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세 피아니스트 부흐빈더의 베토벤은 온화하고 자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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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부흐빈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 리뷰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와의 완벽한 앙상블
자연스러움과 노련함이 빚어낸 베토벤 해석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와의 완벽한 앙상블
자연스러움과 노련함이 빚어낸 베토벤 해석
루돌프 부흐빈더의 첫 내한은 2021년이었다.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며 “살아있는 베토벤의 연주”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때부터 애호가들 사이에 부흐빈더의 베토벤 연주가 탁월하다는 입소문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2013년 내한 때 선보였던 슈베르트, 베토벤, 쇼팽은 물과 같이 자연스러운 연주였다. 거기엔 잔잔한 호수도 가랑비와 뇌우도, 거센 파도도 있었다. 움켜쥐면 투명하고 맑아 마실 수 있는 샘물로 기억되는 인상적인 연주회였다.
미소 띤 베토벤의 격려
부흐빈더는 작년 서울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연주를 선보인 데 이어 올해 아홉 번째 내한해 지난 6월 26일과 30일 이틀간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연주했다. 악장이자 예술감독인 다니엘 도즈가 리드하는 41명 규모의 체임버 오케스트라인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가 함께했다. 공연 첫날, 78세의 피아니스트 부흐빈더는 부드러운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 등장했다. 첫곡인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부터 엄격하고 고난을 이겨낸 악성 베토벤보다 훨씬 온화하고 누그러지고 지혜로운 이미지가 부흐빈더의 베토벤 해석을 상징하는 듯했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시작됐다. 부흐빈더가 보여준 잔잔한 미소처럼 자애로운 베토벤이 이어졌다. 그의 타건이 의외로 또랑또랑하게 잘 들려 놀랐다. 지휘와 협연을 겸한다고 했지만 중요한 굵은 화두만 던져주는 식이었다. 나머지는 다니엘 도즈의 끊임없는 역동적인 리드에 맡겼다. 이를 따르는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의 연주는 자발적이고 발랄하면서도 베토벤의 숭고함을 위해 어느 정도 톤 다운을 하는데도 익숙한 듯했다.
2악장에서도 건반을 비춘 빛이 반사하는 듯한 맑고 깨끗한 타건을 들려주며 오케스트라의 두툼한 반주와 대조를 이뤄냈다. 단원 한 명 한 명은 개성을 지닌 듯한데 자율적으로 하나의 목표를 항해 파도를 넘는 서퍼들처럼 서로를 들으며 실내악적인 앙상블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무곡을 추듯 신나게 달려나가는 3악장에서도 갑자기 옷깃을 여미는 듯 멈추고 부흐빈더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주고받는 부분은 베토벤 음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의 순간 중 하나였다. 2부에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다섯 곡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가장 사랑받고 연주도 자주 되는 작품이다. 부흐빈더의 연주는 엄숙한 첫인상이나 그에 따른 매너리즘을 느낄 수 없었다. 당당하고 힘찬 베토벤적인 성격과 반짝이는 미소 같은 부흐빈더적인 성격이 만난 독특한 경험이었다. 대가는 힘을 뺀다고 했던가. 악단 총주의 그윽하면서도 일사불란한 성격과 부흐빈더의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때로는 그냥 놔두는 듯한 ‘놓음’의 경지가 만나 절경을 이루었다.
특히 2악장은 베토벤의 일생을 다룬 영화 ‘불멸의 연인’ 마지막 장면에서 나와 유명하다. 베토벤의 연인으로 밝혀진 요한나가 눈물을 흘리며 베토벤의 편지를 읽는데 이 장면에 ‘황제’ 2악장의 멜로디가 깔린다. 가슴이 아릴 정도로 아름답고 로맨틱한 멜로디인데 부흐빈더는 지나친 감정의 이입을 의도적으로 피하면서 곡을 늠름하면서도 여유 있게 유지했다. 로맨틱한 2악장에서 빠르고 씩씩한 3악장으로 넘어가는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피아노가 천천히 3악장 주제 선율의 첫 부분을 연주하고 대 승천을 예고하는 듯하더니 드디어 폭발하며 3악장을 시작한다. 이는 빗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다 갑자기 소나기를 맞는 듯 시원했다.
