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통에 빠진 英첩보원들! 느려터진 말이 잘도 달린다, 우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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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동진의 아웃 오브 넷플릭스
애플TV+ '슬로 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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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첩보 조직 MI5(국내 안보 책임 정보국, MI6는 해외 첩보국. 제임스 본드는 MI6 소속, MI5가 아니다. 둘 다 내무상의 지휘를 받는다.)의 외곽 변방조직 슬라우 하우스(slough house : 똥통 부서)의 지부장 잭슨 램(게리 올드만)의 사무실은 반드시 창문이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심지어 그를 심문하려면 취조실에도 창문이 있어야 한다. 그는 줄곧 방귀를 뀌는데 그 냄새가 보통 지독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잭슨 램은 자신이 부하들을 슬로 호시스, 느려 터진 말들이라 부른다. 근데 그건 잭슨 램까지 포함해 본부에서 슬라우 하우스 전체를 부르는 호칭이다. 슬로 호시스. 한 마디로 낙오자들이라는 의미이다. 이들에게는 일 다운 일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루종일 몇 년 치 주차 위반 딱지나 들여다보게 하거나 지부 사무실 밑에 있는 중국집에 점원 중 누군가가 바뀌었다면 그 뒤를 알아봐서-만약 그가 불법체류자이면 그 사실로 은근히 압력을 가해-잭슨 램 부장이 적어도 다섯 끼는 공짜로 먹을 수 있게 하는, 사찰 아닌 사찰 업무만을 하게 할 뿐이다. 램 부장은 그걸 얻어먹고 또 방귀를 뀐다. 뿌웅. 잭슨 램 밑에는 사고뭉치 전력자들만이 모여 있다. 리비 카트라이트(잭 로던)는 최근에 좌천됐다. 열혈 첩보원이지만 가상훈련에서 수백명의 폭탄 희생자를 만들어 낸 벌이다. 그는 램 부장의 지시에 따라 한 극우 언론인의 뒤를 캔다. 사실 뒤까지는 캐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다. 고작 그의 집 쓰레기를 가져 와 뒤지는 일을 하게 한다. 뭘 찾으라고도 얘기하지 않는다. 리비와 같은 사무실을 쓰는 젊은 여성 첩보원 시드 베이커(올리비아 쿡)의 전입 사유는 다소 불분명해 보인다. 아마도 본부를 지휘하는, 뱀 같은 두뇌를 지닌, 부국장 다이애나 터버너(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의 지령에 따라 잭슨 램 지부장을 염탐 중인 것으로 보인다. 램은 이 사실을 아는 척 모르는 척 그녀에게 자신의 역정보를 흘리는 것으로 보인다. 잭슨 램 부장의 개인 비서는 캐서린 스탠디시(시스키아 리브스)이다. 그녀의 죽은 남편은 과거 잭슨 램의 동료 첩보원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총을 입에 물고 자살했으며 램은 스탠디시의 반역죄를 덮기 위해 자기 비서로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해커 전력의 로디 호(크리스토퍼 청)가 있고 민 하퍼나 루이자 가이 , 스트루언 로이, 제드 무디 같은 동료 ‘낙오자’들의 일상이 겹쳐진다. ‘슬로우 하우스’는 기본적으로 1975년 시드니 폴락이 만든 매력적이고 섹시하며(이건 순전히 주연배우인 로버트 레드포드와 페이 더너웨이 때문이다) 우울하면서도 빼어난데다 우아하기까지 한(이것 역시 순전히 주연배우 둘 때문이다) 영화 ‘코드 네임 콘돌, Three Days of the Condor’의 상황 설정을 따라간다. ‘코드 네임 콘돌’의 등장인물들은 아메리칸 문학사 협회 사무국 직원들이다. 이들은 하루종일 국내외에서 나온 온갖 출판물들을 읽고 여기에 나오는 음모론을 정리해 위에 보고한다. 아메리칸 문학사 협회는 미 CIA의 외곽조직이며 첩보원들이 밀려난 변방 조직이다.
