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소리가 사라진 세상 마지막 날, 당신이 원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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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신지혜의 영화와 영감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의 프리퀄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이 던지는 메시지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의 프리퀄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이 던지는 메시지
# 사미라의 이야기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요양병원에 머물고 있음과 기운 없어 보이는 몸짓, 모든 것에 관심 없어 보이는 눈동자가 그녀의 상황과 상태를 말해 준다. 그녀가 들고 있는 노트와 연필 그리고 그녀의 글로 미루어 그녀는 반짝이는 지성과 미래를 손에 쥐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보호사는 그런 그녀가 안쓰럽다. 고양이 프로도 외에는 그 누구와도 친밀해지지 않고 그럴 생각도 없어 보이며 (하긴 말기 암 환자인 사미라가 누군가와 호의적인 관계를 맺을 이유도 딱히 찾기 어렵다) 그녀의 존재 이유였을 글쓰기에도 열심을 내지 않으니 말이다.
그날은 보호사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다. 사미라는 모처럼 뉴욕 시내에 갈 생각에 마음이 조금은 들뜬다. 그리고 꼭 ‘펫시스’에서 피자를 먹고 오자고 보호사에게 다짐을 받는다.
공연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공연이 끝나고 아주 잠깐의 시간이겠으나 펫시스에서 피자를 먹을 생각에 사미라는 짜증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는 뉴욕 시내가 아닌가. 게다가 세상 끝날까지 자신의 곁에 있어 줄 단 하나의 생명체 고양이 프로도가 함께 있으니.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사미라의 기대는 한순간에 날아간다. 뭔가 모를 괴생명체들이 날아다니며 소리를 내는 대상을 끔찍하게 파괴하고 있다. 헬리콥터들은 다급하게 비행을 하면서 절대 어떤 소리든 내지 말라는 절실한 경고를 보내는 것을 마지막으로 괴생명체로부터 습격을 받는다. 혼란스럽고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비명을 지르지 않기란 쉽지 않지만 사미라와 프로도는 최대한 조용히 몸을 숨길 곳을 찾는다.
# 남자의 이야기
남자와 아이는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다. 우리가 기억하는 푸른 하늘도 맑은 공기도 도시의 소리도 사람들의 웃음도 없는 그 세상 또한 언제 어떻게 그리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아빠인 남자는 그 무엇보다 아니 유일하게 소중한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향하는 중이다. 잿빛 나날,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풍경, 거친 공기와 폐허가 된 도시를 지나 추위를 피해 생존할 수 있는 남쪽으로 가는 중이다.
혹시라도 누군가와 마주칠까 조심하며 혹시라도 누군가가 불쑥 나타나 얼마 없는 가진 것을 강탈당할까 두려워하며 혹시라도 어린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저어하며 부지런하고도 신중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런 세상에 그 어떤 희망이 있을까 싶다.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잿빛뿐인 이곳. 어쩌다 누군가와 마주칠까 그것이 더 두려운 세상. 하지만 그에겐 어리고 여린 아들이 있다. 아버지의 목에 마음에 매달려 안심하는 순수하고 연약한 아들이 있다.
조금의 용기를 짜내 온몸과 마음을 무장하고 해가 지기 전까지 발걸음을 옮기는 수밖에 없다.
# 사미라의 이야기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다. 지금 상황이 어떠한지. 그들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왜 지구로 왔는지 알 바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단 하나, 소리를 내면 죽는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그런 상황에서 사미라는 펫시스의 피자를 떠올린다. 단 한 조각만 먹으면 되는데, 매장에서 단 한 조각만.