노련함으로 베토벤의 다양한 얼굴 그려
30일 같은 장소에서 부흐빈더와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 4번, 3번을 봤다. 첫곡인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 부흐빈더의 피아노와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는 협연자와 오케스트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실내악적 앙상블을 이루며 날렵하고 매끄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부흐빈더의 연주는 ‘자연스런 노련함’을 떠올리게 했다. 곡을 흘러가도록 유지하면서 때로는 반짝이도록 매끄러운 기교를 제대로 발휘했다. 베토벤 해석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작곡가와 연주가의 거리 설정이다. 욕망과 절제, 쾌락과 제의, 강렬함과 이완의 거리를 얼마나 두느냐,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유지하느냐에 타당성 있는 베토벤 연주가 결정된다. 많은 연주자들이 이에 실패하며 때로는 쇼팽 같은 베토벤이나 미니멀하고 단조로운 베토벤이 되기도 한다. 요컨대 인생처럼 다면체인 곡의 어느 부분을 부각하느냐인데, 부흐빈더의 해석에는 60년 가까이 축적된 수많은 데이터로 인한 취사선택이 있었다.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나니 자연스런 연주가 남는 셈이다. 다음으로 연주된 협주곡 4번 역시 베토벤 하면 연상되는 엄격함이나 최근의 원전연주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었다. 베토벤 그 자체같은 부흐빈더의 너그러운, ‘제2의 청춘’ 같은 매끄러운 기교에 방점이 찍혔다. 피아노로 시작하는 혁명적인 부분에서 베토벤의 고독이 그윽하게 투사되었고 관현악과 어우러지는 부분은 화사했다. 이 곡의 2악장은 이날 연주 중 가장 돋보였다. 테베의 왕비 니오베의 운명을 묘사했다고도 하는, 처절하면서 잡을 수 없고, 슬프면서 아름다운 숙명이 건반 끝에서 서럽게 반짝였다.
양일간 대장정의 막을 내리는 곡은 협주곡 3번이었다. 요즘은 이 3번의 인기가 5번과 4번 못지않게 높은 듯하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중 유일한 단조곡이자 베토벤의 시그니처인 C단조로 작곡됐다. 비극과 투쟁을 통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베토벤의 모토가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는 곡이어서인지 시작 부분부터 질풍노도 같은 분위기가 베토벤의 모습을 한 차례 환기시킨 뒤 연주가 진행됐다. 1악장은 세상에 대한 개인의 투쟁 같으면서도 어쩌면 부흐빈더가 자신이 걸어온 길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들려주는 듯한 자연스러움도 함께했다. 장조와 구분되는 오케스트라의 단조 연주도 엄혹한 한기가 아닌 피아노의 따스함과 투명함을 더욱 돋보이게 해줬다. 언덕길을 따라 굴러 떨어지는 운명 같은 진지한 피날레도 멋졌다.
