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車 침수 여부·배터리 상태 한눈에 확인하죠"
요즘 전기자동차업계의 고민은 ‘캐즘’이란 단어에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캐즘이란 초기 성공을 거둔 기술이 주류 시장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뜻한다. 기술 발전에도 소비자는 전기차의 안전성과 충전 인프라 때문에 구매를 망설이는 분위기다. 하지만 전기차 충전소 정보를 제공하는 모바일 앱인 EV 인프라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소프트베리는 사뭇 다르다.

지난 10일 서울 양재동 스타트업 사무공간 NH디지털혁신캠퍼스에서 만난 박용희 소프트베리 대표(사진)는 “배터리 안전과 충전 인프라, 주행거리 등의 문제 때문에 캐즘에 대한 질문이 많지만 오히려 많은 사업 기회를 발굴하고 있다”며 “충전 과정에서 얻는 이용자의 다양한 데이터가 모여 관련 산업이 팽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소프트베리는 매출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 회사는 2022년 28억원, 지난해 4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박 대표는 ‘전기차 마니아’다. 2014년 기아 쏘울 EV로 전기차에 처음 입문했다. 수량이 많지 않아 추첨에 대기 순번까지 기다린 끝에 받은 차였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아내의 권유로 경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서 전기차로 바꿔탔다. 세 번의 ‘기기 변경’을 거쳐 지금은 기아 EV6와 니로EV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첫 차를 기아 광주공장에서 받았을 때는 완전 충전 후 140㎞밖에 가지 못해 충전소를 찾느라 서울까지 오는 데 12시간 걸렸다”며 “충전소 정보 안내도 잘못돼 있어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한 번 충전하면 300~400㎞를 갈 수 있는 요즘 전기차 배터리 기술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목원대 정보통신학과를 졸업하고 자동차 전장(전자장치) 전문회사인 오큐브의 개발팀장으로 일한 그가 2017년 스타트업 소프트베리를 꾸린 데는 이 같은 사용자로서의 불편함이 있었다. 구글맵에 충전소가 있는 위치를 표시하다가 아예 충전소 안내 앱을 개발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EV 인프라 앱 사용자들이 보내주는 정보는 소프트베리의 핵심 자산이다. 전기차 이용자들이 주로 어디서, 얼마나 충전하는지 알 수 있어서다. 앱 사용자들의 신고로 고장 난 충전기 정보는 곧바로 업데이트된다. 그는 “예전에는 충전소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많이 있는지만 따졌는데 요즘은 결제가 편리하고 가격이 저렴한 곳을 찾는 식으로 충전 습관이 달라졌다”며 “전기차 이용자의 요구를 발 빠르게 파악해 충전 인프라를 개선하는 것이 캐즘 극복의 열쇠”라고 말했다.

전기차 충전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의 힘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3일 참가한 태국 전기차산업 전시회에서는 여러 충전소를 통합 제어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8일에는 방한 중인 헝가리 에너지부 공무원들을 상대로 국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설명했다.

소프트베리의 다음 목표는 중고 전기차 시장이다. 박 대표는 “차량의 연식과 배터리 상태, 침수 여부 등을 알 수 있는 기술을 연내 선보일 예정”이라며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차량 정보의 투명한 공개가 가능해 중고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글=박종필/사진=임대철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