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극장을 연상케 하는 붉은 커튼을 두른 펠트커피 청계천점. /텍스처 온 텍스처 제공
오페라 극장을 연상케 하는 붉은 커튼을 두른 펠트커피 청계천점. /텍스처 온 텍스처 제공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1942)에는 어두운 거리 홀로 불을 밝힌 간이식당 주방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주방 공간을 소비자에게 그대로 드러내는 오픈키친이 등장하자 1940년대에 이미 도입된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오픈키친을 도입한 것은 파인 다이닝 ‘스파고(Spago)’라고 할 수 있다. 1982년 오너 셰프 울프강 퍽이 미국에 문을 연 이 레스토랑은 홀 어디에 앉든 투명한 유리창으로 모든 조리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실베스터 스탤론, 조지 루커스, 스티븐 스필버그 등 할리우드 유명 인사들이 단골로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끈 이 레스토랑은 미국 전역으로 오픈키친 개념을 퍼뜨리며 레스토랑의 ‘스파고화(Spagoization)’를 이끌었다.
강렬한 붉은 장막의 펠트…작은 오페라 극장의 배우가 된 바리스타
펠트커피가 업계 최초로 선보인 ‘쇼룸’(위). 아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문을 연 인텔리젠시아.
펠트커피가 업계 최초로 선보인 ‘쇼룸’(위). 아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문을 연 인텔리젠시아.
커피를 취급하는 간이식당부터 에스프레소 머신을 올려둔 현대적인 카페까지 대부분 제조 공간을 드러낸 형태를 갖췄으니, 카페 역사에서 오픈키친 개념이 도입된 시기를 논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스파고와 같이 제조 과정의 투명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의 ‘오픈 키친’을 말한다면, 스페셜티 커피를 중심으로 한 커피 제3의 물결 시대에 그 개념이 본격적으로 도입됐다고 볼 수 있다.

어디에서도 커피 제조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오픈형 바(bar)를 설계한 곳은 스웨덴 요한&뉘스트룀,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니스비치에 문을 연 인텔리젠시아커피 매장 등이 있다. 기존의 매장들이 소비자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설계해 제조 공간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에 반해, 이 매장들은 바리스타가 마치 무대 위에서 멋진 공연을 선보이듯 커피를 제조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후 자칫 잘못하면 고객의 동선이 바 안으로 섞여 들어갈 만큼 그 경계가 아슬아슬한 ‘오픈 바’ 구조가 스페셜티 커피 업체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2015년 서울 창전동에 문을 연 ‘펠트커피 쇼룸’은 스페셜티 커피 시대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새로운 공간이었다. 커피업계 최초로 선보인 이 ‘쇼룸’에는 하얀 벽과 에스프레소 머신이 올려진 바, 벽을 따라 설치된 붙박이 의자가 전부였다. 쇼룸은 오후 6시까지만 문을 열어뒀다.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었던 펠트커피의 첫 쇼룸은 머지않아 적지 않은 카페가 그 형태를 따라 할 정도로 성공적인 모델이 됐다. 전국 곳곳에 펠트 쇼룸의 인테리어와 유사한 매장이 여럿 등장했다. 턴테이블을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그대로 틀어놓은 곳도 있었다.

창전동 쇼룸을 시작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펠트는 광화문과 청계천, 도산공원, 판교 일대에 매장을 열었다. 각각의 공간은 이제는 문을 닫은 창전동 쇼룸의 정체성을 이어받으면서 상상력이 덧대어졌다. 네 개의 큰 문이 열리면 문 앞의 광장과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청계천점은 이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매장이다.

내부는 오페라 극장을 연상케 하는 붉은 커튼을 둘렀고, 천장에 달린 커다란 한 쌍의 웨스턴일렉트릭 호른에서는 공간을 채우는 청량한 음악이 울려 퍼진다. 마치 근사한 오페라 극장을 연상케 하는 이 ‘무대’에 바리스타가 오르고, 손님들은 잘 준비된 한 편의 ‘커피’를 즐긴다. 정교하게 마감한 목제 의자는 언제든 위치를 바꿀 수 있다. 이 덕분에 누군가는 바리스타가 펼치는 공연에 빠져 있지만, 누군가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매장을 무대로 만든 펠트의 시도는 또 다른 성공 모델이 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통유리로 된 매장을 일부러 커튼으로 둘러싼 곳도 있을 정도였다. 커피업계에서 종종 목격하는 공간의 ‘펠트화’ 모습은 다양하다. 단순히 화제가 된 공간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가져가는 곳도 있지만, 그 영향으로 또 새로운 공간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조원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