바람 부는 언덕에 서서 인생을 사색하는 듯한 2악장을 부흐빈더와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는 비교적 가벼운 터치로 넘기며 곡에 힘이 너무 들어가는 것을 피했다. 3악장 론도 알레그로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주고받는 음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재치와 진지함, 위엄과 세속적인 아름다움을 모두 만끽하게 해주는 부흐빈더는 역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믿고 듣는 베토베니언이었다. 전 5곡 통틀어 부흐빈더의 기교는 청년 같을 때도, 백전노장 같을 때도 있었다. 그 양면적인 긴장감이 실황을 보는 맛을 더해주었다고 본다. 분명한 건 부흐빈더의 베토벤은 명불허전이었다는 점이다. 글렌 굴드의 바흐, 미츠코 우치다의 모차르트, 알프레트 브렌델의 슈베르트와 같은 전문성이 뚜렷했다. 78세의 피아니스트 부흐빈더는 여전했다. 그는 베토벤이라는 엄격하고 어려운 틀 안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연주자였다. 부흐빈더의 손끝에서 베토벤의 음악은 결코 낡지 않고 새롭게 태어난다. 그리고 듣는 이에게 고통과 좌절을 넘어, 터널을 통과해 빛으로 나아가는 스토리텔링을 선사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인생에서 더 나은 순간을 향해 가라고 등을 토닥여준다. 그러한 베토벤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부흐빈더의 연주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편곡판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곡의 숭고함과 듣는 이에게 주는 에너지가 다섯 곡의 피아노 협주곡보다 못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 칼럼니스트)
미소 띤 베토벤의 격려
부흐빈더는 작년 서울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연주를 선보인 데 이어 올해 아홉 번째 내한해 지난 6월 26일과 30일 이틀간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연주했다. 악장이자 예술감독인 다니엘 도즈가 리드하는 41명 규모의 체임버 오케스트라인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가 함께했다. 공연 첫날, 78세의 피아니스트 부흐빈더는 부드러운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 등장했다. 첫곡인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부터 엄격하고 고난을 이겨낸 악성 베토벤보다 훨씬 온화하고 누그러지고 지혜로운 이미지가 부흐빈더의 베토벤 해석을 상징하는 듯했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시작됐다. 부흐빈더가 보여준 잔잔한 미소처럼 자애로운 베토벤이 이어졌다. 그의 타건이 의외로 또랑또랑하게 잘 들려 놀랐다. 지휘와 협연을 겸한다고 했지만 중요한 굵은 화두만 던져주는 식이었다. 나머지는 다니엘 도즈의 끊임없는 역동적인 리드에 맡겼다. 이를 따르는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의 연주는 자발적이고 발랄하면서도 베토벤의 숭고함을 위해 어느 정도 톤 다운을 하는데도 익숙한 듯했다.
2악장에서도 건반을 비춘 빛이 반사하는 듯한 맑고 깨끗한 타건을 들려주며 오케스트라의 두툼한 반주와 대조를 이뤄냈다. 단원 한 명 한 명은 개성을 지닌 듯한데 자율적으로 하나의 목표를 항해 파도를 넘는 서퍼들처럼 서로를 들으며 실내악적인 앙상블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무곡을 추듯 신나게 달려나가는 3악장에서도 갑자기 옷깃을 여미는 듯 멈추고 부흐빈더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주고받는 부분은 베토벤 음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의 순간 중 하나였다. 2부에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다섯 곡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가장 사랑받고 연주도 자주 되는 작품이다. 부흐빈더의 연주는 엄숙한 첫인상이나 그에 따른 매너리즘을 느낄 수 없었다. 당당하고 힘찬 베토벤적인 성격과 반짝이는 미소 같은 부흐빈더적인 성격이 만난 독특한 경험이었다. 대가는 힘을 뺀다고 했던가. 악단 총주의 그윽하면서도 일사불란한 성격과 부흐빈더의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때로는 그냥 놔두는 듯한 ‘놓음’의 경지가 만나 절경을 이루었다.
특히 2악장은 베토벤의 일생을 다룬 영화 ‘불멸의 연인’ 마지막 장면에서 나와 유명하다. 베토벤의 연인으로 밝혀진 요한나가 눈물을 흘리며 베토벤의 편지를 읽는데 이 장면에 ‘황제’ 2악장의 멜로디가 깔린다. 가슴이 아릴 정도로 아름답고 로맨틱한 멜로디인데 부흐빈더는 지나친 감정의 이입을 의도적으로 피하면서 곡을 늠름하면서도 여유 있게 유지했다. 로맨틱한 2악장에서 빠르고 씩씩한 3악장으로 넘어가는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피아노가 천천히 3악장 주제 선율의 첫 부분을 연주하고 대 승천을 예고하는 듯하더니 드디어 폭발하며 3악장을 시작한다. 이는 빗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다 갑자기 소나기를 맞는 듯 시원했다.
