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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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향후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해 "차선을 바꾸고 적절한 시기에 방향 전환을 할 준비를 하는 상황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마친 후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지난 5월에는 깜빡이를 켠 상황 아니라 금리 인하 준비를 위해 차선을 바꿀지 말지 고민하는 상태였다"며 이같이 답했다.

"물가만 보면 인하 논의할 분위기"

이날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연 3.50%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월 금리를 연 3.25%에서 0.25%포인트 높인 후 12차례 연속 동결을 선택했다. 이 결정은 금통위원 '전원 일치'였다. 일각에서 예상한 금리 인하 소수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 '기준금리 인하 시기 등을 검토해 나갈 것'이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등장했고, 금통위원의 3개월 후 금리 전망에서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한다"고 답한 위원이 1명에서 2명으로 늘어나는 등 금리 인하에 관한 언급은 늘었다.

한은이 금리 인하 준비에 나서고 있는 것은 물가 둔화가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2.4%까지 낮아졌고, 근원물가도 2.2% 상승에 그쳤다. 이 총재는 이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변화이고, 예상했던 바와 부합하는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다른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물가 안정이라는 측면에서는 저희가 많은 성과를 이뤘다"며 "물가 안정만 놓고 보면 금리 인하를 논의할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강조했다.

부동산·가계 부채 불안…"시장 기대 과도하다"

하지만 이 총재는 금리 인하의 시점에 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나타냈다. 이 총재는 "외환시장, 수도권 부동산 가격, 가계부채 움직임 등 앞에서 달려오는 위험 요인이 많다"며 "언제 방향 전환을 할지는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고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 등 금융 불안에 대한 우려가 지난 5월에 비해 더 커졌다고도 했다. 이 총재는 "지난 5월에는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완만하게 오를 것으로 봤는데, 그때보다 조금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상승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금융안정에 대한 고려가 커졌다"며 "가계부채 수준을 중장기적으로 낮춰가는 게 중요한 만큼 유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정부와 거시 건전성 정책 공조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한은이 유동성을 과도하게 공급하거나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 잘못된 시그널을 줘 주택가격 상승을 촉발하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금통위원 모두 공감했다"고 덧붙였다.

시장은 이날 금통위를 다소 매파(통화긴축 선호)적으로 받아들였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2원10전 내린 1381원90전으로 출발한 후 통방문 발표 직전인 10시30분께까지 오르다가 기자간담회 등을 거치면서 1370원대로 내려섰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도 오름세를 나타냈다. 금리 인하 소수의견이 제시되지 않고, 시장의 과도한 기대를 억누르는 이 총재 발언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됐다.

이 총재는 이날 시장의 움직임에 관한 질문을 받고 "대다수 금통위원은 물가와 금융안정 상황을 고려할 때 지금 시장에 형성된 금리 인하 기대는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이런 기대를 선반영해서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 등이 형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