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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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정부가 마지막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한 지 35년 만에 '원전 유턴'을 공식화했다.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해서다.

질베르토 피케토 프라틴 이탈리아 환경에너지부 장관은 1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앞으로 10년 안에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가 가동될 수 있도록 투자를 촉진하는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피케토 프라틴 장관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려면 2050년까지 전체 전력 소비량의 11% 이상이 원전에서 나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청정 에너지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원자력 에너지가 안정적인 '기저 전원'으로서 일정 몫을 담당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의 전력 생산량이 들쭉날쭉한 한계를 원전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또 "그동안 원전 분야에서도 안정성을 보강한 신기술이 개발됐기 때문에 과거 국민투표에서 드러난 원전을 향한 국민적 혐오감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1960~1970년대에 4기의 원자로를 건설하는 등 한때 유럽에서 가장 큰 원전을 보유한 국가였다. 하지만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터진 뒤 당시 운영 중이던 원전들의 가동을 중단했다. 이후 탈원전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국민투표를 거친 끝에 1990년 마지막 원자로를 폐쇄했고, 이탈리아는 세계 최초의 탈원전 국가로 거론돼왔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부가 원전 재도입을 들고나오면서 2010년대 대규모 신규 원전 건설 프로젝트가 잇따랐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의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여파로 무산됐다. 당시 치러진 국민투표에서는 94% 이상이 반대표를 던졌다. 피케토 프라틴 장관은 "과거 국민투표가 원자력 르네상스를 추진하는 현 정부에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탈리아의 첨단 연구 기관과 유수의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원자력 공급망에 활발히 참여하면서 유지하고 있는 높은 역량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이탈리아 최대 환경단체 레감비엔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원전이 이탈리아 에너지난의 해결책이라는 데 회의적인 견해를 나타내긴 했지만, 37%는 "기술이 더 안전하다면 원자력이 이탈리아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답하는 등 원전에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케토 프라틴 장관은 "원전은 인식의 문제"라며 "젊은 세대는 (원전의 기술력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지만, 체르노빌을 겪은 장년층 세대는 무조건적으로 원전을 반대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