우연히 만나 짧은 시간 함께 하게 된 에릭은 그런 사미라의 바람을 무시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웬 피자 타령이냐고 타박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녀를 바라보고는 묵묵히 함께 펫시스로 향한다. 펫시스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사미라가 왜 이곳에 오고 싶어 했는지. 왜 이곳의 피자를 먹고 싶어 했는지. 어쨌거나 이런 상황에서 피자가게가 온전할 리도 없고 제대로 된 피자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텐데 온갖 위험을 무릅쓰며 이곳을 찾은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펫시스의 피자는 바로 사미라의 추억이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었던 것이다. 병이 나기 전의 일상이며 마음껏 웃고 글을 쓸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시간인 것이다.
# 남자의 이야기
남자는 기억해낸다. 삼촌의 농장에서 조금 떨어진 호수로 땔감을 찾으러 가던 때를. 나이 든 삼촌이 노 위로 몸을 구부리고 있는 동안 어렸던 남자는 보트 뒤편에 앉아 물에 손을 넣었다. 땔감으로 쓸 나무 밑동을 매달고 집으로 오는 길은 어두웠고 호숫가의 집 창들이 불빛을 보내주었으며 어디에선가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삼촌과 어렸던 남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날은 유년기의 완벽한 어느 날임을 알고 있었다.
며칠 후 남자는 자신이 자란 집에 도착한다. 아들의 손을 잡고 들어간 집에는 오랜 시간의 흔적이 듬성듬성 남아 있다. 크리스마스 양말을 매달아 두었던 압정 자국, 자매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았던 불가, 언제나 어머니가 깨끗하게 유지했던 내화벽돌, 어린 자신이 잠을 자던 방...
그 시절은 이제 가고 없다. 단순히 시간이 흘러 그런 것이 아니다. 그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너무나 다르다. 일상의 안락함과 포근함이 사라진 세상은 남자의 기억 속 따스하고 다정했던 세상과 너무나 다르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어느 날. 그날이 완벽한 날들이었음을 남자는 깨닫는다. 그 순간 지나버린 그 시간들이 돌이킬 수 없고 돌아오지 않은 그날들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소리를 낼 수 없게 되었다. 발화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아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달려와 생명을 앗아가는 외계생명체 때문이다.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은 이 설정만으로 영리하고 흥미롭게 만들어진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세 번째 작품이며 프리퀄이다. 어디에서 왔는지 왜 왔는지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저 그런 상황에 내동댕이쳐졌을 뿐.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숨을 고르고 소리를 내지 말고 아주 조심해서 움직이는 것뿐이다.
그런데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어디라면 안전할까? 다른 생존자들은 지금 어디에 모여 있을까? 그곳으로 갈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 당신은 어디로 가고 싶은가? 그나저나 언제까지 생존할 수 있을까?
#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
무슨 연유에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남자와 어린 아들의 지금 세상은 재로 뒤덮인 회색 세상이다. 남자의 어린 시절 속 초록 나뭇잎이나 투명하고 깨끗한 물이나 사람들의 유쾌한 담소 따위는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이다. 남자의 기억 속에는 부모님의 집과 삼촌의 호숫가 집이 있고 그렇게 지나온 일상의 기억이 있지만 지금 이 세상에서 그런 일상은 찾아볼 수 없으며 추억으로 재생할 수도 없다. 지금은 단지 따뜻한 남쪽으로 가는 것,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고 타인과 만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남쪽으로 가는 것만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남쪽의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그곳은 안전할까? 그곳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생존해 있을까? 당신은 어떠한가? 이 남자와 어린 소년과 동행할 수 있겠는가?