요원 명(名)이 콘돌인 주인공 조셉 터너(로버트 레드포드)는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와 같은 느리고 심드렁한 출근길에서 직원들 전부가 괴한들에 의해 잔혹하게 사살된 것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자신이 죽지 않은 이유는 그날따라 지각을 한 것이고 이 모든 학살이 자신을 찾아 사살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된다. CIA 윗선은 터너가 협회 활동으로 보고한 음모이론의 무엇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고 차제에 하부 조직 하나쯤 완전히 정리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건 하찮은 요원 모두를 제거하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음모의 핵심 비밀을 지키는 일이라고 판단한다. ‘슬로 호시스’도 결국은 내부의 스파이, 내부의 적을 찾고 그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이다. 슬로 호시스 시즌1은 극우 세력 집단 중 하나인 ‘엘비라의 자식들(왜 극우 집단의 이름에 엘비라 마디간의 이름이 사용되었는지는 풀지 못했다.)’에게 납치된 이슬람 청년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이슬람 청년은 납치범들에게 곧 참수당할 참이다. 이 사건이 이상한 계기로 슬라우 하우스 지부와 얽히게 된다. 젊은 남녀 요원 리비 카트라이트와 시드 베이커가 극우 언론인 집을 수색하러 들어갔다가 누군가에게 불의의 습격을 받고 그 과정에서 시드가 머리에 총을 맞고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그런데 이 일은 결국 잭슨 램을 포함해 슬로 호시스들 모두를 정리하려는 윗선의 조작과 음모로 진행이 된다. 이슬람 청년의 목숨과 잭슨 램 지부장이 슬라우 하우스와 자신의 슬로 호시스를 지켜내는 일은 이제 한 몸이 된다. 숨가쁜 추격전이 이어진다. ‘슬로 호시스’는 영국 드라마이다. 6부작이다. 첩보 스릴러에 관한 한 미국은, 아니 그 어느 나라건 영국을 따라갈 수가 없다. 영국에는 적어도 이언 플레밍(007 작가)과 존 르 카레가 있었기 때문이다. 존 르 카레를 따라갈 수 있는 첩보 이야기의 산실은 그 어느 나라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영국에서 오죽하면 그에게 경(卿, Sir)을 사사했겠는가. ‘슬로 호시스’의 주인공 잭슨 램의 캐릭터는 존 르 카레의 얼터 에고인 조지 스마일리에서 가져온 셈이다. 물론 외모와 생김생김은 전혀 다르다. 스마일리는 깔끔하다. 램은 늘 구멍 뚫린 양말에 구겨진 와이셔츠, 비뚤게 맨 넥타이 차림이다. 스마일리는 깔끔한 영국 신사이다. 둘의 공통점이라곤 비상한 머리를 지니고 늘 앞일을 몇 수 앞서서 내다 볼 줄 안다는 것뿐이다. 예컨대 본부 요원들이 자신과 비서인 캐서린을 체포하러 오고 있는 것을 아는 램은 총을 캐서린의 핸드백에 숨기고 자신만 몸수색을 당한다. 자신을 아는 수사 책임자가 늙은 여자인 캐서린까지 뒤지지는 않을 것이고 자신이 뭐라 하면 그러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둘은 그 총을 이용해 탈주에 성공하고 그다음 계획을 이행하기까지의 시간을 번다. 이런 식이다.
잭슨 램의 캐릭터는 조지 스마일리와 외모가 아주 다르지만, 이정도까지는 추측할 수 있다. 깔끔한 인생을 살았던 조지 스마일리 같았던 램이 어느 날 충격적인 사건을 겪는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동료 14명을 순식간에 잃었고 그 명단을 누군가 유출했는데 그게 자신의 오랜 친구였을 수도 있어서 그를 직접 처단했고 그래서 그는 인생의 빛을 잃었다. 첩보원 직을 그만둘 수도 없지만 계속 할 수도 없어서 아무도 찾지 않은 부서를 스스로 택한 후 씻지도 않고 술과 담배에 쩔어서 살게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조지 스마일리 같은 인물이 결국 잭슨 램 같은 인물이 된 것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슬로 호시스’의 원작 소설을 쓴 믹 헤론은 잭슨 램의 캐릭터를 나락한 조지 스마일리에서 가져왔을 것이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어쨌든 이 작가는 존 르 카레에게 자기 나름대로의 존경과 헌사를 바치고 있는 셈이다. 