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소년이 발랄하고 적극적인 소녀를 우연히 만난다. 서로에 대한 호기심은 사랑으로 발전한다. 이 사랑을 통해 소년은 한단계 성장한다. 로맨스 장르에서 아주 오랫동안 쓰인 클리셰로, 남자가 여자를 만난다는 뜻에서 '보이 미츠 걸 (Boy Meets Girl)'이라는 장르로 불리기도 한다.

동명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이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엄격한 어머니 아래서 자란 천재 피아노 소년 아리마 코세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혼내는 어머니에게 "죽어버려"라며 작별 인사를 한 탓에 그는 죄책감에 빠져 산다. 자기가 엄마를 죽였다는 생각에 건반에 손을 올리면 그의 머릿속은 메트로놈 소리가 찢어질 듯 울린다. 한때 천재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는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못한다.
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 뻔한 스토리도 거짓말처럼 살려낸 음악
항상 움츠러들어 있는 그를 찾아온 미야조노 카오리. 콩쿠르 대회에서도 악보를 무시하고 자기가 원하는 연주를 마음껏 펼치는 자유로운 영혼의 바이올니시스트 소녀다. 대회 순위나 남의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자유로운 그녀를 보고 코세이는 호기심 섞인 사랑을 느끼며 변해간다.

풋풋하고 달콤한 이야기지만 밋밋하다. 어리숙하고 숫기 없는 남자와 적극적이고 발랄한 여학생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 클리셰가 뻔하게 느껴진다. 밝은 줄만 알았던 여학생이 사실 큰 병을 앓고 있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운명도 너무 예측 가능한 결말이다.

인물들 간의 감정 변화와 성장 과정도 섬세하게 그려지지 않아 개연성이 부족하다. 코세이가 어머니와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 단점이 특히 드러난다. 아들에게 "너는 실패했어"라는 말을 하며 정서적으로 학대에 가까운 훈련을 시킨 이유가 사실 아들과의 이별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는 설명이 억지스럽다. 인물들의 감정이 몰입하기 어려워 대사도 딱딱하고 작위적으로 다가온다.
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 뻔한 스토리도 거짓말처럼 살려낸 음악
여러모로 원작 만화의 한계점이 보이지만 무대 경험은 놀랍다. 학교, 카페, 콩쿠르 공연장 등 배경이 시시각각으로 바뀌어 예쁘게 그려진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아름답다. 무대 뒤까지 영상을 활용해 별빛 가득한 하늘과 꽃잎이 흐드러지는 강가로 채워 몽환적인 무대가 만들어진다.
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 뻔한 스토리도 거짓말처럼 살려낸 음악
이 작품의 가장 돋보이는 장점은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 뮤지컬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아는 노래 '지금 이 순간'을 만든 이다. <웃는 남자>, <지킬 앤 하이드>, <데스노트> 등 굵직한 작품에서 음악을 맡은 프랭크 와일드혼의 작곡 능력에 감탄이 나온다. '퍼펙트'처럼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부터 청춘 만화에 딱 어울리는 청량한 합창곡까지 3시간을 빼곡히 채운다. 후반부에 이야기 전개가 더뎌지는 구간조차 와일드혼의 음악이 감동을 주기 충분하다.

원작 만화의 한계를 음악과 무대로 극복한 작품.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설득력은 부족하지만 아름답게 꾸민 무대와 청량한 선율이 그 자리를 채운다. 공연은 8월 25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