으로 매우 밀접한 종으로, 특히 구상나무와 분비나무는 솔방울 비늘 방향만을 제외하고는 모습이 거의 같아 전문가도 쉽게 구별하지 못한다.

구상나무는 제주 한라산과 지리산·덕유산 등 남부지방 아고산대에 사는 한국 고유종이다.

1920년대 외국에 소개된 뒤 '크리스마스트리' 용도로 주목받으며 90종 이상 개량종이 개발됐지만 구상나무 고유종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멸종위기종이다.

기후변화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구상나무와 근연종 유전체 분석 연구의 출발점은 미국 일리노이주 주립 박물관 홍첸 연구사와 로버트 리클레프스 미주리대 생물학과 교수가 2000년 과학저널 '네이처'를 통해 제기한 가설이다.

두 연구자는 동아시아의 복잡한 지형과 지리가 신생대 때 기후 및 해수면 변동과 연관돼 북미 동부에 견줘 더 많은 종 분화 기회를 만들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생대 기후 변동은 신생대 후반부의 홍적세(258만년 전부터 1만2천년 전까지) 시기에 빙하기와 간빙기가 여러 차례 반복된 것을 말한다.

이 시기 빙하기가 찾아왔을 때 해수면이 낮아져 서해가 육지이고 한반도 남동부와 일본 규슈 북부와 혼슈 남서부, 러시아 극동지역과 사할린이 땅으로 연결돼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5개국 연구진은 한반도와 일본, 중국 동북부, 러시아 극동지역에 서식하는 구상나무와 근연종 38개 집단 728개체 유전체를 분석했다.

이 분석에서 동해를 둘러싸고 동그랗게 '유전적 연결성'이 확인됐다.

대표적으로 설악산·소백산·월악산·일월산 등 한국 중부지방에 사는 구상나무와 분비나무는 두 나무의 유전적 요소를 모두 일정 비율 이상을 가졌다.

쉽게 말해 '잡종'이라는 것인데 약 2만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뒤 한반도 기온이 오르면서 구상나무는 북서쪽 저지대로 서식지를 넓히고 분비나무는 남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만나게 됐다는 것이다.

"한반도 비롯 동북아 식물 다양한 이유는 '복잡한 지형' 영향"
구상나무 근연종 모계 유전자에서 북미 쪽 나무 유전자도 발견됐다.

빙하기 해수면이 낮을 때 아시아와 북미를 연결한 '베링육교'로 북미 쪽 나무가 유입돼 구상나무 일부 집단에도 영향을 주면서 구상나무 근연종 다양성을 촉진한 것으로 연구진은 분석했다.

연구진은 "신생대 마지막 단계인 홍적세에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면서 구상나무 근연종 분포가 기후변화와 동북아시아의 복잡한 지형에 따라 확장과 수축을 반복한 점이 증명됐다"라면서 "바다와 산맥 등 지형 때문에 접촉이 막혀 분화된 식물 종이 기후변화에 따라 재접촉하면서 발생한 잡종화가 식물 다양성을 높인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북미 동부는 지형이 상대적으로 단순해 기후변화에 따라 해안선 등이 변동하면 식물들이 서식지를 한꺼번에 옮겼고 이에 잡종화가 덜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하반기 국제학술지 '생물지리학회지(Journal of Biogeography)'에 실릴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