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수익 과세는 문재인 정부 시절 관련 세법이 국회를 통과해 2021년 10월부터 이뤄질 예정이었다. 이듬해 대선 일정을 고려해 시행 시점을 2023년 1월로 한 차례 연기한 이후 윤석열 정부 들어 또 한 번 2025년 1월로 미뤘다. 매번 ‘암호화폐 투자자의 부담과 시장 혼란이 우려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여당안대로 과세를 또다시 유예하면 암호화폐 수익에 대한 소득세 부과는 세 차례에 걸쳐 6년 이상 늦춰지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조세 정책이 납세 당사자들의 여론에 지나치게 휘둘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연기된 암호화폐 과세…금투세와 보조 맞추나

‘과세 유예’ 힘 얻는 이유는

지난 5월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는 작년 말 기준 645만 명에 이른다. 30대가 189만 명, 40대는 186만 명으로 여론 주도력이 높은 30·40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정치권이 암호화폐 투자자들에게 신경을 쓰는 이유다.

최근 비트코인 등의 가격이 떨어지면서 암호화폐 과세에 대한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암호화폐 시장 관계자는 “3월만 해도 20조원대에 이르던 국내 거래소의 암호화폐 하루 거래량이 최근 2조원대로 급감했다”며 “암호화폐 수익 과세가 내년 초 시작되면 대다수 투자자가 떠나며 거래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년 초 시행할 예정이던 금융투자소득세 역시 유예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점도 이유다. 정부가 폐지 입장을 밝힌 금투세는 이달 10일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시행 시기 문제를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고 발언한 이후 시행 연기가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금투세 부과가 유예된 가운데 암호화폐 과세를 예정대로 하면 투자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시스템과 제도적 준비가 부족해 본격적인 과세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암호화폐를 분류하고, 업계 내에서 업종을 세부적으로 규정하는 등 2차 입법이 이뤄져야 무리 없이 세금을 매길 수 있다”며 “아직 제도적 정비가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지금이 시행 적기” 반론도

다만 여기에는 반론도 많다. 제도 및 시스템 정비가 부족하다는 주장에 정치권 관계자는 “벌써 두 차례에 걸쳐 시행을 유예하며 3년여의 준비 시간이 있었다”며 “다시 한번 과세를 미루자며 ‘준비 부족’을 내세우는 건 정부가 필요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여론과 시장 상황에 밀려 암호화폐 과세를 유예하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온다. 지금과 같은 논리라면 과세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송언석 기획재정위원장의 안대로 3년 유예되면 2028년 1월부터 부과가 이뤄진다. 하지만 그해 4월에는 총선이 치러진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또 과세 유예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거듭된 유예로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 원칙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가장 가까운 주요 선거(2026년 지방선거)까지 시간 여유가 있는 내년 초가 시행 적기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내년도 세법 개정안을 이달 말 발표하며 관련 입장을 확정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7일 “세법 개정안을 마련할 때까지 시간이 있어 검토 중이라는 말씀만 드릴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도 정부안 발표 이후 과세 유예 동의 여부를 명확히 할 예정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