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처럼 핵무장 잠재력 갖춰야" vs "NCG 중심 억제태세 구축이 현실적"
[김귀근의 병영터치] 북핵 대응 '핵잠재력 확보'는 실적 대안인가
고도화된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한국도 유사시 신속히 핵무장을 할 수 있는 '핵잠재력'(nuclear latency)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선에서 재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한국 내 정치권과 일부 전문가들이 핵잠재력 확보 주장을 펴고 있다.

상대적으로 동맹을 경시하는 트럼프의 성향을 고려할 때 북한이 남한에 선제적 핵 공격을 가할 수 있는 핵무력 법제화에 이어 전술핵탄두까지 공개한 마당에 언제든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약 70%에 이른다는 통일연구원 여론조사 결과 등을 인용하며 그 당위성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핵잠재력이 정확히 어떤 수준 또는 능력까지를 말하는지에 대한 과학기술적 정의는 아직 없다.

다만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핵무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본처럼 유사시 신속하게 핵무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상태"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반하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이 핵잠재력을 확보하는 행동에 돌입한다면 국제사회에 핵무장 초기 조치로 인식될 뿐 아니라 핵잠재력 확보 비용 대비 효과도 낮아 매력적인 옵션이 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대표적이다.

아울러 핵물질과 투발수단, 핵기폭장치, 시설, 인력 등이 모두 핵잠재력 구성 요소에 들어가는데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한 상황에서는 '선동적 구호'일 수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안보 당국 관계자들도 핵 운용에 특화된 최초의 한미 협의체인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핵전력을 적시에 투입하는 절차와 운용 규정 등을 세밀하게 구축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더 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김귀근의 병영터치] 북핵 대응 '핵잠재력 확보'는 실적 대안인가
◇ 국회로 번진 '핵잠재력 확보' 주장…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등 선결과제 많아
그간 일부 전문가들이 제기해왔던 핵잠재력 확보 주장은 국회로까지 번졌다.

지난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 주최로 '핵잠재력 확보전략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유 의원은 핵잠재력 확보 당위성을 전파하고 관련 정책을 도출할 목적으로 '국회 무궁화포럼'도 발족했다.

포럼에 등록한 20여명의 국회의원이 각자 속한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보여 앞으로 공론화될지 주목된다.

이 토론회에서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남북한, 미·중·일·러 중 우리만 비핵국가로 남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서는 일단 우리도 일본과 같은 수준의 핵잠재력부터 시급히 확보하는 것이 현실적인 태도"라고 주장했다.

핵잠재력을 확보하려면 선행돼야 할 과제들이 많다.

먼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핵무기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핵물질은 우라늄과 플루토늄이다.

우라늄을 핵무기 원료로 쓰려면 이를 90% 이상으로 고농축해야 한다.
그러나 한미 원자력협정은 우라늄은 20% 미만까지만 협의로 농축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은 1988년 미일 원자력협정에 의해 우라늄의 20% 미만 농축을 전면 허용받았고, 당사자 합의 땐 20% 이상의 고농축도 가능하게 했다.

미국이 한국을 차별한다는 지적을 받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 내에서도 한미 원자력협정이 일본과 비교해 불평등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일본은 미국과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사용후연료 재처리를 거쳐 50t에 가까운 플루토늄을 확보했고, 2021년부터는 매년 8t의 플루토늄을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더욱이 결정만 내린다면 3∼6개월 이내에 핵실험을 실행할 모든 조건도 갖췄다고 말한다.

반면 미국은 플루토늄이 핵무기 개발에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는 금지했다.

핵무기로 전용이 불가능한 재활용 기술의 연구만 일부 허용했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미국의 협조나 묵인 없이 한국이 핵잠재력을 확보하기는 어려운 형국이라고 설명한다.

만약 미국의 협조 없이 독자적으로 핵잠재력을 확보하려 든다면 미국의 제재나 반발, 국제사회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핵 도미노 촉발' 비판 등 한국이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릴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국방부는 이와 관련, "자체 핵무장 추진은 국제사회의 다양한 제재로 국제관계나 국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면서 "특히 대한민국 안보 근간인 한미동맹 균열 우려가 있어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핵무기 3대 요소인 핵물질 확보 어려움 외에도 재처리 시설 건설, 40년 이상 중단된 핵기폭장치 개발 등도 문제다.

대규모 재처리 시설을 만드는 데에만 6개월∼1년 이상의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한다.

100만분의 1초까지 타이밍을 맞추는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핵기폭장치 연구는 1970년대 비밀리 추진했던 핵 개발 당시 진행되긴 했지만, 이 계획이 좌절된 이후 40년 이상 중단됐다.

[김귀근의 병영터치] 북핵 대응 '핵잠재력 확보'는 실적 대안인가
◇ 국방부 "NCG 통한 확장억제 협력 강화가 바람직"
국방부는 핵잠재력 확보 주장에 대해 "일각에서 제기되는 자체 핵무장 여론을 잘 알고 있다"면서 "워싱턴 선언에 따라 출범한 NCG를 통해 한미간 확장억제 협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KIDA 함형필 책임연구위원도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현행 NCG 중심의 한미 확장억제 협력을 통해 강력한 대북억제 태세를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비용 대비 효과,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이상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작년 7월부터 가동된 NCG는 지난달 3차 회의에 이어 11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간 워싱턴DC 정상회담에서 '한미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에 관한 공동성명' 채택으로 이어지는 등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 위기 및 유사시 핵 협의 절차 ▲ 핵 및 전략기획 ▲ 한미 핵·재래식 통합을 통한 유사시 미국 핵 작전에 대한 한국 재래식 지원 ▲ 연습·시뮬레이션·훈련·투자 활동 등을 포함하는 NCG 과업의 신속한 진전을 계속 이뤄나가자고 합의했다.

대통령실은 한미가 함께하는 '일체형 확장억제 시스템'이 구축됐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핵전력과 한국의 첨단 재래식 전력이 일체형으로 통합된 작전을 펼쳐 북핵에 대응하는 핵억제 및 핵작전 지침이 완성됐다는 것이다.

국방부도 "자체 핵무장이나 미국의 핵무기 재배치 없이도 북핵 위협을 실질적으로 억제 대응할 수 있는 동맹의 핵·재래식 통합기반 체계가 확립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