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 병상을 늘리기 위해 ‘빅5 병원’(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등을 포함한 상급종합병원의 일반 병상이 최대 15% 줄어든다. 중증 수술 수가가 대폭 개선되고, 응급 진료를 위한 대기 시간을 보상하는 ‘당직 수가’도 신설된다. 값싼 전공의에 의존하지 않고도 정상 가동되는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의료 개혁의 일환이다.

○상급종합병원 구조 ‘대수술’

빅5 병원, 일반병상 최대 15% 줄인다
정부는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5차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방안’을 논의했다. 아픈 사람이 가장 마지막에 가야 할 3차 병원인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응급·희소질환에 집중하고도 손실을 보지 않고 정상 운영이 가능하도록 보상 및 인력 체계를 바꾸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정부는 2027년 전면 제도화를 목표로 오는 9월부터 시범사업 형태로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을 추진하기로 했다. 우선 상급종합병원이 규모 확장보다 중증 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3년 내에 일반 병상의 5~15%를 감축한다. 경증 환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다인실을 2~3인실 또는 중환자실로 전환해 병원의 중환자 진료 역량을 높인다. 의료개혁특위에 따르면 국내 상급종합병원의 일반 병상 대비 중환자 병상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국내 최고 병원 중 하나인 서울대병원도 11.8% 수준이다. 반면 미국 존스홉킨스병원의 중환자 병상 비중은 17%다.

병원들이 구조 전환을 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보상 체계도 바꾼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주로 이뤄지는 중증 수술 등 고난도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를 대폭 인상한다. 중환자를 많이 진료할수록 수익을 낼 수 있게 중환자실과 입원료 수가도 인상한다.

응급실 의사들의 ‘숙원’이던 ‘당직 수가’도 처음으로 도입한다. 전문의와 간호사들이 응급진료를 하기 위해 당직할 경우 대기비용을 건강보험으로 보상하는 방식이다. 전체 의사의 39%를 수련생인 전공의에게 의존하던 구조도 바꾼다. 현재 전공의 중심으로 이뤄지던 당직 시스템을 전문의와 진료 지원(PA) 간호사가 팀을 이뤄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바꾼다.

복지부 관계자는 “병원들의 무분별한 병상 확장을 억제해 의료의 질 제고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며 “진료 인력을 전문의와 PA 간호사 등 숙련된 인력 중심으로 운영해 전공의 비중을 단계적으로 축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문의·PA 간호사 역할 확대

정부가 의료계, 환자단체, 전문가와 공동으로 구성한 의료개혁특위는 지난 4월 발족하면서 상급종합병원 개편을 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경증 환자도 동네 의원이 아니라 상급종합병원을 찾는 환자 쏠림 현상을 막지 않고선 필수·지역의료를 살릴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간 상급종합병원들은 낮은 중환자 진료 수가 문제를 경증 환자 진료를 최대한 늘리고, 이들이 치료받을 병상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이 같은 병상 관리에 투입된 것이 원래는 수련생 신분인 전공의다.

정상적인 의료 체계라면 고난도 중증 수술에 집중해야 할 상급종합병원 의사들이 경증 외래에 매몰되면서 병상은 많은데 정작 중증·응급환자는 제때 진료받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평시 기준 상급종합병원의 중증 환자 비율이 전년 동기 대비 39%에 불과했다. 이 비중을 최소 50% 이상으로 높인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의료개혁특위는 추가 의견 수렴을 거쳐 8월에 구체적인 수가 인상 방안 등을 담은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방안 최종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시범 사업의 재원은 주로 건강보험 재정에서 충당하고, 일부 사업은 정부 재정을 투입할 방침이다. 노연홍 의료개혁특위 위원장은 “이제 한국 의료는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숙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며 “상급종합병원 개편이 그 시작”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