# 세상의 마지막 날,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무엇을 원할 수 있을까.
평온하고 활기찼던 일상, 이제는 기억 속에만 머무는 일상의 한 조각. 사미라는 아버지와의 기억이 잔뜩 묻어 있는 펫시스에서 피자 한 조각을 베어 물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따스함과 다정함이 존재하던 유년 시절의 기억, 모든 것이 잿빛이 아닌 제 색깔을 가지고 있었던 그 시절의 기억. 남자가 아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과 일상이 쌓아주는 추억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세상의 마지막 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이다지도 없다니. 그저 일상의 평온과 무료함이 그토록 값진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수밖에. 그래서 스피노자는 세상의 마지막 날,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신지혜 칼럼니스트•멜팅포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요양병원에 머물고 있음과 기운 없어 보이는 몸짓, 모든 것에 관심 없어 보이는 눈동자가 그녀의 상황과 상태를 말해 준다. 그녀가 들고 있는 노트와 연필 그리고 그녀의 글로 미루어 그녀는 반짝이는 지성과 미래를 손에 쥐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보호사는 그런 그녀가 안쓰럽다. 고양이 프로도 외에는 그 누구와도 친밀해지지 않고 그럴 생각도 없어 보이며 (하긴 말기 암 환자인 사미라가 누군가와 호의적인 관계를 맺을 이유도 딱히 찾기 어렵다) 그녀의 존재 이유였을 글쓰기에도 열심을 내지 않으니 말이다.
그날은 보호사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다. 사미라는 모처럼 뉴욕 시내에 갈 생각에 마음이 조금은 들뜬다. 그리고 꼭 ‘펫시스’에서 피자를 먹고 오자고 보호사에게 다짐을 받는다.
공연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공연이 끝나고 아주 잠깐의 시간이겠으나 펫시스에서 피자를 먹을 생각에 사미라는 짜증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는 뉴욕 시내가 아닌가. 게다가 세상 끝날까지 자신의 곁에 있어 줄 단 하나의 생명체 고양이 프로도가 함께 있으니.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사미라의 기대는 한순간에 날아간다. 뭔가 모를 괴생명체들이 날아다니며 소리를 내는 대상을 끔찍하게 파괴하고 있다. 헬리콥터들은 다급하게 비행을 하면서 절대 어떤 소리든 내지 말라는 절실한 경고를 보내는 것을 마지막으로 괴생명체로부터 습격을 받는다. 혼란스럽고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비명을 지르지 않기란 쉽지 않지만 사미라와 프로도는 최대한 조용히 몸을 숨길 곳을 찾는다.
# 남자의 이야기
남자와 아이는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다. 우리가 기억하는 푸른 하늘도 맑은 공기도 도시의 소리도 사람들의 웃음도 없는 그 세상 또한 언제 어떻게 그리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아빠인 남자는 그 무엇보다 아니 유일하게 소중한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향하는 중이다. 잿빛 나날,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풍경, 거친 공기와 폐허가 된 도시를 지나 추위를 피해 생존할 수 있는 남쪽으로 가는 중이다.
혹시라도 누군가와 마주칠까 조심하며 혹시라도 누군가가 불쑥 나타나 얼마 없는 가진 것을 강탈당할까 두려워하며 혹시라도 어린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저어하며 부지런하고도 신중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런 세상에 그 어떤 희망이 있을까 싶다.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잿빛뿐인 이곳. 어쩌다 누군가와 마주칠까 그것이 더 두려운 세상. 하지만 그에겐 어리고 여린 아들이 있다. 아버지의 목에 마음에 매달려 안심하는 순수하고 연약한 아들이 있다.
조금의 용기를 짜내 온몸과 마음을 무장하고 해가 지기 전까지 발걸음을 옮기는 수밖에 없다.
# 사미라의 이야기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다. 지금 상황이 어떠한지. 그들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왜 지구로 왔는지 알 바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단 하나, 소리를 내면 죽는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그런 상황에서 사미라는 펫시스의 피자를 떠올린다. 단 한 조각만 먹으면 되는데, 매장에서 단 한 조각만.
우연히 만나 짧은 시간 함께 하게 된 에릭은 그런 사미라의 바람을 무시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웬 피자 타령이냐고 타박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녀를 바라보고는 묵묵히 함께 펫시스로 향한다. 펫시스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사미라가 왜 이곳에 오고 싶어 했는지. 왜 이곳의 피자를 먹고 싶어 했는지. 어쨌거나 이런 상황에서 피자가게가 온전할 리도 없고 제대로 된 피자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텐데 온갖 위험을 무릅쓰며 이곳을 찾은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펫시스의 피자는 바로 사미라의 추억이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었던 것이다. 병이 나기 전의 일상이며 마음껏 웃고 글을 쓸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시간인 것이다.
