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폭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올해 영화제는 개막작 <러브 라이즈 블리딩>과 폐막작 <구룡성채: 무법지대>를 포함, 총 17개 섹션에서 253편의 영화들이 상영되었다. 올해는 AI 영화, 섹스플로이테이션 영화 등 실험적인 요소들이 눈에 띄는 작품들이 영화제의 중추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대형 영화제의 시그니쳐라고 할 수 있는 ‘회고전 상영’은 부천에서도 가장 관객들이 열광하는 섹션이다.

올해는 제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심사위원장으로 한국을 찾기도 했던 B급 영화의 거장 로저 코먼의 회고전과 야스조 마스무라, 두기봉 등과 같은 아시아권 장르영화의 대가들의 대표작이 초청 상영되었고 이 영화들은 조기에 매진을 기록했다. 다행인 것은 이 작품들이 추앙받는 고전인 만큼, 다른 다양한 루트로도 시청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당신이 놓친 BIFAN의 숨은 보석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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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스조 마스무라의 <눈먼 짐승>(The Blind Beast, 1969)

도쿄대학교 출신의 야스조 마스무라는 1948년 즉, 일본 영화 황금기의 정점에서 조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는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등 선대의 일본 감독들의 ‘풍속 영화’에 비판적이었고 1953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앞선 영화들의 비 정치성, 그리고 정적이고 안전한 (그는 ‘안이한’이라고 표현하는) 사회 묘사에 반기를 들었던 그는 폭력과 에로티시즘으로 중무장한 급진적이고도 파격적인 작품들을 연출했다. 그의 대표작 중 한편이자 아마도 최고작으로 남을 <눈먼 짐승>은 1969년 작품으로 미스터리 작가인 에도가와 란포의 ‘모주 (盲獣)’를 영화화 한 것이다.
야스조 마스무라의 <눈먼 짐승> 스틸컷
야스조 마스무라의 <눈먼 짐승> 스틸컷
영화는 누드 모델, 아키의 하루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전시장에서 자신의 몸을 모델로 한 조각을 관람한다. 그곳에서 아키는 자신의 조각을 더듬으며 작품을 감상하는 한 맹인 관람객을 발견한다. 며칠 후 그녀는 맹인 안마사로부터 안마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잃는다. 눈을 뜬 아키는 눈과 코, 가슴 등을 본 대형 조각들이 즐비한 거대한 아틀리에의 한 가운데에 묶여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곧 그녀는 자신이 전시장에서 봤던 맹인 남자에 의해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는 탈출을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던 그녀가 서서히 맹인에게 욕망을 느끼고 집착을 하면서 예상치 못한 반전을 드러낸다.
야스조 마스무라의 <눈먼 짐승> 스틸컷
야스조 마스무라의 <눈먼 짐승> 스틸컷
<눈먼 짐승>은 한 여성의 납치사건으로 시작하여 아틀리에에 고립된 두 남녀의 치명적인 SM 게임으로 끝을 맺는 충격적인 서사를 그린다. 대략적인 줄거리로도 짐작 가능하듯 영화는 고어 (Gore)와 탐미주의의 극강을 오가는 이미지들로 컬트 영화의 팬들에게 오랜 사랑을 받았다. 시각과 촉각에 대한 인간의 본질, 그리고 그 예찬과 풍자를 병치하는 이 영화는 올해 부천뿐만 아니라 전주, 서울 아트시네마 등 한국 각지의 영화제와 예술 영화관에서도 초청 상영된 바 있다.

#2. 로저 코먼의 <흡혈 식물 대소동> (A Little Shop of Horrors, 1960)

올해 5월 12일에 세상을 떠난 B급 영화의 제왕이자 천재 감독 로저 코먼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영화는 <록키 호러 픽쳐 쇼>가 그랬듯 수년에 걸쳐 앙코르 상영되며 컬트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프랭크 오즈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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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코먼의 <흡혈 식물 대소동> 포스터
로저 코먼의 <흡혈 식물 대소동> 포스터
이야기는 작은 꽃가게에서 일하는 ‘시모어’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식물이 꽃가게에 당도하고, 이 식물이 말을 할 수 있으며 인간의 피를 주식(?)으로 한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예기치 못한 소동들이 이어진다.
로저 코먼의 <흡혈 식물 대소동> 스틸컷
로저 코먼의 <흡혈 식물 대소동> 스틸컷
피가 낭자한 고어물인 것 같지만 사실상 영화는 코미디·로맨스물 (로맨틱 코미디라고 칭하지 않은 이유는 영화의 슬랩스틱, 코미디적 요소가 더 지배적이기 때문이다)에 가깝다. 시모어가 짝사랑하는 ‘오드리’의 이름을 붙인 이 식물, 오드리를 둘러싼 좌충우돌 에피소드는 스크립트를 쓴 찰스 그리피스와 로저 코먼의 가히 천재적인 ‘이야기 재능’이 아니면 빚어질 수 없는 설정들로 가득하다. 할리우드의 주류 배우로 등극하기 전, 잭 니콜슨의 싱그러운 연기를 엿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영화의 ‘차밍 포인트’ 중 하나다. 잭 니콜슨이 주연을 맡았던 로저 코먼의 또 다른 작품 (이번 부천에서도 상영이 되었다) <더 테러>도 함께 감상할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부천=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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