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스 파이어의 ‘피에타’(2024). 인공 야자수 두 그루를 성모 마리아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비유했다. 죽은 예수를 안고 애도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 남서원, 아트선재센터
이디스 파이어의 ‘피에타’(2024). 인공 야자수 두 그루를 성모 마리아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비유했다. 죽은 예수를 안고 애도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 남서원, 아트선재센터
따뜻한 남반구 휴양지를 도심에 옮겨온 걸까.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더그라운드 전시장에 야자수가 펼쳐졌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늘어진 줄기는 생기를 잃은 지 오래고, 메마른 잎사귀는 테이프로 간신히 나무토막에 고정돼 있다.

어딘가 기운 없는 이들은 국내외 8개 작가 그룹이 참여한 전시 ‘피곤한 야자수’의 일부다. 기후변화와 식민주의, 인간의 욕망 등 전 지구적 문제를 식물의 관점에서 살펴보려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조용히 살아가던 야자수를 피곤하게 한 주범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주로 열대 및 아열대 기후에서 자라는 야자수의 식생은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구온난화 여파로 한반도 남부까지 확산한 종이 있는가 하면 일부는 바뀐 날씨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 위기에 내몰렸다. 가정용 식물을 활용한 설치작업부터 사진, 영상, 회화에 이르는 다양한 매체들이 저마다 경종을 울린다. 멸종 위기에 처한 야자수의 일부를 천으로 재구성한 로스비타 바인그릴의 설치작품을 헤치고 나아가면 밑동만 남은 숲을 그린 장종완 작가의 ‘적외선 회화’가 모습을 드러낸다.

야자수는 착취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북아프리카에 주둔한 나치 군단의 표식에도 야자나무가 등장한다. 카트린 스트뢰벨의 작품에선 노예제와 전쟁 등 침략의 역사를 목격한 야자수를 그린 드로잉 104점이 선풍기 바람에 조용히 흩날린다.

이번 프로젝트는 오스트리아 연방 정부가 후원하고 모로코 르큐브독립예술공간(설립자 엘리자베스 피스케르니크)이 공동 주최했다. 2019년 오스트리아, 2022년 모로코에서 각각 열린 전시에 이은 세 번째 에디션이다. 기존 전시에 참여한 작가 6명에 더해 국내 작가 신미정과 장종완이 합류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잊히거나 강제로 지워진 개인의 삶을 영상으로 기록해온 신미정은 ‘밤섬: 표류하는 이미지들의 기록 vol.1’(2022)을 통해 서울 도시 개발 과정에서 사라진 밤섬을 연구했다. 과거 400여 명이 살다가 1968년 폭파된 후 1980년대부터 다시 섬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 생태경관 보전지역 밤섬의 과거를 되짚는다. 마르쿠스 바이차허 포룸슈타트파르크 큐레이터는 “오스트리아 빈 외곽으로 여행하다가 한 동네에서 남미 이민자들이 심어놓은 야자수가 집집마다 있는 낯선 광경을 보고 전시를 기획했다”며 “이주와 이민 문제가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만큼 전시 장소를 옮길 때마다 현지 작가들과 새로운 버전으로 바꾸고 있다”고 했다.

전시장을 찾은 주자네 앙거홀처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 부인은 “한국 작가 두 명이 합류하면서 프로젝트가 한층 깊어진 것 같다”며 “정치·사회·생태·역사적 문제에 대해 우리가 조금 더 알아보고 인식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전시”라고 말했다. 전시는 8월 4일까지.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