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피서철 '납량'에 담긴 우리말 문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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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량은 간혹 '납양', '납냥', '남량' 등 표기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들일 납, 서늘할 량'으로 구성된 이 글자는 한글맞춤법의 두음법칙에 따라 '납량'으로 적는다. 두음법칙은 단어의 첫머리에 특정한 소리가 나타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납량’은 ‘서늘함을 느끼다’란 뜻
“복더위 찌는 날에 맑은 계곡 찾아가/ 옷 벗어 나무에 걸고 풍입송 노래하며/ 옥 같은 물에 이 한 몸 먼지 씻어냄이 어떠리.” ‘해동가요’를 펴낸 조선 영조 때 가객 김수장의 시조다. 여기 나오는 ‘풍입송(風入松)’은 고려 시대의 가요로, 태평성대를 기원하고 왕덕(王德)을 찬양하는 노래다. 김수장이 그려낸 복더위 피서법을 ‘탁족(濯足)’이라고 부른다. 한여름에 산수 좋은 곳을 찾아 계곡물에 발을 씻으며 노는 것을 가리킨다. 고을의 선비들끼리 계모임처럼 ‘탁족회(濯足會)’를 만들어 계곡으로 놀러가 시를 읊고 풍류를 즐겼다.삼복더위를 쫓기 위해 예로부터 ‘피서’와 함께 ‘납량’이란 말을 많이 썼다. ‘납량’은 ‘들일 납(納), 서늘할 량(凉)’ 자로, 글자 그대로 ‘서늘함을 들이다’란 뜻이다. 여름철에 더위를 피해 서늘한 기운을 맞는 것을 나타낸다. 서울의 지역명 ‘청량리(淸凉里)’에 이 ‘서늘할 량(凉)’ 자가 들어있다. 조선 시대만 해도 이 일대가 수목이 울창하고 맑은 샘물이 흘러 늘 맑고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고 해서 ‘맑을 청(淸)’ 자를 더해 ‘청량(淸凉)’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글자 뜻으로만 보면 ‘납량’은 더위를 피한다는 ‘피서’보다 좀 더 적극적인 의미를 담은 말임에 틀림없다. “우리 선조들은 부채를 이용해 돈이 들지 않는 납량을 즐겼다” 같은 게 이 말의 용례다. 조선 후기 풍속화가 신윤복이 그린 ‘수하납량’(樹下納凉, 나무 그늘에서 서늘함을 맞다), ‘납량만흥’(納凉漫興, 서늘함을 맞아 흥취가 절로 일어나다) 같은 그림에서도 이 말의 쓰임새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은 ‘납량’이라 하면 자칫 으스스하고 무서운 것으로 여긴다.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부분적으로 의미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아마도 2010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철만 되면 각 방송사에서 경쟁적으로 ‘납량특집’ 같은 이름으로 공포물을 내보낸 데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두음법칙·자음동화·비음화 현상 담겨
납량은 간혹 ‘납양’, ‘납냥’, ‘남량’ 등 표기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들일 납, 서늘할 량’으로 구성된 이 글자는 한글맞춤법의 두음법칙에 따라 ‘납량’으로 적는다. 두음법칙은 단어의 첫머리에 특정한 소리가 나타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한글맞춤법 제10~12항에서 여러 유형의 두음법칙을 규정하고 있다. 가령 제11항에선 한자음 ‘랴’가 단어 첫머리에 올 때는 ‘야’로 적는다고 했다. 물론 단어 첫머리가 아닌 경우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본래 음대로 ‘랴’로 적는다. ‘양심(良心)’과 ‘우량(優良)’은 그런 원칙에 따라 적은 사례다. ‘납량’ 역시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본음대로 적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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