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형 아키텍처(설계 언어) 리스크파이브를 활용하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회사)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저전력 인공지능(AI) 반도체가 미래 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부상하면서 생긴 일이다. 주요 제조 대기업과 빅테크는 이 분야 선두인 텐스토렌트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등 우군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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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파이브가 뭐길래

1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이 캐나다 AI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텐스토렌트와의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텐스토렌트는 2016년 설립된 기업으로 ‘리스크파이브 전도사’로 불리는 짐 켈러 최고경영자(CEO)가 이끌고 있다.

리스크파이브는 반도체 설계 아키텍처로, 미국 UC버클리 연구진이 2014년 처음 공개했다. 공개 초반에는 오픈소스(무료)라는 이유로 관심을 받았지만, 이 분야 최강자인 ARM에 막혀 확산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AI 기술이 대세가 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AI 반도체는 전력을 얼마나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 방대한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365일, 24시간 운영해야 하는 기업으로선 에너지 효율성이 성능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리스크파이브의 강점은 ‘단순함’이다. 중앙처리장치(CPU)가 입력된 명령을 인식하고 수행하는 ‘명령어 세트’(ISA)가 47개에 불과하다. ISA가 1500개에 달하는 인텔(x86), 200개인 ARM보다 적은 전력으로 시스템을 구동할 수 있다.

오픈소스로 로열티를 내지 않고 쓸 수 있다는 점도 리스크파이브가 주목받는 배경 중 하나다. ARM이 삼성전자, 애플, 퀄컴 등 세계 1000여 개 반도체 기업으로부터 기술 사용료를 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삼성·LG도 러브콜…AI 타고 되살아난 '리스크파이브'

○AI 유니콘 텐스토렌트 급부상

텐스토렌트는 AI 반도체 설계와 지식재산(IP) 특허 기술 대여로 돈을 버는 회사다. 특히 하나의 칩에 서로 다른 칩을 붙여 성능을 높이는 기술인 칩렛(Chiplet) 설계에 강점이 있다. 이런 경쟁력을 바탕으로 설립 9년 만에 기업 가치 10억달러에 이르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켈러 CEO는 일찍이 반도체 설계에 리스크파이브를 도입했다. 소프트웨어(SW) 공동 개발을 위한 연합체 ‘리스크파이브 SW 에코시스템(RISE)’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연합에는 삼성전자, 구글, 인텔, 퀄컴 등 13개 반도체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최근 국내 대기업들은 켈러 CEO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8월 삼성카탈리스트펀드를 통해 1억달러 투자를 주도했다. LG전자는 TV와 기타 제품용 반도체 개발에서 손을 잡았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달 북미 출장 중 켈러 CEO를 만났다. 현대차그룹은 5000만달러를 투자했다.

시장조사업체 BCC리서치는 지난해 4억4500만달러 규모였던 리스크파이브 시장이 2027년 27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리스크파이브로 생산된 반도체가 2030년 170억 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강경주 기자

■ 리스크파이브(RISC-V)

반도체를 설계할 때 필요한 언어 체계. 컴퓨터 프로그램을 짤 때 쓰는 파이선, 자바와 비슷한 개념이다. PC용은 미국 인텔이, 모바일 기기용은 영국의 ARM이 반도체 설계 언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