노련함으로 베토벤의 다양한 얼굴 그려
30일 같은 장소에서 부흐빈더와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 4번, 3번을 봤다. 첫곡인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 부흐빈더의 피아노와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는 협연자와 오케스트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실내악적 앙상블을 이루며 날렵하고 매끄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부흐빈더의 연주는 ‘자연스런 노련함’을 떠올리게 했다. 곡을 흘러가도록 유지하면서 때로는 반짝이도록 매끄러운 기교를 제대로 발휘했다. 베토벤 해석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작곡가와 연주가의 거리 설정이다. 욕망과 절제, 쾌락과 제의, 강렬함과 이완의 거리를 얼마나 두느냐,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유지하느냐에 타당성 있는 베토벤 연주가 결정된다. 많은 연주자들이 이에 실패하며 때로는 쇼팽 같은 베토벤이나 미니멀하고 단조로운 베토벤이 되기도 한다. 요컨대 인생처럼 다면체인 곡의 어느 부분을 부각하느냐인데, 부흐빈더의 해석에는 60년 가까이 축적된 수많은 데이터로 인한 취사선택이 있었다.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나니 자연스런 연주가 남는 셈이다. 다음으로 연주된 협주곡 4번 역시 베토벤 하면 연상되는 엄격함이나 최근의 원전연주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었다. 베토벤 그 자체같은 부흐빈더의 너그러운, ‘제2의 청춘’ 같은 매끄러운 기교에 방점이 찍혔다. 피아노로 시작하는 혁명적인 부분에서 베토벤의 고독이 그윽하게 투사되었고 관현악과 어우러지는 부분은 화사했다. 이 곡의 2악장은 이날 연주 중 가장 돋보였다. 테베의 왕비 니오베의 운명을 묘사했다고도 하는, 처절하면서 잡을 수 없고, 슬프면서 아름다운 숙명이 건반 끝에서 서럽게 반짝였다.
양일간 대장정의 막을 내리는 곡은 협주곡 3번이었다. 요즘은 이 3번의 인기가 5번과 4번 못지않게 높은 듯하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중 유일한 단조곡이자 베토벤의 시그니처인 C단조로 작곡됐다. 비극과 투쟁을 통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베토벤의 모토가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는 곡이어서인지 시작 부분부터 질풍노도 같은 분위기가 베토벤의 모습을 한 차례 환기시킨 뒤 연주가 진행됐다. 1악장은 세상에 대한 개인의 투쟁 같으면서도 어쩌면 부흐빈더가 자신이 걸어온 길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들려주는 듯한 자연스러움도 함께했다. 장조와 구분되는 오케스트라의 단조 연주도 엄혹한 한기가 아닌 피아노의 따스함과 투명함을 더욱 돋보이게 해줬다. 언덕길을 따라 굴러 떨어지는 운명 같은 진지한 피날레도 멋졌다.
바람 부는 언덕에 서서 인생을 사색하는 듯한 2악장을 부흐빈더와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는 비교적 가벼운 터치로 넘기며 곡에 힘이 너무 들어가는 것을 피했다. 3악장 론도 알레그로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주고받는 음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재치와 진지함, 위엄과 세속적인 아름다움을 모두 만끽하게 해주는 부흐빈더는 역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믿고 듣는 베토베니언이었다. 전 5곡 통틀어 부흐빈더의 기교는 청년 같을 때도, 백전노장 같을 때도 있었다. 그 양면적인 긴장감이 실황을 보는 맛을 더해주었다고 본다. 분명한 건 부흐빈더의 베토벤은 명불허전이었다는 점이다. 글렌 굴드의 바흐, 미츠코 우치다의 모차르트, 알프레트 브렌델의 슈베르트와 같은 전문성이 뚜렷했다. 78세의 피아니스트 부흐빈더는 여전했다. 그는 베토벤이라는 엄격하고 어려운 틀 안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연주자였다. 부흐빈더의 손끝에서 베토벤의 음악은 결코 낡지 않고 새롭게 태어난다. 그리고 듣는 이에게 고통과 좌절을 넘어, 터널을 통과해 빛으로 나아가는 스토리텔링을 선사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인생에서 더 나은 순간을 향해 가라고 등을 토닥여준다. 그러한 베토벤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부흐빈더의 연주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편곡판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곡의 숭고함과 듣는 이에게 주는 에너지가 다섯 곡의 피아노 협주곡보다 못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