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2024 발레스타즈’에 출연한 발레리노 전민철(위)이 ‘바흐모음곡’에서 이윤주(아래)가 보고 있는 가운데 도약하고 있다.   BAKI 제공
지난 13일 ‘2024 발레스타즈’에 출연한 발레리노 전민철(위)이 ‘바흐모음곡’에서 이윤주(아래)가 보고 있는 가운데 도약하고 있다. BAKI 제공
지난 13일. 경기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2024 발레스타즈’. 무대 오른쪽 뒤편에서부터 왼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턴을 하며 달려 나오는 젊은 발레리노에게 관객들은 박수와 탄성을 쏟아냈다. 한 시대를 이끌어갈 천재 무용수에게 보내는 찬사였다. 그의 이름은 전민철(20). 세계 정상으로 평가받는 마린스키 발레단에 내년 입단이 확정된 샛별이다. 마린스키는 군무 단원이 아니라 솔리스트로 전민철을 선택했다.

전민철은 발레스타즈에서 여러 가지 모습을 선보이며 발레 팬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피날레 무대에서는 분위기를 전환해 서정적인 ‘백조의 호수’ 파드되(2인무)를 잠깐 보여줬는데도 애수가 어린 ‘전막’의 감동이 전해졌다. 늘씬한 체형과 기다란 팔다리 그리고 작은 얼굴은 그의 동작을 더욱 아름답게 연출했다.

올해 발레스타즈는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고 있는 ‘라이징 스타’들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요정과 인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라 실피드’에서 공기 요정을 맡은 발레리나 이예은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공연의 첫 무대를 맡은 이예은은 손끝, 발끝까지 공기 속을 누비는 요정의 표상 그 자체였다. 달 위를 유영하는 듯한 그의 발걸음은 어떠한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지난 4일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입단시험에서 1등을 하며 입단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이번 무대에는 해외에서 꾸준히 활약해온 무용수들도 대거 출연했다. 바쁜 공연 스케줄 탓에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발레스타즈 무대에서 유감없이 공력을 발휘했다. 폴란드국립발레단의 발레리나 정재은과 발레리노 기타이 료타는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파드되를 선보였다. 대중에 잘 알려진 케네스 맥밀런이나 매슈 본의 느낌과는 조금 다른 안무였는데 이들이 몸담은 발레단의 예술감독이 재안무한 버전이다. 실제 연인이기도 한 두 무용수는 수줍었다가 격정적으로 변하는 사랑의 감정선을 객석에 고스란히 전달했다. 현대 발레의 파격적 동작이 무용수들의 표현력으로 인해 더 우아해 보였다.

발레리나들은 공기 요정(라 실피드)이거나 사탕 요정(호두까기인형), 죽어가는 백조(빈사의 백조), 위트 있고 재치 있는 캐릭터(발레102, 얼마나 내가 널 사랑하는지 알지), 비운의 여인(지젤, 줄리엣) 등 다양한 모습을 객석에 보여주며 갈라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작품마다 2시간 정도 소요되는 전막 발레와 달리 갈라 무대는 작품의 정수라고 불리는 일부 무대를 여러 개 가져와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갈라 특성상 모든 무대가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기 어렵고 등장하는 무용수도 많은 데다 관객의 취향도 제각각이라 공연을 기획하는 시점부터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2024 발레스타즈는 역대급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티켓은 일찍이 매진됐고 당일 취소표를 구하기 위한 행렬로 로비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날 공연은 젊은 무용수들 특유의 역동성과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고 어느 무대 하나 뒤처짐이 없었다. 무용수들은 독보적 개성과 출중한 실력으로 매진은 당연했다는 것을 제대로 입증했다. 천재 무용수들이 선사한 90분에 관객은 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만족감을 보였다.

이날 주인공은 무용수뿐만이 아니었다. 디토 오케스트라도 큰 역할을 했다. 보통 갈라콘서트에서는 녹음 반주를 많이 활용하는데 이번 공연은 오케스트라가 라이브 음악을 담당했다. 2022년부터 서울 강동문화재단 상주단체가 된 이들은 무대 위 무용수들과 교감하며 그들의 발걸음에 박자를 맞춰 생동감을 전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