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유세 중 총격 피습 사태에 국내 정치권도 14일 동요했다. 총선을 앞두고 펼쳐진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테러의 충격을 경험한 직후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 등 여러 나라 정치에서 ‘팬덤 정치’와 ‘혐오 정치’가 극성을 부리면서 반대 진영을 향한 테러는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팬덤정치·극단주의에 오염되는 선거…韓도 '정치테러' 무방비 노출

올해만 정치인 피습 두 건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총격 사태를 본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 전 대표를 향한 ‘칼’이 ‘총’으로 바뀌었을 뿐 양상과 원인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1월 부산 가덕도신공항 건설현장 부지에서 지지자들과 만나던 도중 60대 남성에게 피습당했다. 당시 습격범은 20~30㎝ 길이 흉기로 이 전 대표 목 부위를 공격했다. 이 전 대표는 피를 흘린 채 쓰러졌고 2시간가량 수술받았다. 같은 달 배 의원은 서울 청담동 거리에서 10대 남성에게 돌덩이로 여러 차례 머리를 맞아 쓰려졌다. 괴한은 “배현진 의원이시죠”라고 두 차례 물은 뒤 공격을 시도했다.

두 정치인은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고, 같은 당 지지자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만큼 반대 진영 지지자들로부터는 강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도 비슷한 점을 공유한다는 분석이다.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주요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한국 정치권에서도 이미 드물지 않다. 2006년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커터칼 공격’을 당하고, 2022년 대선 직전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머리를 가격당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올해 총선에서는 두 건의 테러가 나타나며 훨씬 빈번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팬덤·혐오 정치가 테러 부추겨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 심해진 정치적 극단주의와 팬덤 정치 등이 정치 테러 위험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지자들이 양극단으로 나뉘면서 상대 진영을 향한 반감이 투표 행위나 단순 비판을 넘어 물리적 폭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세계적으로 분노 정치와 증오 정치에 대한 정치인의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한국도 팬덤 정치 등을 이용하는 정치인이 크게 늘고 있다”며 “그런 것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소셜미디어 발달에 따라 자신의 견해와 신념만 옳다고 여기는 ‘확증편향’ 현상이 강해진 것도 정치 테러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SNS가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한다고 하지만, 결국 자신이 공유하는 가치를 자신들의 진영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중간 여론을 수렴하는 게 아니라 팬덤 정치가 더 크게 발휘되면서 정치 테러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야, 한목소리로 규탄

여야도 이번 피습을 두고 규탄과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호준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에서 “정치 테러는 극단 정치와 혐오 정치의 산물”이라며 “정치인들은 이해와 화합으로 사회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가 있다”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우리나라에서도 극단적 진영 대립 속에 혐오와 언어폭력 강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우리 정치도 ‘민주주의의 적’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때”라고 적었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정치 테러는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며,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고 절대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민주당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정치 테러를 강력히 규탄하며 증오 정치 근절을 위해 앞장서겠다”고 했다.

양길성/정상원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