# 남자의 이야기
남자는 기억해낸다. 삼촌의 농장에서 조금 떨어진 호수로 땔감을 찾으러 가던 때를. 나이 든 삼촌이 노 위로 몸을 구부리고 있는 동안 어렸던 남자는 보트 뒤편에 앉아 물에 손을 넣었다. 땔감으로 쓸 나무 밑동을 매달고 집으로 오는 길은 어두웠고 호숫가의 집 창들이 불빛을 보내주었으며 어디에선가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삼촌과 어렸던 남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날은 유년기의 완벽한 어느 날임을 알고 있었다.
며칠 후 남자는 자신이 자란 집에 도착한다. 아들의 손을 잡고 들어간 집에는 오랜 시간의 흔적이 듬성듬성 남아 있다. 크리스마스 양말을 매달아 두었던 압정 자국, 자매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았던 불가, 언제나 어머니가 깨끗하게 유지했던 내화벽돌, 어린 자신이 잠을 자던 방...
그 시절은 이제 가고 없다. 단순히 시간이 흘러 그런 것이 아니다. 그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너무나 다르다. 일상의 안락함과 포근함이 사라진 세상은 남자의 기억 속 따스하고 다정했던 세상과 너무나 다르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어느 날. 그날이 완벽한 날들이었음을 남자는 깨닫는다. 그 순간 지나버린 그 시간들이 돌이킬 수 없고 돌아오지 않은 그날들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소리를 낼 수 없게 되었다. 발화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아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달려와 생명을 앗아가는 외계생명체 때문이다.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은 이 설정만으로 영리하고 흥미롭게 만들어진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세 번째 작품이며 프리퀄이다. 어디에서 왔는지 왜 왔는지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저 그런 상황에 내동댕이쳐졌을 뿐.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숨을 고르고 소리를 내지 말고 아주 조심해서 움직이는 것뿐이다.
그런데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어디라면 안전할까? 다른 생존자들은 지금 어디에 모여 있을까? 그곳으로 갈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 당신은 어디로 가고 싶은가? 그나저나 언제까지 생존할 수 있을까?
#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
무슨 연유에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남자와 어린 아들의 지금 세상은 재로 뒤덮인 회색 세상이다. 남자의 어린 시절 속 초록 나뭇잎이나 투명하고 깨끗한 물이나 사람들의 유쾌한 담소 따위는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이다. 남자의 기억 속에는 부모님의 집과 삼촌의 호숫가 집이 있고 그렇게 지나온 일상의 기억이 있지만 지금 이 세상에서 그런 일상은 찾아볼 수 없으며 추억으로 재생할 수도 없다. 지금은 단지 따뜻한 남쪽으로 가는 것,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고 타인과 만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남쪽으로 가는 것만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남쪽의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그곳은 안전할까? 그곳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생존해 있을까? 당신은 어떠한가? 이 남자와 어린 소년과 동행할 수 있겠는가?
# 세상의 마지막 날,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무엇을 원할 수 있을까.
평온하고 활기찼던 일상, 이제는 기억 속에만 머무는 일상의 한 조각. 사미라는 아버지와의 기억이 잔뜩 묻어 있는 펫시스에서 피자 한 조각을 베어 물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따스함과 다정함이 존재하던 유년 시절의 기억, 모든 것이 잿빛이 아닌 제 색깔을 가지고 있었던 그 시절의 기억. 남자가 아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과 일상이 쌓아주는 추억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세상의 마지막 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이다지도 없다니. 그저 일상의 평온과 무료함이 그토록 값진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수밖에. 그래서 스피노자는 세상의 마지막 날,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신지혜 칼럼니스트•멜팅포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