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00세 시대, 벤처펀드의 새로운 과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고 있다. 내년에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2018년 고령사회에 접어든 지 고작 7년 만이다. 영국(50년), 프랑스(39년), 미국(15년), 일본(10년) 등 여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에 비하면 최단기간이다.

초고속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2020년 기준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OECD 1위로, 평균(14.2%)의 두 배가 훌쩍 넘는 40.4%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은퇴한 후의 안정적인 소득원이 될 수 있는 퇴직연금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382조원으로 5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최근 5년간 수익률은 연 2%대에 불과하다. 이는 퇴직연금 적립금을 은행 예·적금, 보험 등 원리금 보장형 상품 위주로 운용한 결과로 보인다.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해서는 다양한 투자 상품을 적극 활용해야 하는데, 벤처펀드에 출자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흔히 벤처펀드는 고위험 투자처라는 선입견이 많지만, 데이터가 말하는 실상은 다르다. 지난해 청산한 벤처펀드는 연 9%의 수익률(IRR)을 기록했다. 최근 5년간 수익률도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물가상승률을 크게 웃돈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국내 벤처·스타트업의 성장세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보인다.

하지만 아직 퇴직연금을 벤처펀드에 출자하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관련 법령에서 정하는 퇴직연금 운용 방법에 벤처펀드가 포함돼 있지 않을뿐더러 퇴직연금 감독규정에 따라 비상장주식 투자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적극적으로 노후 자산을 운용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미국 영국 호주 등 해외에선 퇴직연금 사용자(근로기업) 자산에 관련된 규제 외에는 별도의 운용 규제가 없다. 영국에서는 대형 퇴직연금 사업자 9곳이 2030년까지 운용 자산의 최소 5% 이상을 비상장주식에 투자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이로써 최대 500억파운드(약 87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적립금이 벤처투자에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100세 시대’를 맞아 은퇴 후 30~40년을 현역 시절에 준비한 자금으로 생활해야 하는 처지다. 이때 퇴직연금이 노후 안전망 역할을 제대로 해내려면 기존의 운용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벤처펀드와 같은 성장형 자산을 활용해 노후 자산을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할 때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개인의 노후 대비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정을 위해 퇴직연금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