존 르 카레 작품을 가장 올바로 해석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 수 있는 감독은 한국의 박찬욱이다. 그가 만든 ‘리틀 드러머 걸’은 완벽한 존 르 카레 해석서였다. 존 르 카레의 세계는 조지 스마일리 3부작, 예컨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같은 작품(덴마크 토마스 알프레드손 감독이 2011년에 영화로 만들었으며 여기에서 조지 스마일리 역이 바로 게리 올드만이다!)을 읽거나 보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슬로 호시스’는 뛰어난 작품이다. 재미도 철철 넘친다. 위트와 유머의 지적 수준이 높다. 왜 이 드라마가 시즌5까지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슬로 호시스’는 첩보의 세계가 냉엄한 척, 사실은 우리들의 인생사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준다. 우리도 조직 생활에서 밀리면 언제든지 슬로 호시스가 될 수 있는 처지들이다. 첩보 조직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 냉혹하고 쌀쌀맞기 이를 데 없는 자본주의하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진짜 문제이다. ‘슬로 호시스’는 바로 그런 얘기를 하고있는 작품이다. 그러니 모두 이 두 가지는 지켜야 한다. '모스크바 규칙. 뒤를 조심할 것. 런던 규칙. 늘 몸을 숨길 것.' 조직 생활과 사회생활에 있어 이건 매우 중요한 처세일 것이다. 늘 뒤를 조심하고 몸을 숨기라. 그래야 산다. ‘슬로 하우스’가 던지는 삶의 테제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잭슨 램은 자신이 부하들을 슬로 호시스, 느려 터진 말들이라 부른다. 근데 그건 잭슨 램까지 포함해 본부에서 슬라우 하우스 전체를 부르는 호칭이다. 슬로 호시스. 한 마디로 낙오자들이라는 의미이다. 이들에게는 일 다운 일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루종일 몇 년 치 주차 위반 딱지나 들여다보게 하거나 지부 사무실 밑에 있는 중국집에 점원 중 누군가가 바뀌었다면 그 뒤를 알아봐서-만약 그가 불법체류자이면 그 사실로 은근히 압력을 가해-잭슨 램 부장이 적어도 다섯 끼는 공짜로 먹을 수 있게 하는, 사찰 아닌 사찰 업무만을 하게 할 뿐이다. 램 부장은 그걸 얻어먹고 또 방귀를 뀐다. 뿌웅. 잭슨 램 밑에는 사고뭉치 전력자들만이 모여 있다. 리비 카트라이트(잭 로던)는 최근에 좌천됐다. 열혈 첩보원이지만 가상훈련에서 수백명의 폭탄 희생자를 만들어 낸 벌이다. 그는 램 부장의 지시에 따라 한 극우 언론인의 뒤를 캔다. 사실 뒤까지는 캐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다. 고작 그의 집 쓰레기를 가져 와 뒤지는 일을 하게 한다. 뭘 찾으라고도 얘기하지 않는다. 리비와 같은 사무실을 쓰는 젊은 여성 첩보원 시드 베이커(올리비아 쿡)의 전입 사유는 다소 불분명해 보인다. 아마도 본부를 지휘하는, 뱀 같은 두뇌를 지닌, 부국장 다이애나 터버너(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의 지령에 따라 잭슨 램 지부장을 염탐 중인 것으로 보인다. 램은 이 사실을 아는 척 모르는 척 그녀에게 자신의 역정보를 흘리는 것으로 보인다. 잭슨 램 부장의 개인 비서는 캐서린 스탠디시(시스키아 리브스)이다. 그녀의 죽은 남편은 과거 잭슨 램의 동료 첩보원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총을 입에 물고 자살했으며 램은 스탠디시의 반역죄를 덮기 위해 자기 비서로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해커 전력의 로디 호(크리스토퍼 청)가 있고 민 하퍼나 루이자 가이 , 스트루언 로이, 제드 무디 같은 동료 ‘낙오자’들의 일상이 겹쳐진다. ‘슬로우 하우스’는 기본적으로 1975년 시드니 폴락이 만든 매력적이고 섹시하며(이건 순전히 주연배우인 로버트 레드포드와 페이 더너웨이 때문이다) 우울하면서도 빼어난데다 우아하기까지 한(이것 역시 순전히 주연배우 둘 때문이다) 영화 ‘코드 네임 콘돌, Three Days of the Condor’의 상황 설정을 따라간다. ‘코드 네임 콘돌’의 등장인물들은 아메리칸 문학사 협회 사무국 직원들이다. 이들은 하루종일 국내외에서 나온 온갖 출판물들을 읽고 여기에 나오는 음모론을 정리해 위에 보고한다. 아메리칸 문학사 협회는 미 CIA의 외곽조직이며 첩보원들이 밀려난 변방 조직이다.
요원 명(名)이 콘돌인 주인공 조셉 터너(로버트 레드포드)는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와 같은 느리고 심드렁한 출근길에서 직원들 전부가 괴한들에 의해 잔혹하게 사살된 것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자신이 죽지 않은 이유는 그날따라 지각을 한 것이고 이 모든 학살이 자신을 찾아 사살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된다. CIA 윗선은 터너가 협회 활동으로 보고한 음모이론의 무엇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고 차제에 하부 조직 하나쯤 완전히 정리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건 하찮은 요원 모두를 제거하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음모의 핵심 비밀을 지키는 일이라고 판단한다. ‘슬로 호시스’도 결국은 내부의 스파이, 내부의 적을 찾고 그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이다. 슬로 호시스 시즌1은 극우 세력 집단 중 하나인 ‘엘비라의 자식들(왜 극우 집단의 이름에 엘비라 마디간의 이름이 사용되었는지는 풀지 못했다.)’에게 납치된 이슬람 청년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이슬람 청년은 납치범들에게 곧 참수당할 참이다. 이 사건이 이상한 계기로 슬라우 하우스 지부와 얽히게 된다. 젊은 남녀 요원 리비 카트라이트와 시드 베이커가 극우 언론인 집을 수색하러 들어갔다가 누군가에게 불의의 습격을 받고 그 과정에서 시드가 머리에 총을 맞고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그런데 이 일은 결국 잭슨 램을 포함해 슬로 호시스들 모두를 정리하려는 윗선의 조작과 음모로 진행이 된다. 이슬람 청년의 목숨과 잭슨 램 지부장이 슬라우 하우스와 자신의 슬로 호시스를 지켜내는 일은 이제 한 몸이 된다. 숨가쁜 추격전이 이어진다. ‘슬로 호시스’는 영국 드라마이다. 6부작이다. 첩보 스릴러에 관한 한 미국은, 아니 그 어느 나라건 영국을 따라갈 수가 없다. 영국에는 적어도 이언 플레밍(007 작가)과 존 르 카레가 있었기 때문이다. 존 르 카레를 따라갈 수 있는 첩보 이야기의 산실은 그 어느 나라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영국에서 오죽하면 그에게 경(卿, Sir)을 사사했겠는가. ‘슬로 호시스’의 주인공 잭슨 램의 캐릭터는 존 르 카레의 얼터 에고인 조지 스마일리에서 가져온 셈이다. 물론 외모와 생김생김은 전혀 다르다. 스마일리는 깔끔하다. 램은 늘 구멍 뚫린 양말에 구겨진 와이셔츠, 비뚤게 맨 넥타이 차림이다. 스마일리는 깔끔한 영국 신사이다. 둘의 공통점이라곤 비상한 머리를 지니고 늘 앞일을 몇 수 앞서서 내다 볼 줄 안다는 것뿐이다. 예컨대 본부 요원들이 자신과 비서인 캐서린을 체포하러 오고 있는 것을 아는 램은 총을 캐서린의 핸드백에 숨기고 자신만 몸수색을 당한다. 자신을 아는 수사 책임자가 늙은 여자인 캐서린까지 뒤지지는 않을 것이고 자신이 뭐라 하면 그러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둘은 그 총을 이용해 탈주에 성공하고 그다음 계획을 이행하기까지의 시간을 번다. 이런 식이다.
잭슨 램의 캐릭터는 조지 스마일리와 외모가 아주 다르지만, 이정도까지는 추측할 수 있다. 깔끔한 인생을 살았던 조지 스마일리 같았던 램이 어느 날 충격적인 사건을 겪는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동료 14명을 순식간에 잃었고 그 명단을 누군가 유출했는데 그게 자신의 오랜 친구였을 수도 있어서 그를 직접 처단했고 그래서 그는 인생의 빛을 잃었다. 첩보원 직을 그만둘 수도 없지만 계속 할 수도 없어서 아무도 찾지 않은 부서를 스스로 택한 후 씻지도 않고 술과 담배에 쩔어서 살게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조지 스마일리 같은 인물이 결국 잭슨 램 같은 인물이 된 것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슬로 호시스’의 원작 소설을 쓴 믹 헤론은 잭슨 램의 캐릭터를 나락한 조지 스마일리에서 가져왔을 것이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어쨌든 이 작가는 존 르 카레에게 자기 나름대로의 존경과 헌사를 바치고 있는 셈이다. 존 르 카레 작품을 가장 올바로 해석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 수 있는 감독은 한국의 박찬욱이다. 그가 만든 ‘리틀 드러머 걸’은 완벽한 존 르 카레 해석서였다. 존 르 카레의 세계는 조지 스마일리 3부작, 예컨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같은 작품(덴마크 토마스 알프레드손 감독이 2011년에 영화로 만들었으며 여기에서 조지 스마일리 역이 바로 게리 올드만이다!)을 읽거나 보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슬로 호시스’는 뛰어난 작품이다. 재미도 철철 넘친다. 위트와 유머의 지적 수준이 높다. 왜 이 드라마가 시즌5까지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슬로 호시스’는 첩보의 세계가 냉엄한 척, 사실은 우리들의 인생사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준다. 우리도 조직 생활에서 밀리면 언제든지 슬로 호시스가 될 수 있는 처지들이다. 첩보 조직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 냉혹하고 쌀쌀맞기 이를 데 없는 자본주의하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진짜 문제이다. ‘슬로 호시스’는 바로 그런 얘기를 하고있는 작품이다. 그러니 모두 이 두 가지는 지켜야 한다. '모스크바 규칙. 뒤를 조심할 것. 런던 규칙. 늘 몸을 숨길 것.' 조직 생활과 사회생활에 있어 이건 매우 중요한 처세일 것이다. 늘 뒤를 조심하고 몸을 숨기라. 그래야 산다. ‘슬로 하우스’가 던지는 삶의 테제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